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입니다.

청와대에서 나를 찾았다.

by 이광주

“청와대입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화를 건 그는 착 가라앉은 젊잖은 목소리로 내 신분을 확인했다. 무시무시한 곳에서 찾을 이유가 없던 터라 놀란 가슴이 진정되질 않았다.

“진정서가 접수돼서 구청으로 넘길 테니 사실대로 답변해 주면 됩니다.”

민원내용을 물었어야 했는데 겁먹어 묻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불안은 점점 커졌다. 청와대에서 연락이 올 정도의 엄청난 진정 내용이 무엇일까? 지난 일들을 생각해 내려 하나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졌다.

며칠 후 구청 직원들이 찾아왔다. 손에는 측정 장비로 보이는 계측기가 들려있었다. 다른 한 명은 ‘청와대 이첩’이란 붉은 스탬프가 선명하게 찍힌 문서를 들고 있었다. 이유를 말하지 않은 채 집안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다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두세 달 전에 아래층 사는 오십 대 남자가 층간소음이 심하다며 찾아왔었다. 아이들이 몇 번 뛰었다는 숫자까지 거론하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갔다. 층간소음이 발생할 수 있기에 사과하고 이해를 구했다. 이후 아래층 남자는 밤낮없이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고 인터폰을 했다. 어느 날 아내와 아이가 여행 가고 없던 날에도 찾아왔다. 그날은 직장 동료들이 찾아와 고스톱을 치던 중이었다. 화투 치는 소리가 무슨 소음이냐며 그를 향해 동료들이 화를 냈다.

병무청 보일러실에 근무한다는 그는 낮에도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스무 살 넘은 아들딸과 사는데 유별난 사람이라며 경비 아저씨가 알려준다. 청와대에 진정 낸 사람은 아래층 남자였다. 공무원이었던 나를 청와대 진정을 넣어 골탕 먹일 심산이었다.

팔십 년대 초 층간소음은 생소한 분쟁이었다. 이웃 간 이해하면 참아주는 것이 미덕이었다. 구청 직원은 아들을 안아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웃었다. “아빠한테 아래층 아저씨 막걸리 좀 사드리라고 해”라며 진정 내용을 설명했다. 청와대 민원을 넣을 정도면 아파트 내에서 가내공장을 하는 줄 알고 찾아왔단다. 애들 뛴다고 청와대 진정 넣는 사람은 처음일 거라며 돌아갔다. 진정 내용을 알고 미안함이 분노로 바뀌었다.



며칠 후 그가 또 찾아왔다. “청와대 진정 넣었어. 너 잘라버릴 거야.”

전면전 선포를 한 거였다. 어른이고 미안함이고 전쟁 선포를 한 이상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먼저 쌍욕이 튀어나갔다. “뭐야 어른 대접해줬더니 개 같은 X이네.” 고분고분 사과 모드에서 갑자기 성난 괴물로 변해 대들자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싸우는 소리에 경비아저씨가 올라왔다.

이놈이 어른한테 욕을 했다며 아래층 남자는 경비에게 고자질하듯 길길이 날뛰었다. 즉시 나는 고분고분 모드로 감정을 바꿨다.

“아니 어르신, 화가 나도 없는 말을 지어내시면 안 되지요? 제가 어른께 욕을 하다니요.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흥분하지 마시고 애들이 좀 뛰더라도 손주라 생각하시고 귀엽게 봐주세요? 병무청에 근무하시는 점잖은 분이 없는 말로 젊은 사람을 나쁜 놈 만들면 자녀분들이 죗값 받습니다. 어르신!”

이런 소동은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어느 날 아들딸까지 데리고 찾아와. 내가 욕을 하고 죽인다고 했다며 난리 법석이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땐 착한 모드로 급변신 하는 변장술을 활용했다. “아드님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어르신께 욕을 했겠어요. 신경과민이신 것 같은데 잘 좀 돌봐드리세요. 이웃 간에 잘 지내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래층 남자는 앞가슴을 쥐어뜯으며, 답답해 미치겠다며 펄펄 뛰었다. 녹음 장비가 귀했던 시절 감정 바꾸기 이중 행동에 그는 신경과민 환자 취급을 받을 뿐 완패로 끝났다.


일 년 정도 지나 아래층은 비슷한 자녀를 둔 젊은 부부로 주인이 바뀌었다. 비 내리던 날 오후 파전 몇 장을 부쳐 아래 집에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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