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 가는 아버지는 양말 속에 돈을 넣어 가셨다
난생처음 서울 가는 날이다.
한 달 전부터 떠벌리고 다녔던 터라 마을에선 모르는 이가 없다.
"너 서울 간다며 좋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러워한다. 며칠 전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도 서울 보낼 준비에 덩달아 분주했다. 서울 가서 촌놈 취급받을까 봐 운동화며 옷도 한 벌 사 왔다. 새 옷을 수시 입어보고 만져보며 꿈이 아니길 확인했다.
서울행 기차를 타려면 십 리 길을 걸어 읍내로 가야 한다. 어머니는 형에게 갖다 주라며 참깨, 고춧가루, 무말랭이, 김을 바리바리 싸주며 당부했다.
“조심해야 혀- 서울 사람들은 눈 뜨고 있어도 코 베 간댜. 길 잃으면 집에도 못 와.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되는 겨- 형이 서울역으로 마중 나온다고 헤씅 께 앞사람 잘 따라서 개찰구로 나가면 돼.”
혼자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대천역까지 배웅 나오며 여러 번 일렀다. 역대합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머니가 사준 열차표를 손아귀에 단단히 움켜쥐었다.
개찰구에서 큼직한 모자와 잘 다려진 검은색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승차권 검사를 했다. 집게 같은 것으로 차표 귀퉁이를 U자 형태로 싹둑 자르더니 돌려주었다. 뒤를 돌아보자 어머니는 불안한 듯 억지웃음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플랫폼에는 기다란 나무의자 서너 개가 놓여있고 곧게 늘어선 철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플랫폼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놓인 철로 따라 상·하행 기차가 분리되어 들어오는 것도 신기했지만 서울까지 철길이 이어져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빠 아앙-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렸다. 곧 열차가 진입한다는 알림인 듯했다. 보따리를 이고 든 승객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완목 신호기 두 개가 밑으로 내려졌다. 잠시 후 지축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열차가 들어왔다. 몸이 쏠릴 듯 휘청거렸다. 가까이서 본 열차는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크기다. 바람에 빨려들지 안으려 다리에 힘을 주고 보따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서자 기관사는 굴렁쇠 모양의 통표 휴대 기를 통표 걸이에 정확하게 던졌다. 그와 동시에 독수리가 먹이 채듯 꼽아놓은 다른 통표를 날렵하게 낚아챘다. 버스와 달리 열차는 특별한 게 많았다.
서둘러 삼등 칸에 올랐다. 입석표라 어디에 서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내릴 때를 생각해 출입구 가까운 쪽으로 갔다. 비싼 좌석 표를 가진 사람들은 녹색 벨로아 천으로 감싼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열차표를 잃어버리면 서울 가지 못할 것 같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움켜쥐기를 반복하며 확인했다. 서울은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간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터라 어머니가 싸준 보따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열차표를 보따리 속에 깊숙이 넣어두는 것이 제일 안전할 것 같은데 차표 검사할 때 꺼내는 것이 걱정이었다. 문득 아버지가 장에 갈 때 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양말 속에 넣고 가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났다. 그 방법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열차가 출발하자 차장 밖에 보이는 나무며 집들이 빠르게 뒤편으로 달아나는 모습이 믿어지질 않았다. 눈을 의심하고 비벼보며 달아나는 물체를 확인하려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예산, 천안, 오산, 평택….
처음 보는 역 이름을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얼마를 더 가야 서울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먼 것은 분명했다. 열차 승무원 같기도 한 홍익회 판매원이 복잡한 사람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삶은 계란 있어요. 계란! 심심풀이 땅콩도 있어요."
