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래떡

피범벅 가래떡의 달콤함

by 이광주

집안이 텅 빈 것 같다. 시끌벅적하던 명절 뒤의 허전함을 달래려 아내는 살얼음 언 식혜와 노릇노릇 구운 가래떡을 내어왔다. 붉은빛 도는 조청이 하얀 떡살을 감싸자 침샘이 먼저 알아챈다. 조청 찍은 떡살을 집어 든 순간, 붉은 피로 범벅이 되었던 가래떡 생각이 떠올랐다.

가래떡은 설을 품은 음식이기도 하다. 어릴 적 가래떡 뽑아오는 날부터 설 마중은 시작됐다. 객지 나간 형을, 설빔에 대한 기대로 밤잠을 설쳤다. 그 기다림 중에 가래떡도 한몫을 했다. 설날 아침엔 떡국을 먹었다. 뽀얀 사골국물에 끓인 떡국에 가늘게 썬 노란 계란 고명이 올려 나온다. 그 걸 먹어야 한 살 더 먹고, 정초의 시작으로 삼았다. 그런 이유로 형편이 넉넉지 못한 집이라도 가래떡 몇 되는 뽑는 것이 설이다. 설은 방앗간 가래떡 기계를 가장 바쁘게 돌아가게 했다.


육십 년대 후반엔 그러지 못했다. 음력설을 금지하면서 마을에선 갈등이 생겼다. 나라에서 양력설을 권장해 음력설에는 가래떡조차 뽑지 못하도록 단속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방앗간은 가래떡 기계를 돌리지 못했다. 떡국 없는 설을 쇨 수 없었던 어머니는 산 너머 향천리 방앗간에서 밤에만 몰래 가래떡 기계를 돌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석양이 질 때쯤 형은 불린 쌀 한 말을 지게에 지고 집을 나섰다. 향천리까지는 마산 재를 넘어 십오 리는 족히 되는 먼 길이다. 어머니는 형 말동무도 할 겸 같이 가라 했다. 늦은 밤 산길을 넘어올 형의 무서움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은근히 기다렸던 말이다. 마산 재는 비교적 높은 산으로 무서운 이야기들이 전해오는 고갯길이다. 호랑이가 사람들에게 돌을 던진다거나, 귀신을 보았다는 것 같은 소문들이다.

향천리에 도착하자 어둠이 짙어 고요했다. 청천저수지 잔물결 부서지는 소리만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발동기 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방앗간에는 이미 가래떡 뽑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착하는 대로 지게를 세워놓는 것으로 순번이 정해졌다. 방앗간 주인 내외는 호롱 불빛에 의존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불려 온 쌀을 곱게 빻아 찜통에 올리고 주인이 바뀌지 않도록 그들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을 해 놓았다.

우리 차례가 되었다. 찜통 뜨거운 열기가 찬 공기와 부딪치며 뽀얀 김을 만들어 시야를 가렸다. 가래떡 기계에 찐 쌀가루를 쏟은 다음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밀어 넣자 한 줄기 뽀얀 가래떡이 뱀장어 미끄러지듯 물속으로 들어간다. 주인 아낙은 찬물에 한숨 식힌 가래떡을 서너 뼘 길이로 능숙하게 잘라 대야에 담는다. 아직 식지 않은 가래떡은 더운 김을 내뿜어 달콤한 냄새를 풍긴다. 침샘이 목 넘김을 준비한다.

형은 먹어보란 말도 없이 떡 담은 대야를 삼베 보자기로 덮고 지게에 단단히 묶었다. 방앗간을 출발한 시각은 열 시가 넘은 듯했다. 지게를 지고 가는 형 앞에서 호롱불 들고 밤길을 인도했다. 행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가래떡이 쏟아질까 걱정되었다. 길이 잘 보이도록 호롱불을 앞뒤로 움직였다. 큰 돌, 움푹 파인 곳을 일일이 설명하며 청사초롱 들고 함진아비 안내하듯 길을 열었다. 저녁 먹고 출발 한지 몇 시간이 지나 배 속은 비워 진지 오래고 지게가 움직일 때마다 풍기는 떡 향기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방앗간에서부터 침샘이 자극받아 헛침만 넘긴 지 오래다.

“형, 가래떡 하나만 먹고 가면 안 돼요?”

형의 냉정함은 배 골에는 고문이었다. 소리 없이 눈물이 났다. 따끈한 가래떡을 양손으로 잡고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따라왔는데. 융통성 없는 형이 기대를 뭉개버려 눈물이 났던 거다.

골이 났다. 형이 따라오든 말든 내광쓰광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 형은 골 부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따라올 뿐. 가래떡을 먹고 가자는 말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뽑아 온 가래떡을 대나무 광주리에 담아 삼베 포를 덮어 통풍 잘되는 광에 하루 이틀 넣어두었다. 썰기 좋게 꾸들꾸들 굳자 누님과 뒷방에 마주 앉아 가래떡을 썰었다. 어머니는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가 불을 끄고 떡 썰기와 글쓰기 비교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밤늦도록 떡 썰기를 계속했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나에게 어머니는 가래떡 꽁다리를 입에 넣어주었다. 꽁다리는 알맞게 굳어 씹을수록 단맛이 돌았다. 단맛이 오래 남아있도록 꽁다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목 넘김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어느 순간 달콤한 꽁다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얼마 남지 않은 오후였다. 어머니는 남겨두었던 가래떡 한 가락을 숯불에 구워주었다. 겉은 노릇노릇 바삭한 것이 고소한 과자 같고, 속은 말랑말랑 부드러워 갓 쪄낸 찐빵 같았다. 옆집 사는 다섯 살 많은 재형이가 가래떡을 달라고 졸랐다. 비틀어 잘라 주자니 크게 잘릴 것 같아 가위로 조금만 잘라 주기로 했다. 가위를 잡은 재형이는 길게 잘라가려 하고 난 조금만 자르라며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다 왼쪽 검지 끝이 가래떡과 같이 가위에 잘리고 말았다. 가래떡 나눠 먹기는 통곡으로 변했다. 손가락과 같이 잘린 하얀 가래떡은 피범벅이 되었다. 오른손에 피 묻은 가래떡을 들고 피 흘리는 왼손은 하늘로 치켜든 채 어머니에게 뛰어갔다. 장애가 발생하진 않았고 조금 짧아진 채 흉터로 남았다.

가래떡을 먹을 때면 마산 재 넘을 때의 먹고 싶던 간절함이, 어머니가 입어 넣어주던 꽁다리의 달콤함이, 피범벅 가래떡의 추억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keyword
이전 06화양말 속 잠든 열차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