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비로 오인될까 봐 미친 듯이 애국가를 불러야 했다.
살기 위해 애국가를 불렀다. 산을 좋아하다 벌어진 일이다.
팔십이 년 초겨울 설악산 종주 산행에 나섰다. 오색리 산골 마을에서 하루 묵고 다음 날 새벽 출발하기로 했다. 그곳은 도토리묵, 감자전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빈촌이었다. 우린 홍 포수네 사랑채에서 묵기로 했다. 산짐승을 잡으러 다니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홍 포수(砲手)라 불렀다. 그는 설악산 문바위골에서 곰을 잡았다는 이야기부터 노루, 산양, 고라니를 한 트럭은 잡았다며 허풍을 떨었다.
다음 날, 새벽 별을 벗 삼아 대청봉을 향했다. 정상에 오르자 한눈에 설악이 들어온다. 동으로 화채봉을 시작으로 권금산성, 집선봉에 이르는 화채능선이 독수리 왼쪽 날개를 펼친 듯 뻗어있고. 서로는 귀때기청봉을 중심으로 오른쪽 날개를 펼친 듯 산군이 이어졌다. 남으로는 머리에 해당하는 점봉산이 자리를 잡고. 북으로는 공룡능선의 뾰족한 바위들이 독수리 등줄기에서 꼬리를 형성한 듯 구름 위를 나는 형상으로 하늘 향해 솟아있다. 천 미터급 거봉 사이를 갈라놓은 계곡은 혈관처럼 요리조리 갈라치며 생명수를 나누어 준다. 거기다 더해 동해 푸른빛은 거친 설악의 산세를 순화시키려는 부드러움으로 화채능선을 배경으로 한 폭의 산수화로 다가온다.
대청봉을 뒤로하고 중청 소청을 지나 희운각 대피소를 통과하여 공룡능선에 접어들었다. 바위 오르내리기를 수십 번. 어디쯤 왔는지 거리를 가늠할 수 없고 지루할 틈이 없다. 좁은 바위틈에 뿌리내린 채 수십 년, 아니 몇백 년은 견뎌왔을 소나무의 질긴 생명력에 놀라는 사이 마등령에 도착했다. 대청봉 출발 네 시간 만이다.
야영지까지는 두 시간을 더 가야 한다. 공룡능선이 히말라야 돌길이라면 마등령에서 저항령에 이르는 능선은 사하라 모랫길이다. 간혹 너덜지대도 있으나 지루함을 덜어주는 양념 같은 존재다. 초겨울의 설악은 쌀쌀했다. 어둠이 들기 전 서둘러 식수를 조달하고 야영 준비를 마쳤다. 분담한 것도 아닌데 톱니 돌아가듯 척척 해낸다. 이곳은 설악의 험준한 산세와는 확연히 다르다. 주목 군락지 사이로 키 작은 잡초들이 잔디밭처럼 넓게 펼쳐진 평지로 야영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가까운 곳에 심마니들이 사용하던 옹달샘이 있어 더 그렇다.
죽은 주목 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삼겹살에 정상 주 몇 잔 들이켜니 피곤이 밀려온다. 먹다 남은 고기는 비닐봉지에 담아 낮은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탈피하는 번데기 자세로 침낭 속에서 들어가 설악의 첫날밤을 맞았다.
막 잠이 들렸는데 낙엽 부스럭거림이 들렸다. 숨죽인 채, 온 신경이 바깥소리에 쏠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움직임이 느껴져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설악 산맥은 북한 공작원 침투루트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더 불안했다. 옆 사람을 깨워야 하나,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가야 하나…. 신경만 곤두설 뿐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낙엽 부스럭거림은 점점 근접해 왔다. 한 명은 아닌 듯하다. 심장이 멎을 것 같고, 숨쉬기조차 힘들다. 옆에 누워있는 친구의 침낭을 발끝으로 건드려 신호를 보냈다. 그도 깨어 있었다. 텐트 속 움직임을 침입자도 알아챘는지 달아나는 듯 부스럭거림이 크게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햇살이 저항령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텐트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살폈으나 사람 흔적은 없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고기가 없어졌어!”
