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하는 공포는 죽음보다 무섭다.
왼쪽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카메라 조리개를 너무 많이 열어 허옇게 나온 사진처럼 뿌옇게 보이는 증상이다. 수정체가 혼탁해진 백내장이 왔단다. 어릴 적 시골에선 이런 증상을 개 눈깔 박아 잘 보이지 않는다고 장애인 취급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노인성 질환 중 흔한 질병인데 좀 일찍 찾아온 것 같다.
간단한 시술로 완치된다고는 하나 만에 하나 잘못되면 실명하는 건 아닌지? 몇 날 며칠 고민했다. 애꾸 선장처럼 검은색 안대를 대각선으로 차고 다니게 되는 건 아닌지, 짙은 선글라스를 밤낮 구분 없이 써야 하는 건 아닌지? 별별 걱정이 다 들었다. 유명하다는 안과를 전전하며 병원쇼핑을 했다. 결국, 서울 강남에 있는 종합병원을 찾아 시술을 받았다.
의사는 간단한 시술이라 했다. 사전 검사 시간이 좀 걸릴 뿐. 이십여 분이면 끝난단다, 시계의 시간으론 짧으나 느낌의 시간은 무척 길었다. 마취한다며 눈에 주삿바늘을 찔렀다. 너무 깊게 찌르는 것 같아 흠칫 놀라 심호흡을 했다. 한 뼘은 족히 들어가는 것 같아 겁이 났다. 절개하는가 싶더니 순간 암흑으로 변했다. 시각장애인의 어둠이 이럴 것이리라. 빛이 사라진 어둠의 공포는 충격이었다. 이대로 못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의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수술하겠다고 너무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닌지 후회도 됐다.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수술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렌즈” 의사의 짧은 한마디가 불길한 잡념을 중단시켰다. 잠시 후 칠흑 같은 어둠에 희미한 빛이 두세 번 보였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인공 수정체가 받아드린 최초의 빛이다. 태어날 때 조물주가 주었던 수정체를 인간이 만든 것으로 교체하여 받아드린 빛이다. 신기할 뿐이다.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의사는 간결하게 말했다. 눈에 보호대를 덮고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더니 회복실로 가란다. 수술대를 내려오는 순간 한쪽 눈으로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을 취하느라 누워있는 동안 ‘심청전’에 나오는 심 봉사 생각이 났다.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의 효심에 초점을 맞춰. 심 봉사의 보지 못하는 고통은 묻혀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 수 없어 인지하지 못하는 색(色), 형(形), 크기에 대한 느낌의 한계. 모든 사물을 촉감과 청각으로만 판단했을 제한된 인지 감각에 대한 좌절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었을 거였다. 보지 못해 겪었을 심 봉사 고통의 삶을 짐작해 본다.
심청은 호롱불 끄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이 아비의 세상이고. 깜깜한 밤 문틀에 이마를 부딪친 아픔이 아비의 아픔이고, 밤길의 무서움을 아비는 낮에도 느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 졌다. 돌부리에 차이면 아비가 차인 것이고, 구덩이에 빠지면 아비가 빠진 거로 생각하며 아비의 고통에 괴로워했다.
아비는 청이의 보드라운 볼을 만지며 연한 감촉을 익혔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매끄러운 촉감을 느꼈다. 점점 자라는 키를 만져보며 길이를 가늠했고, 안아주며 무게의 정도를 익혔다. 청이 성장이 도량의 기준이 되었고, 청이 손을 잡고 걸으며 길을 익혔다. 딸의 눈을 통해 사물의 종류를 알아가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상상했다.
심 봉사는 나무를 만져보고 굵기를 가늠했으나 높이를 짐작하지 못했고, 나무는 알았으나 숲을 알진 못했을 거다. 강에서 청이를 씻기며 물의 흐름은 알아도 크기와 깊이를 알지 못했을 거다. 몰려오는 비구름을 보고 비가 올 것을 예측하진 못하나 빨랫줄에 널어놓은 고쟁이 눅눅해지는 걸 만져보고 비를 예측하고 빨래를 걷었을 거였다.
죽음을 초월한 심청의 효심은 보지 못해 절망하는 아비의 고통에서 비롯되었을 거다. 심청은 그런 아비에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과 밝은 태양의 눈부심, 뭉게구름 떠다니는 코발트 빛 하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손가락의 촉각이 세상의 모든 것인 양 알고 있는 아비에게 인당수의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타는 듯한 붉은 노을, 집채만 한 배들이 오가는 바다도 보여주고 싶었을 거다.
보지 못하는 아비의 고통이 죽음의 두려움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고 주저 없이 인당수 거친 파도에 몸을 던졌을 거다. 혹시 ‘심청전’의 작가는 시각장애인이 아니었을까? 볼 수 없는 삶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걸 심 봉사를 통해 말하고 싶진 않았을까?
안대를 벗었다.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이고, 살랑대는 나뭇잎도 보였다. 힘차게 달리는 자동차, 환한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도 보인다. 볼 수 있음에 행복하다.(사진 : lee 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