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네가 뭔데

옷은 사람의 정신세계도 지배한다

by 이광주

양복과 이별했다. 첫 출근 때 맺었던 인연이었다. 검정 또는 감색 양복에 넥타이를 착용하고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변변한 양복 한 벌이 없었던 터라 부랴부랴 동대문시장으로 갔다. 급하게 양복을 맞추고 와이셔츠에 넥타이까지 갖췄다. 처음 입은 양복은 팔다리 움직일 때마다 간섭이다. 넥타이는 목을 조이고, 구두는 발을 옥죄였다. 이렇게 시작됐던 양복과의 인연을 끊기로 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수십 년간 고삐에 묶인 망아지처럼 넥타이에 묶여 끌려가는 것 같은 구속력이 싫었다. 양복으로 대변되는 제도의 틀에 갇힌 삶에서 벗어나고픈 욕구를 억제할 수 없었다. 맨틀에 갇혀있던 마그마가 화산 폭발로 솟구치듯 퇴직이라는 분출구를 만난 것이 계기였다. 근육 빠지고 목주름 생기는 늙음에 대한 위기의식도 청바지로의 변신을 거들었다.

변신을 권한 건 아내였다. 양복으로 대변되는 공무원의 고지식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라는 의미였다. 진짜 속내는 나이 들어가는 남편을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청바지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나이 먹고 체신 떨어지게 애들처럼 청바지가 뭐냐며 시큰둥했다. 열 살 젊게 만들 자신 있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끌려가듯 서울 소공동에 있는 백화점에 들렀다. 바지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었다. 슈트, 셔츠, 벨트, 신발까지 몽땅 바꿔야 했다. 착 달라붙어 뻣뻣한 것도 문제지만 구겨진 듯 후줄근한 것이 양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종류도 다양했다. 스트레이트 진, 부츠컷, 탈색시킨 워싱, 짝 달라붙는 스키니 진…. 체형에 맞는 바지를 고르는 안목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고가 브랜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돌체 앤 가바나’, ‘디스퀘어드 2’ 같은 것은 바지 하나에 백만 원 훌쩍 넘는 것도 있어 놀랐다. 처음이니 일반적인 브랜드 중에서 약하게 워싱한 것을 입기로 했다. 며느리까지 동원하여 선정한 결과다.

청바지와의 첫 인연은 고교 삼 년 때로 기억된다. 동대문시장 이층에 있던 구제품 가게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중고 바지를 처음 샀다. 밑단을 한 뼘 이상 잘라내야 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선택했다. 고교생이 청바지를 입는 것은 대학생 흉내뿐만 아니라 외국 선진문화를 받아들인 것 같은 묘한 쾌감도 있었다. ‘빅스톤’과‘쌍마’로 대변되던 청바지와 ‘청 카바’로 통칭하던 청재킷은 전당포에 맡기고 소주 값을 조달할 수 있을 정도의 귀한 대접을 받는 옷이었다.



옷은 사람의 정신세계도 지배하는 것 같다. 청바지를 입는 순간 자유가 느껴지고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음으로 돌아간 듯하다. 청바지는 자유의 상징으로 대변되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겐 자유와 저항을 표시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복장이기도 했다. ‘벨라루스’ 독재정권 타도 시위에 저항의 표시로 참가자 전원이 청바지를 입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저명인사들이 청바지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것은 격식 없는 자유로운 대화를 의미할 때 입는다고 한다. 그만큼 청바지는 자유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자유의 예복인 셈이다. 나도 그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시선을 견뎌낼 맷집이 필요했다. 청바지에 슈트를 차려입고 캐주얼 차림으로 옛 동료의 혼사에 참석했다. 고지식한 양복 친구들의 시선에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그러나 외출이나 친목 모임의 청바지 차림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청바지 잘 어울리는데! 훨씬 젊어 보여.”라는 말을 들을 땐 옅은 미소를 보이는 여유도 부렸다.

처음엔 겉돌 던 청바지에 반전이 일어났다. 양복보다 더 많이 입었던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졌다. 옷도 체형에 맞게 학습되고 적응되나 보다. 아니 마음이 적응된 거다.

청바지에 어울리는 슈트를 갖춰 입고 머플러로 멋을 내고 예식장에 가는 것도, 바라보는 시선도 부담되지 않게 되었다. 청바지 입고 예식장 왔다고 손가락질하거나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애당초 없었다. 스스로 남을 의식한 탓이다.

청바지 입고 집을 나서면 비가 와도 좋고, 뛰어도 좋다. 아무 곳에나 털썩 주저앉아 쉬기도 좋다. 조금 찢겨도 세탁을 자주 안 해도 괜찮다. “퇴직하더니 더 젊어졌어!”라는 칭찬은 덤이다.



옷을 바꿨을 뿐인데. 이제야 진정한 은퇴자의 삶으로 돌아온 것 같다. 가슴에 남아있던 정신적 퇴직이 이제야 마무리된듯하다.

2039년 가을,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셔츠, 오렌지 색 니트를 어깨에 걸치고 자주색 스니커즈 운동화로 멋을 낸 백발노인이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 수필집을 읽고 있다. “청바지 입은 저 노인 봐, 참 끌밋하다.” 젊은 아가씨들이 수군댄다.

청바지, 네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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