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도 안 되는 녀석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

by 이광주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자식 교육과 골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자책하는 열두 명의 아버지들이 해외 유학길에 나섰다.

비장한 각오로 이번엔 성공하고 돌아오자며 단단히 마음먹고 떠났다. 유학 가면 좀 나아지려나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국내에서 좋다고 소문난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때론 강하게, 어쩔 땐 살살 다뤄 보기도 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좌절하고 포기하려다 태국행을 택한 거였다.


이번에 같이 가는 녀석은 조그만 체구에 단단하기는 돌덩이 같고.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는 녀석이다. 겉은 우두 후유증처럼 파이고, 매끄러운 것을 칠한 듯 반질거린다. 그런 탓에 멀리 달아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파인 곳으로 바람을 휘감으며 날아오르길 좋아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 애물단지를 마음대로 다뤄 보겠다고 이십오 년 동안 데리고 다녔지만 해결하지 못하고 유학길에 나선 참이다.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한 건 밤 열두 시. 대전에서 낮 한 시에 출발했으니 꼬박 열두 시간 걸린 셈이다. 공항에서 버스로 두 시간 달려 카오야이 국립공원에 있는 보난자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 객실 배정받아 짐 풀고 나니 새벽 네 시, 오래 묵은 파김치 신세다. 피곤한 일정을 감내하는 건 이번에 잘 될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말썽꾸러기를 데리고 잔디밭으로 나갔다. 제대로 다뤄 볼 욕심에 첫날부터 강하게 밀어붙일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순순히 말을 들을 녀석이 아니다. 첫 홀부터 속을 뒤집어 놓는다. 말을 듣는 듯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더니 끝부분에서 급격히 휘면서 숲 속으로 달아났다. 숨어 봐야 손바닥 안이라며 찾아 나섰다. 찾아낸다면 부드럽게 달래볼 생각이다. 작정하고 숨은 녀석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썽 부리는 녀석일수록 숨을 곳을 잘 찾아 속이는 재주가 있다. 억새같이 키 큰 풀밭 밑바닥엔 오랫동안 낙엽이 쌓여 숨어들기 최적의 장소였다. 같이 찾던 동료가 “에이 포기해요. 마음먹고 숨은 녀석 못 찾아요.”

“아직 쓸 만한 녀석이었는데!” 포기하고 다른 녀석을 꺼내 들었다. 이번엔 붉은색이다. 숨는다 해도 찾기 쉬울 듯해서다. 이번엔 아이언 클럽으로 부드럽게 다뤄 보기로 했다. 겉 색깔이 다르다고 속도 다를 거라 믿었던 게 실수였다. 의도대로 똑바로 날아간 녀석이 땅에 떨어지자 갑자기 반항하듯 구르기 시작했다. “어-어 안 돼, 서- 서-.” 놀라 소리를 질렀다. 계속 굴러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말썽 부리던 녀석이 태국 왔다고 달라질 리 만무다. 두들겨 팬다고 말들을 녀석들이 아니었다. 화를 내고 흥분하면 할수록 좌우로 달아나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살살 부드럽게 다루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여러 날이 걸렸다. 첫날은 피곤해서 그러려니 내일 다시 시도해 보기로 했다.

‘보난자’는 팔백 미터 고지에 위치해 이른 아침에는 시원했다. 피곤도 풀리고 몸이 가벼워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때 묻지 않은 흰색을 꺼내 들었다. 순박해 보여 반항하지 않을 듯해서다. 어제의 실패를 거울삼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살살 다뤄 볼 생각이다. 그 녀석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부드럽게 대하자 반항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숲으로 숨거나 구르지도 않고 원하는 자리에 잘 있었다. “순박한 녀석이 착하긴 해….”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육 번 홀까지 왔다. 흑고니 한 쌍이 한가롭게 아침 햇살을 즐기고. 붉은색, 흰색 연꽃들이 꽃잎을 활짝 펼쳐 호수를 장식하고 있다. 순순히 말을 듣던 녀석이 호수를 만나자 갑자기 돌변했다. 연꽃에 반했는지 갑자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쓸 겨를이 없었다. 굴러 들어갔다면 진흙에 빠지거나, 수초에 걸려 구조를 시도해 볼 수도 있었건만 하늘로 솟구치다 뛰어든 터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순박하다고 믿었던 녀석이 사라지니 안타까움이 더했다.

포기하고 다른 녀석을 꺼내 어렵사리 그린 위에 올려놓았다. 반은 성공한 셈이나 어떻게 반항할지 몰라 조심스레 다뤄야 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이곳에 올라온 이상 달아날 곳이 없다며 내리막 경사에서 함부로 다뤘다가 언덕 밑으로 굴러가는 바람에 서너 번 애를 먹고는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

그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으려 굴러 도망갈 길이 있는지 경사를 살피고, 옆으로 살짝 비켜 가는 걸 예측하기 위해 잔디 결도 꼼꼼히 확인했다. 튀지 않고 굴러가도록 머릿결 쓸어내리듯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 그래야 겁을 먹지 않고 순순히 홀컵으로 들어간다. 녀석은 홀컵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들어가려다 옆으로 삐지고, 심지어 홀컵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아보고는 다시 나오기 일쑤다. 한 번 들어가면 게임이 끝나 하늘을 날수도, 마음대로 구를 수도 없어 존재감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줌도 안 되는 녀석을 마음대로 다뤄 보겠다고 코치한테 교육받고, 조언도 많이 들었다. 오죽하면 태국까지 와서 땡볕에 이 고생을 하겠는가! 어스름한 달빛에 의지해 야간 훈련을 하는 친구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열두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처지가 비슷했다. 태국에 왔다고 별수 있겠냐며 처음부터 기대를 말았어야 했단다. 실망하는 이야기뿐이다. 욕심에 맞추려 밀어붙인 게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기초를 잘 못 다져놓은 탓이라며 후회하는 이도 있었다. 자식처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이 실감 나는 하루였다.


돌아보면 자식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실망하고, 과외다 뭐다 모든 걸 쏟아부으며 내 목표대로 가길 원했었다. 홀컵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골프공처럼 자식도 부모의 컵 속에 갇히지 않으려 옆길로 빠지고 달아나 자기 길을 가려했던 거였다.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찾도록 기다려 주었어야 했다. 제 몫을 다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보았음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1.68인치 한 줌도 안 되는 녀석도 마음대로 못하는 나를 자책해 본다.


저 멀리 스스로 빛을 발하는 ‘십자성’ 알파 별이 유난히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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