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혼밥은 없다.
아내가 여고 동창 모임에 간다며 분주하다. 옷맵시를 봐주지 못한다고 타박하면서도 수시로 부른다.
“이 옷 어때요, 색상 매치는 괜찮아요? 촌스러운지 봐줘요. 대전서 왔다고 흉 잡히지 않게. 핸드백은 어느 것이 어울려요?” 구두 색상까지 질문은 끝이 없다. 내 대답이 못 미더운 모양이다. 핸드폰으로 전신사진을 촬영하란다. 사진을 확인한 다음에야 외출 준비가 끝난다.
그런 와중에 내 밥걱정은 외출 양념처럼 계속된다. “냉장고 야채칸에 가지, 콩나물 있고요. 파 통엔 대파 썰어 놨어요. 압력솥에 밥 안칠 때 물 적게 넣고, 빨간 선까지 올라온 다음 뜸을 충분히 들여요. 콩나물 익힐 때 미리 열지 말고 한소끔 끓인 다음 뚜껑 열어야 해요.”
“알았어요. 다 할 줄 알아요.” 큰소리쳤다.
점심을 준비하려 냉장고를 열었다. 아내가 말할 때는 다 아는 것 같았는데 막상 하려니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나질 않는다. “삑삑” 냉장고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밥을 먼저 하고 국을 끓여야 하나. 아니 국은 재료 준비가 많으니 밥부터 해야겠다. 쌀부터 씻어 솥에 넣었다. 콩이 몸에 좋다 하니 듬뿍 넣고 해야겠다. 바짝 마른 서리태 한 주먹을 쌀 위에 얻은 다음 압력솥 뚜껑을 닫았다. 뚜껑 위에 세 단계 표시가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지만, 단단히 닫힌 것을 확인하고 전기레인지에 올렸다. 밥만 하는데도 일이 많았다.
시원한 북어 콩나물국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바지락과 콩나물을 씻어 건져 놓고, 북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준비를 했다. 그러나 조리 방법이 문제였다. 물을 먼저 끓이고 콩나물을 넣어야 하나, 북어를 먼저 익히고 콩나물을 넣어야 하나, 바지락은 또 언제 넣지. 중얼거리며 주방을 배회한다. 얼마 전 점심때 먹었던 나루터 식당 콩나물국 생각이 났다. 냄비에 몽땅 담아왔던 것 같다. 준비한 재료를 다 집어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한소끔 끓기 전에 뚜껑을 열지 말라는 주의사항만 지켰다. 압력솥이 괴로운 듯 소리 내며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공교롭게 콩나물국도 동시에 끓기 시작하여 넘친다. 정신이 없다.
국 간을 맞추려고 간장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냉장고 속을 뒤져도 보이질 않는다. 양념 종류는 어디에 있다고 일러주어 다 아는 것 같았는데 급하게 찾으려니 보이질 않는다. 한 끼 식사 준비가 이리 바쁜 줄 미처 몰랐다.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콩밥에 북어 콩나물국, 파김치, 데친 양배추 쌈 근사한 상차림이다. 사진부터 찍었다. 아내에게 멋진 상차림을 자랑하려고 카톡을 보냈다.
“까 똑” 답장이 왔다.
서리태 넣었어요? ☺☺ ㄴㅁㅅㅇ ♡♡(내 못살아), 불려 넣어야 하는데. 콩은 먹지 마요. 이 부러져요. ㅋㅋㅋ
아내는 사진만 봐도 콩이 익지 않은 것을 아는 모양이다. 멋진 상차림 자랑은 덜 익은 서리태로 머쓱해지고 말았다. 덜 익어 딱딱 콩을 골라내고 덩그러니 혼자 식사를 하려니 영 어색하다. 젊은이들처럼 멋진 식탁을 차려놓고 로맨틱한 ‘혼밥’을 상상했었는데 분위기가 잡히질 않는다. 무언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울적한 기분마저 든다.
아내 없이 혼자 사는 노년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이 막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삼십 년 넘게 마주 앉은 아내는 영원히 내 앞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비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식탁이 왜 이리 넓게 보이는지 조그만 아내 빈자리가 이리 넓단 말인가? 혼자 산다면 매일 식사, 빨래, 옷, 청소는….
아내가 표 안 나게 했던 여러 가지 일 들이 시위하듯 한꺼번에 들고 일어선다. 일에 짓눌려 질식할 것 같다. 아내는 삼십 년 넘게 이 많은 일에 짓눌려 살면서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견뎌왔단 말인가! 한 끼 식사를 준비하는데도 혼이 빠질 지경인데 얼마나 고생했을까.
아내는 아플 때, 애들 입시공부시킬 때, 여행을 가면서도 내 곁을 비워두지 않았다. 지방 발령을 받았을 때, 애들 교육을 위해 서울에 남아 있으라고 하자 아내는 단호했다. 당신 보고 결혼했지 애들 보고 결혼한 것이 아니라며 나를 따라 이사했던 아내다. 이런 아내가 옆에 없으니 혼이 빠진듯하다.
로맨틱한 ‘혼밥 ’의 기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