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유무(無有無)

우린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갈까?

by 이광주

깜짝 놀랐다. 수령이 수백 년은 된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우듬지에 잎눈이 삐져나왔다. 지난가을 새싹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고 떠난 잎눈 자리를 지켜내느라 헐벗은 채 삭풍에 시달리던 가지에서 잎눈이 나온 거다. 허리도 펴지 못한 연초록 잎은 여리디 여려 만질 수조차 없다.

두꺼운 표피를 뚫고 나오느라 힘이 들었던지 아침 햇살에 기지개를 켠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마른 가지에서 생명을 피워냈다.

더위가 최고조에 이를 즈음 잎은 손바닥만 하게 자랐다. 억세고 윤기가 반지르르하다.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함이 보인다. 강풍을 만나면 유들유들 못 이기는 척 흔들려 주고, 적당히 숙여 지나가도록 길을 내주는 지혜도 익혔다. 맞서 이기려 하면 꺾인다는 것도 안다.

아침저녁 찬기 들기 시작하자 왕성했던 은행나무 짙은 녹음도 점차 노래지며 윤기를 잃어간다. 실하던 줄기도 떨켜층이 막혔는지 탄력을 잃고 주름이 잡혔다. 아버지 손등처럼 두꺼워지고 갈라져 생기를 잃었다. 몇 해 전부터 둥치 부분이 조금씩 썩기 시작하더니 깊은 곳까지 썩어 들었다. 기력 잃은 잎들은 된바람 불면 피할 힘조차 없어 온몸으로 부딪치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바람은 그마저 놔두질 않는다.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찢고 흩어놓아 결국 사라지게 만든다. 수백 년을 견뎌온 은행나무마저 쇠퇴해가는 것을 보면서 무로 돌아가던 때의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만물의 순리에 따랐다. 내 나이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나무 옹두리처럼 생긴 암이라는 종양을 이겨내지 못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이십여 년 전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그리 원했던 은행나무 옆 명당에 유택을 마련해주기 위해 이장(移葬)할 때였다. 아버지는 몇 줌의 흙과 뼛조각 한두 개가 전부였다. 살아생전 아버지의 무게감이나 권위는 없었다. 허무하다는 생각뿐이다.

생전 아버지는 동네에서 혈기 왕성한 장사(壯士)로 통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겉으로 드러난 힘줄과 근육이 통나무 같고, 거뭇한 피부는 매끄럽고 윤기가 났다. 눈이 밝아 나무 가지에 앉은 ‘산까치’를 새총으로 잡았고. 걸음걸이는 빠르고 절도가 있어 천 리를 달리는 흑마같이 씩씩하고 거침이 없었다. 하고자 하는 일에는 태산도 무너트릴 것 같은 용기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 혈기로 ‘시루셍이’ 마을에 집을 짓고 돌담을 쌓아 아홉 남매를 키웠다.

그랬던 아버지가 이순을 넘기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감투밥을 먹고도 뒤돌아서면 배가 출출하다고 했던 아버지였다. 어느 날부터 속이 더부룩하다며 소다 한 수저를 입안에 털어 넣는 일이 잦아졌다. 말총같이 억세고 무성했던 머리카락도 성글고 희어지기 시작했다. 대추나무 몽치같이 단단하던 알통은 고무풍선같이 말랑해졌고, 피부는 쪼글쪼글 주름이 잡혔다. 광대뼈가 드러나고 검버섯도 피었다. 어금니 한두 개를 시작으로 앞니까지 빠지며 말이 새 나가 발음도 어눌해졌다. 덩달아 벌 날아다니는 소리가 난다더니 듣는 것도 시원찮아졌다.

아버지는 돌아가라는 신호라는 걸 알았다. 무에서 태어났다 사라지는 건 만물의 순리에 의한 것이니 억울해할 것 없다며 받아들였다. 죽음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 듯 하나의 과정이니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단다. 오늘 가나, 몇 년 후에 가나 윤회의 한 축이니 조절할 수 없는 섭리라 했다.

병색이 깊어지자 아버지는 생활방식을 바꿨다. 때가 돼도 배고프지 않고, 입맛 떨어지는 건 양분이 필요 없다는 육체의 신호라며 식사량을 줄였다. 늙고 병들면 오장육부도 같이 약해져 소화력이 떨어져 오래 씹어야 한다며 천천히 먹었다. 곰국 끓인 쇠뼈처럼 구멍 숭숭 뚫린 뼈는 부러지기 쉽다며 바깥출입을 삼가고 지팡이를 짚었다.

언제부턴가 돌아갈 준비도 하고 있었다. 정신 줄 있을 때 신변 정리해야 한다며 빌린 건 돌려주고, 남은 건 골고루 나눠 불화가 없도록 유서를 써놓았다. 떠난 자리 남는 건 쓰레기뿐이라며 사용하던 물것들을 태우고 버렸다. 찾아오는 이가 줄고 친구도 하나둘 멀어지는 건 이별의 슬픔을 줄이기 위해 정을 떼어내는 순리니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단다. 윤회의 바퀴는 사람마다 크기가 달라 언제 돌아갈지 모르니 하고픈 건 때를 놓치지 말라며 유언처럼 이르곤 했었다.


이순을 넘기고 종심(從心)을 향하는 길목에 서자 무로 돌아가던 때의 아버지 모습이 나에게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의 내리막길에 들어섰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내리막이 가팔라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후회가 남지 않도록 주변을 돌아봐야겠다.

늦가을 한기가 들기 시작하자 아버지 묘 위에 은행잎이 쌓였다. 내년 봄 새싹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노란 은행잎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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