기차 난간에 앉아 어머니가 넣어준 삶은 계란을 꺼내 먹었다. 소풍날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자 가슴이 콩닥거렸다. 수많은 사람에 놀라고, 플랫폼마다 정차된 많은 열차에 놀랐다. 이런 속에서 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했다. 어머니가 했던 말을 중얼거리며 앞사람을 종종걸음으로 따라갔다. 다행히 모든 사람이 나가는 개찰구가 한 방향이었다. 역무원을 보는 순간 차표를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나질 않았다. 잃어버릴까 봐 수시로 확인하고 움켜쥐기를 반복했었는데 승차권이 없었다. 당황하니 눈앞이 깜깜해지고 아무 기억도 나질 않았다. 개찰구가 가까워지자 극도로 긴장한 탓에 오줌 마렵고 배가 아팠다. 승차권 없으면 끌려가 형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 울음이 났다.
“애야!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차표 없 유-. 아무리 찾아도 없 유-.”
“옆으로 비켜서, 잘 찾아봐.”
모든 사람이 개찰구를 빠져나갈 동안 보따리를 풀어 참깨, 무말랭이 봉지를 다 헤집으며 찾아도 승차권은 보이지 않았다. 승객이 빠져나가 한가해지자 역무원이 다가왔다.
“아직 못 찾았어?”
“잘 챙겨는 디- 읍서 유-.”
“이번엔 그냥 보내줄 테니 다음부턴 잘 챙겨라. 차표 없으면 곱빼기로 물어야 하는 거 알지.”
그는 개찰구를 잠그고 자리를 떠났다.
마중 나온 형이 보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전차 역으로 걸어가는데 양말 속에서 껄끄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잠자던 열차표가 움직임에 깨어났다.
“형, 차표 찾았어 차표.” 형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서울은 기차역만 크고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집도, 차도, 모든 사람이 이곳에 모여 사는 것 같았다. 특히 놀라운 건 전깃불이 너무 많았다. 고향집에선 등잔불을 켜고 사는 터라. 전깃불은 읍내에 나가야 만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집집이 전깃불을 켜는 것뿐만 아니라 길옆 가로등에 전깃불을 켜놓아 대낮같이 밝았다.
2원 50전짜리 전차표 두 장을 형이 사 왔다. 형네 집은 전차를 타고 더 가야 했다. 전차는 바닥에 놓은 철로를 따라 운행했다. 전찻길 따라 어른 키 두 배 높이에 전선이 거미줄처럼 얼키설키 매어져 있는 것도, 쇳덩이 전차가 전기로 움직인다는 것도 놀랍다. ‘찌링찌링’ 출발 신호가 울렸다. 차창 밖 움직이는 서울에 고정된 두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독립문 정거장에서 내려 형이 사다는 냉천동을 향했다. 이곳은 서울역에서 보았던 서울이 아니었다. 좁은 골목길뿐만 아니라 가파른 언덕길이 서울에 대한 환상을 조금씩 지웠다. 작고 초라한 판잣집들이 얽혀있는 산동네 모습이 더욱 그랬다. 차가운 샘물이 솟아나는 동네라 이름도 냉천동(冷泉洞)이다. 형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냉천동은 지붕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모든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 같았다.
형네 집은 조그만 쪽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명이 겨우 움직일 만한 좁은 부엌이 있고, 연탄아궁이 바로 옆에 창호지를 덕지덕지 덧붙인 미닫이문을 들어서면 방이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조그만 방 하나가 전부다.
저녁을 먹고 형은 텔레비전이란 걸 보여주겠다고 했다. 언덕길을 내려와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한 사람당 1원씩을 내고 텔레비전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미 몇 사람이 모여 있었다.
텔레비전을 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텔레비전 속에 손가락 만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말을 하고, 움직이며 웃고 떠드는 것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라디오도 본 적이 없던 터라 텔레비전 속에 사람들이 산다는 건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시골집에 내려와 서울에서 봤던 텔레비전 속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 번을 말해도 친구들은 믿질 못했다. 당연하다. 나도 믿기질 않으니. 분명 사람들이 텔레비전 속에 있었는데…!
“촌놈들이 텔레비전을 알 턱이 있나. 서울 갔다 온 나만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