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크기는 얼마만 할까?
행복한 삶을 원했다. 그런 삶을 살겠다고 무모하리만치 욕심을 부리며 살았다. 얼마를 채워야 할지. 행복 크기를 모르니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무게의 기준이 되는 킬로그램의 원기가 있고, 길이의 기준이 되는 미터원기도 있으나. 행복 크기를 가늠할 행복 원기가 없는 탓이다. 주변에서 행복해 보인다고 하는데도 만족하지 못한다. 심지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년 전 백삼십 년 동안 무게의 기준으로 삼았던 킬로그램 질량 원기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플랑크 상수’를 기준으로 하는 원기로 바뀌었다. 영원히 변지 않을 것 같았던 표준 원기도 변하는데 기준이 없는 행복을 스스로 정해 만족한다는 건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행복의 크기를 화두로 심각하게 고민했던 때가 있었다.
전문가, 종교지도자, 행복을 말하는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정의도 달랐다. 사람마다 느끼는 행복의 크기도, 질도 다르다. 자신의 행복 척도를 남들과 비교하여 만족하려 한다. 친구, 이웃과 비교하고 심지어 형제들과도 비교한다. 비교할 때마다 다르니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행복하게 살아라!” 어머니는 틈만 나면 말씀하셨다. 주변 사람들도 덕담으로 인사로 행복하라는 말을 한다. 행복은 어떻게 생겼을까. 육십 년이 넘도록 찾았으나 지금도 풀지 못한 난제다. 크기는 얼마만 한지, 생긴 모양은 어떠한지? 누군가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하는데 얼마나 귀한 것이기에 살 수 없다고 하는지. 막연히 주변과 비교하며 행복의 빈곤에서 살아왔다.
어릴 땐 건강하면 행복한 거야. 잘 뛰어놀아야 한다기에 산과 들로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았다. 학교에 들어가자 말이 바뀌었다. 공부 잘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하여 이해할 순 없지만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 하여 대기업에 들어갔더니, 직장은 안정이 최고라고 한다. 노후에 연금 보장되고, 안정된 직업을 찾아 이직했다. 기준이 자꾸 바뀌니 어떤 것이 행복인지 더 혼란스럽다.
행복하게 살라 고 말할 뿐.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이가 없어 종교지도자를 찾아갔다. 유명하다는 스님을 찾아가 행복이 어떤 것인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물었다. 스님은 알 수 없는 선답(禪答)으로 대신했다. 행복은 돈도, 물질도, 학문도, 명예도 아니고 오직 당신의 마음에 존재한단다. 그러면 지금까지 행복해진다 하여 공부하고, 취직하여 돈을 벌며 추구했던 행복은 진정한 행복과 관련이 없단 말인가! 끝을 볼 요량으로 동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 답을 청했다. 목사는 행복은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다며 더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나를 이해시키려 한다.
나이 서른이 넘자 어머니는 또 다른 말씀을 하신다. “야! 이 녀석아 여자를 만나야 행복하지 홀아비로 살껴.”라며 타박을 준다. 지금껏 이것저것 해봐도 답을 찾지 못했으니 결혼하면 행복해질까. 결혼을 했다. 기대가 컸던 게 탈이었다. 조건이 더 복잡해졌다. 자식을 낳아야 행복해진다거니, 집을 사야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다. 주변 이야기 따라 하느라 수십 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내는 행복 타령이다. 퇴직했으니 여행이나 자주 가며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잖다. 아내 말대로 수십 개국 여행을 다녔다. 외국의 문화도 접해보고, 빈부와 상관없이 여유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그들과 다를 것이 없는데 일상을 즐길 줄 모르는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인류가 자동 가입되는 ‘세계 인류 행복 연합’에서 행복 원기를 제정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소문에 의하면 행복 원기를 결정하는 데 두 가지 안이 대립되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가 행복의 기준이라는 주장과‘하고 싶은 걸 했을 때’가 기준이라는 안이 논의되었으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두 번째 안으로 결정되었단다.
결정된 원기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고, 나이 성별, 빈부 구분 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성취 상수를 적용했다고 한다. 원기 부속서에 예외조항을 뒀는데 ‘미워하거나 해하고 싶은 걸 실행한 것과 탐하지 말 것을 탐한 경우는 불행’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단다. 또한, 로또 당첨과 같이 허황한 꿈으로 하고 싶은 걸 했을 때는 별도 심사하여 결정한다고 정했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소문대로 행복 원기가 제정됐다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듯하다. 먹고 싶은 걸 먹을 때, 보고 싶은 걸 본 때, 산책하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쉬는 모든 것이 행복 원기에 딱 맞는 삶이기 때문이다.
제정된 행복 원기로 지난 삶을 측정해 보았다. 원하는 사람과 결혼 했고, 아들딸 낳고, 집도 지어보고, 하고픈 취미 생활도, 가고 싶은 여행도 다녀봤다. 행복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행복이었다.
행복 잣대는 쓸모없게 되었다. 온전한 나만의 소소한 일상에서 하고 싶은 걸 했을 때의 즐거움...
행복 원기에 맞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