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0번 넘게 이사를 갔지만 여전히 이사 가고 싶어
독일에서 이사를 간다는 것
카멜레온은 환경이 변하면 보호색으로 자신을 위장한다. 아주 감쪽같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든다. 이런 주변의 변화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는 어쩌면 카멜레온일까? 아니, 나는 그냥 변화가 전혀 없는 곳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처음 독일에 온 날부터 10여 년이 지난날까지 무려 20번이 넘는 이사를 했다. 한 동네에서만 세 번 정도는 기본이고, 한 주에서도 여러 번 돌아다녔다. 그다음은 완전히 독일의 아래로 갔다가 위로 갔다가 다시 옆으로 갔다가 아예 독일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그동안 독일에서 살며 한국으로의 임시 도피(?)도 여러 번 있었으니까.
사실 독일에서 이사를 간다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독일 집은 이사 갈 때 부엌을 통째로 떼어가는 경우가 많다. 보통 이사를 가면 '여기가 부엌인가?'하고 찬찬히 살펴봐야 할 정도로 부엌의 흔적이 없는 곳도 많다. 인덕션과 오븐이 없는 것은 기본, 심지어는 싱크대 자체가 있었던 흔적만 존재할 뿐 싱크대도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 물론 화장실 역시 세탁기 연결을 위한 호스만 존재한다. 전등이란 전등도 다 떼어가기 때문에 전등이 달렸던 흔적만 남아있다.
여기에 가구가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 가구를 새로 사서 조립을 하든 완성품을 사든 들여놔야 하고 이사를 나갈 때는 그걸 또 팔고 나가든 다시 분해해서 갖다 버리든 새로 들고 이사를 나가야 한다.
매 년 사람이 살면서 늘어나는 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사 박스를 사서 짐을 싸고 보내고 또 풀고 정리하고, 이사 나가는 집을 치우고 이사 들어가는 집을 또 치우고. 이사 중간에 파손되거나 부서지는 전자제품이며 가구들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잃어버리거나 버려지는 물건들도 물론 많을 테고.
그런데도 나는 이사가 좋다. 정확히는 새로운 환경이 너무 좋다. 어쩌면 독일이라는 나라 특성상 즐길거리가 한국에 비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보니 삶의 변화를 거주지 변경에서 찾으려고 했을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살던 학원 기숙사, 작은 옥탑방 스튜디오지만 화장실에 넓은 창문이 비스듬하게 나 있어서 욕조에 누워 별을 볼 수 있는 곳, 독일 할머니가 2주마다 침대 시트를 직접 갈아주시던 독일 가정집, 너무나 춥고 불편했지만 그 나름대로 재밌었던 에센의 원룸, 한국으로 귀국 전에 살았던 도로가 창문 바로 옆에 가까이 붙어있던 북유럽 투어를 가기 전에 살았던 집, 독일 여자애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아주 예쁜 프라이부르크의 가정집, 너무 여럿이라 화장실 등은 조금 불편했지만 밥 먹을 땐 늘 시끌시끌해서 재밌던 친구들과 살았던 프라이부르크에서의 두 번째 집, 학교가 시작하고 같이 살던 이집트애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던 사연이 있던 집, 파란만장한 사건들이 가득했던 대학교 기숙사, 짧았지만 나 혼자 살던 아담하고 예쁜 스튜디오 그리고 벽 한 면이 모두 통유리라서 눈이 오면 그 새하얀 풍경을 창밖으로 모두 내다볼 수 있던 집. 그 이후에도 너무나 많은 집들을 거쳐갔지만 지금도 하나같이 아주 생생하게 다시 떠오른다.
나는 독일 유학생 특히나 대학생이라면 꽤 공감할 수 있는 '캐리어 이사'부터 '택배 이사' 그리고 '손으로 옮기는(?) 아날로그 이사'를 거쳐 '택시 이사' 및 '자가용 이사'까지 경험했지만 아직 이사업체를 통한 이사는 해보지 않았으니 어쩌면 그날도 언젠간 올지도 모른다.
대학교/대학원에서 긴 학업이 끝난 이후에는 아예 작정을 하고 매주 독일 및 독일 근방 유럽의 호텔을 직업상 돌아다녀 안 가 본 호텔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온갖 호텔과 지역을 돌아다녔다. 가장 좋았던 것은 자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 출장 겸 여행을 통한 장소의 이동이 가능했다는 사실.
현재 나는 또 다른 집의 계약서에 서명을 한 상태이며,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또 어떨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