남겨 놓았던 삼겹살은 사라지고 찢어진 비닐봉지만 나뒹굴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있었다.
밤사이 텐트 위에 서리가 내렸다. 말릴 겸 여유 있게 텐트를 걷고 배낭을 꾸렸다. 황철봉을 올라 이름 모를 산을 우회하는데 웅장한 울산바위가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한 폭의 산수화로 다가온다. 산신령께서 금강산으로 가져가려고 울산에서 갖고 왔는데, 금강산은 이미 꽉 차서 이곳에 놓았다고 믿거나 말거나 아는 체를 한다.
미시령에 도착하니 해가 저물었다. 여유를 부리다 늦게 출발한 게 문제였다. 오징어잡이 배 집어등이 바다의 경계를 서는 듯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고갯마루에는 미시령이라 새겨진 대형 돌기둥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다. 미시령은 1950년대 군사작전 목적으로 건설됐으나 폐쇄된 도로다. 길옆에 세워진 녹슨 철제 이정표가 바람에 흔들린다. 미시령의 골바람을 견디기에 벅찬 듯 ‘끼익- 끼익-’ 소리를 낸다. 이정표엔 반쯤 지워진 페인트 글자가 ‘속초 7km 원통 23Km’라 알려준다. 이십 리를 더 가야 한다니! 끔찍했다. 힘든 것보다 속초까지 안전하게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배낭을 짊어진 다섯 명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폐쇄된 군사도로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누가 봐도 무장공비다. 미시령은 향로봉과 이어져 북한까지 연결되는 향로 산맥 줄기다.
도로가 끝나는 학사평에는 북한을 넘나 든다는 육군 첩보부대(HID)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매복 중인 그들에게 발견된다면 무장공비로 오인받아 집중 사격을 받을 상황이다. 그즈음 임진강 하류에 무장공비 침투가 있었던 터라 간첩 발견 시 무조건 사격하라는 지시가 내려져 있다고 했다.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장공비가 아님을 알려야 했다.
나이 많은 조 선배는 코펠을 두드리며 내려가자고 했다. 뚜껑 두드리며 시끄럽게 침투하는 무장공비는 없을 거라 했다. 누군가가 노래도 함께 부르자고 했다. 묘안이 없던 터라 코펠 두드리고 노래 부르며 내려가기로 했다. 곡목 선정에 의견이 분분했다. 해변으로 가요, 산 까치, 아침이슬, 내 고향 충청도, 눈이 큰아이….
애국가 불러대는 무장공비는 없을 테니 애국가를 부르기로 했다. 노랫소리는 크면 클수록 멀리 전달될 것 같아 떼창으로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더 크게 부르라며 조 선배는 악을 쓴다. 음정과 박자는 상관없다. 2절도 필요 없다. 목소리 큰 게 최고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래고래 애국가를 외치며 코펠을 두드리는 모습은 미친 사람들의 판타지였다. 발바닥에 물집 잡히고, 배낭이 짓누르는 고통 속에서 괴성 지르듯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은 처절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무장공비 심정이다. 한 시간 내내 괴성 지르듯 '동해물과...'를 외쳐야 하는 건, 고문(拷問)이었다.
학사평에 도착하여 계곡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비명 지르듯 애국가를 불러댄 탓에 성대가 찢어졌는지 목소리가 잠겼다. 폭격에 부서진 듯한 교각 두세 개와 철제 구조물이 어스름히 형체를 드러내 씁쓸함이 더했다. ‘졸졸’ 계곡 물소리가 살아있음을 알려주었다.
지금도 미시령을 지날 때면 그날의 애국가 판타지가 귓전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