주인이 먼 길을 떠난 뒤에 오랫동안 비어있던 집이 시끌벅적 소란스럽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구와 장판, 싱크대, 세면대까지 모조리 떼어낸다. 원래의 집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사는 동안 물건들은 버려지거나 바뀐 적이 거의 없다. (하얀 이중 냉장고를 더 큰 것으로 바꾼 것 말고는) 물건을 귀하게 생각하는 옛 어른들이 그렇듯 할아버지 역시 고스란히 지켜내셨다.
집은 주인을 닮아 튼튼하게 유지가 잘 되어 있었다.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할아버지는 그 연세에도 혼자 지내시면 정말 깔끔하셨다.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집도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되면 훈기가 돌아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한, 두 번 집에 왔을 때 느꼈던 삭막함과 어둠은 그런 훈기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 온기라는 게 없으니 공간에 머물기가 편치 않았던 기억이다.
나는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서 열 살이 될 무렵까지 넓은 마루가 있고 마당에 소와 염소들 집이 있는 정말 옛날 집에 살았다. 욕실이 따로 없어 추운 겨울에는 빨간 고무 대야에 따듯한 물을 채워 방 안에서 씻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하려면 아궁이에 물을 끓여야 했다. 아궁이와 굴뚝, 검게 그을린 아랫목 장판, 손으로 돌리는 텔레비전, 낡은 화장실. 그런 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이보다 더 옛날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지금의 벽돌집은 내가 열 살 정도에 지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무렵인가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은 아랫동네로 이사를 가서 새 집에선 살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집이 된 곳에 나만 돌아왔다. 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거실과 내가 사용할 방은 편백나무로 장식되었는데, 언젠가 부모님도 와서 지낼 곳이라 내 취향은 중요치 않다. 본래 분리 돼있던 주방문을 없애자 거실은 더 넓고 환해졌다. 거실에 처음으로 식탁과 소파가 놓였다.
그리고 에어컨도 처음 설치가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97년을 사시는 동안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셨다. 요즘에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것이 상상도 안되지만 시골에는 에어컨 없이 사시는 분들이 꽤 있다. 대신 마을 회관에 에어컨이 있어 언제든 이용이 가능하다.
이렇게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은 여전히 할아버지 집이다. 할아버지 이름 석자가 쓰인 문패가 떼어졌지만 나는 그 문패를 버리지 않고 현관 한 곳에 세워놓았다. 까맣던 이름 석자가 하얗게 벗겨져서 머리카락처럼 희끗희끗해졌다. 언젠가 다른 형제들과 친척들에게 다르게 불리겠지만 내게는 영원히 할아버지의 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