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 가마니에 몇 개의 마음이 담겨있을까.
가을걷이가 채 끝나지 않았을 즈음 농사짓는 형이 쌀 한 가마니를 보내주었다. 가마니에 가득 든 낱알은 형의 마음이다. 마음 몇 개를 모아 한 가마니를 생산했을까? 쌀가마니에 담긴 형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형은 등에 따스한 햇볕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한식 즈음이면 마음은 다랑논에 가 있다. 작년 가을 잘 여문 벼를 골라 광에 보관해 두었던 볍씨를 확인한다. 곡우 무렵 볍씨를 꺼내 키질을 한다. 탈망 작업으로 쭉정이, 검부러기를 날리고 멍석에 펼쳐 햇볕을 쏘이며 봄을 알린다. 겨울잠을 뿌리치지 못하는 볍씨를 커다란 소래기에 담아 물에 일어 씻어낸다. 볍씨를 담글 커다란 항아리는 짚불로 속을 휘휘 저어 미리 소독해 놓았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소금을 조금씩 넣어가며 서서히 저어 염도를 맞춘다. 달걀 띄워 떠오를 정도면 적당하다. 염수에 볍씨를 담그는 소금물 가리기를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도 함께 담근다. 하루 정도 담가두면 염수선(鹽水選)이 끝난다. 실한 모를 생산하기 위한 살균, 살충 과정이라 허투루 할 일이 아니다. 염수선 마친 볍씨는 다시 이십 도 정도의 맑은 물에 닷새 정도 담가 충분히 물을 먹여 완전히 잠을 깨운다. 잠에서 깨어날 즈음이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맑은 공기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충분히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산소가 부족하지 않도록 매일 새 물을 갈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을 충분히 먹어 통통해진 볍씨는 싸리대로 만든 커다란 소쿠리에 담아 물기를 뺀다. 물기 빠지고 나면 소쿠리를 안방 윗목으로 옮겨 삼베 보자기를 덮어준다.
형은 동이 트자마자 써레 얹은 지게를 짊어지고 소죽 배불리 먹인 암소를 앞세워 다랑논으로 향한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암소는 먼저 논에 들어가 멍에 채우기를 기다린다. 멍에를 목에 올리고 밧줄을 써레에 연결한다. “이랴” 한 마디에 암소는 기다렸다는 듯 발목까지 빠지는 쟁기 골을 따라 써레를 끌고 간다. 며칠 전 가라 엎어놓은 울퉁불퉁한 논을 평탄하게 만드는 일이다. 암소는 물기 머금은 무거운 흙더미를 우직하게 써레로 끌고 갈 뿐 힘든 기색 하나 내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오는 찬 기온이 소의 따스한 콧김과 섞이며 하얀 김을 뿜어내는 모습으로 힘들다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다랑논의 대화는 “이랴, 워어- 워어-”가 전부다. 써레질이 끝나면 써레 밑에 널판자를 대고 번지 치기를 하면 볍씨 뿌릴 못 판 준비는 끝이 난다.
논 일 끝낸 암소를 외양간에 들이며 목덜미를 두어 번 쓰다듬어 오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 대가로 콩 넣고 끓인 쇠죽 두어 바가지를 주고 나서야 형도 아침 허기를 채운다.
윗목 볍씨 소쿠리를 덮고 있는 삼베 보자기를 수시로 열어보며 발아 상태를 확인한다. 볍씨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이 튼다는 것을 믿지만 기다리는 마음은 걱정이 앞선다. 우윳빛 볍씨가 거친 왕겨를 뚫고 삐죽이 올라오면 모판에 뿌릴 때가 된 거다. 번지 치기 하여 매끄럽게 만들어 놓은 모판에 볍씨를 고르게 뿌리며 누런 황금물결을 상상한다. 사월 중순의 물 논은 어린 볍씨가 견디기에는 힘든 시간이다. 따스한 봄볕이 볍씨를 돌볼 수 있도록 수시로 물고를 조절해 주어야 한다. 낮에는 직접 볕을 쪼일 수 있도록 물을 빼주고, 밤엔 찬 기온이 어린 볍씨에 닿지 않도록 물을 충분히 들여 높이를 조절해 주면서 힘든 시기를 같이한다. 착상된 볍씨는 거친 경쟁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야 한다. 모판의 양분을 빨아들여 키를 키워야 만 한 줌의 햇살이라도 더 받아 경쟁에서 이겨 낼 수 있다. 물 논의 한기와 봄바람을 이겨내며 커가는 모들이 대견하기만 하다. 한 달여 지나 훌쩍 자란 모들을 모판에서 옮겨주어야 한다. 마음껏 새끼치고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논으로 이식해 주어야 한다.
모내기가 시작되면 온 동네가 분주하다. 때를 놓쳐 웃자라기라도 하면 병약해져 모내기 후 자리 잡는데 몸살 한다는 걸 아는 터라 온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에 나선다. 고사리손이나 허리 굽은 노인까지 못줄 잡이라도 해서 일손을 덜었다.
형의 경제 기준은 벼 낱알이다. 볍씨 한 알에 정성을 쏟으면 가을에 백오십에서 풍년이면 백팔십 개의 낱알이 달린다는 것을 경험치로 알고 있다. 이런 고수익 사업은 벼농사 외엔 없다는 것이 형의 생각이고 농사짓는 이유다. 밥 한 공기에 약 팔천 개의 낱알이 들어간다고 형은 종종 말한다. 형은 시장물건 값에 낱알의 가치를 대입하여 한 되, 한 말을 기준으로 비싸고 싼 물건을 판단했다.
동네 사람들은 무더위 피해 계곡으로 천렵 나갈 때 형은 다랑논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폭염과 씨름하고 있었다. 벼포기 사이에 깊숙이 뿌리내린 채 영양분을 빨아먹는 피를 뽑아내고 물 위에 떠다니는 개구리밥을 제거하느라 더위를 탓할 겨를이 없다. 한여름 폭염을 이겨내야 탈곡기 돌아갈 때 더 많은 수확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낱알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이유다.
보내준 한 가마니에 얼마나 많은 땀과 수고가 담겨 있을까? 밥공기에 담긴 낱알 하나씩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며 형 마음을 헤아려 본다. 맏이인 형은 아홉 남매 중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며 농사를 지었다. 형제들이 하나둘 객지로 나갈 때 ‘내라도 있어야 고향이 있을 거 아녀-.’라며 고향에 남았다. 그랬던 형이 얼마 전 양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수십 년 농사지으며 혹사당한 무릎이 온전할 리 없었을 거다. 더는 농사지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지막 수확한 쌀을 동생들에게 보내준 거였다.
관절이 상해서 삶의 전부였던 농사일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형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거다. 낱알 하나하나에 풍요를 기대했던 젊은 날의 행복도, 황혼의 아름다움도 세월의 무상함을 원망하며 농사를 접었을 형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쌀 보내주어 고맙다는 전화를 걸었다. 내일 쇠전에 암소를 내다 팔기로 했다며 마지막으로 여물이나 넉넉히 먹여 보내야겠다는 형의 힘없는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아 밥알을 넘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