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없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놓는다. 부엌 찬장에서 먹을 것을 찾는다. 삶아놓은 감자 몇 개가 점심이다. 허기진 배를 채운 뒤, 논둑길 따라 한달음에 사기정골 저수지로 향한다. 누구와 약속할 것도 없다. 그곳에 가면 항상 또래들이 놀고 있다.
훌렁 벗고 저수지에 뛰어든다. 남자들은 발가벗고, 여자애들은 아래 바지를 입은 채 물놀이를 한다. 한낮 더위에도 저수지 물은 제법 차갑다. 가장자리는 헤엄 못 치는 애들 물장구 놀이터다. 헤엄 좀 친다는 몇몇은 저수지 가운데를 가로질러 건너기 시합을 한다. 계곡을 막아서 만든 저수지는 수심이 깊고, 폭이 넓은 곳은 백여 미터가 넘었다.
저수지 갈 때마다 어머니는 주의를 당부했다. “저수지 건너지 말고 가장자리에서 놀아. 건너다 힘 빠지면 빠져 죽는 겨-.” 죽는다는 의미를 알지 못했다. 애들은 죽인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잡히면 죽는다. 한 번 더 그러면 죽여 버린다.’ 자주 사용하는 말이라 건성으로 듣고 흘렸다. 어머니가 주의를 당부했음에도 두세 번씩 저수지를 건넜다.
물놀이가 끝나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산을 올랐다. 중턱에 있는 ‘둠바위’까지 올라가는 것이 일상적인 놀이다. 둠바위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높은 바위 절벽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너덜지대다. 멍석같이 너른 바위도 있고, 큰 바위끼리 엉켜 서너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바위굴도 있다.
송골매 한 쌍이 주변을 경계하듯 빙빙 돈다. 우리가 둠바위 밑에 다다르자 예민해진 송골매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가까이 날아 겁을 준다. 누군가 절벽 중간에 매 둥지가 있다고 소리쳤다. 송골매는 깎아지른 절벽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우쭐하는 마음에 내가 새끼를 잡아 오겠다고 했다.
큰소리쳤지만 십여 미터나 되는 절벽 중간에 있는 매 둥지까지 맨손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궁리 끝에 절벽 위에서 바위를 거꾸로 타고 내려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옆으로 돌아 절벽 위로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본 절벽은 밑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높고 가팔랐다. 바위틈에 자란 나뭇가지며 돌출한 바위를 잡으며 내려가기로 했다. 위험하다며 만류하는 애들도 있었으나 이 정도는 문제없다며 허풍을 떨었다.
절벽 밑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즐비하게 깔린 너덜지대다. 떨어지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을 인지하지 못했다. 바위틈에 자란 나무를 잡고 내려가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간신히 뿌리만 바위틈에 박은 채 연명하는 나무가 단단할 리 없었다. 송골매 새끼를 잡아야겠다는 생각뿐, 추락 사고에 대한 위험은 생각하지 못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작은 돌들이 밑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부서졌다. 그때마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밑에서 숨죽이고 바라보던 애들도 놀라서 “어- 어-” 소리를 낸다.
새끼 있는 곳으로 접근하는 나를 발견한 송골매는 “캭- 캭-” 소리 지르며 머리를 쪼려는 듯 공격해 온다. 둥지에는 회색빛 솜털이 뽀송뽀송하고, 눈이 유난히 커다란 예쁜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새끼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제법 큰소리를 내며 버둥댄다. 둥지에서 꺼내려는 순간, 한 마리가 잡히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새끼 죽었어.” 밑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한 마리는 잡아 앞가슴 메리야스 속에 넣었다. 새끼는 벗어나려 할퀴고 쪼기도 하며 발버둥 친다. 한 발 한 발 절벽을 올랐다. 올라오는 것은 내려가는 것보다 덜 무서웠다. 올라와 뒤돌아보니 얼마나 위험한 짓을 했는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송골매 새끼를 데리고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절벽에 올랐다는 걸 알아차렸다. 죽으려고 환장했냐며 무섭게 화를 내었다. 대나무 회초리가 종아리에 지렁이 수십 마리를 그렸다.
비어있는 토끼장에 마른풀과 작은 나뭇가지를 깔아 송골매 둥지를 만들었다. 논에서 조그만 개구리를 잡아 먹이로 주었다. 처음엔 경계심을 갖더니 곧잘 받아먹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구리 잡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한 달 정도 지나자 회색 솜털을 벗고 검은 갈색 털로 바뀌었다. 부리와 발톱도 날카로워지고 힘도 강해졌다.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캭- 캭-” 소리를 지를 땐 제법 어미의 위용이 보였다. 발톱을 세워 큰 개구리도 한 번에 움켜잡고 부리로 쪼아 간단히 먹어치웠다. 발목에 끈을 묶어 새장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 날아오르는 힘이 강해 끈을 단단히 잡아야 했다. 동네 애들도 매를 보려고 개구리를 잡아 수시로 들락거렸다.
자랑하려고 송골매를 학교에 데리고 갔다. 구경하려고 애들이 몰려오고 만지려는 순간, 놀란 송골매가 달아나 교실 안을 날아다녔다. 잡으려는 애들과 무섭다고 도망치는 애들이 뒤엉켜 교실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도망치던 누군가의 발에 송골매 머리가 밟혔다. 날개를 한두 번 퍼덕이더니 다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놀라 날개 밑으로 손을 넣어 매를 감싸 안았다. 교실 바닥엔 송골매 핏자국이 선명했다. 조금 남아있던 온기마저 식어 버렸다. 힘차게 날던 날갯짓도, 무엇이든 움켜잡을 듯 날카로운 발톱 움직임도 멈췄다. 부리부리 커다란 두 눈도 눈꺼풀이 덮여 다시는 뜨지 않았다.
찰나에 죽음으로 바뀌었다. 죽음이란 어떻게 모든 것을 순간 멈추게 하는지 믿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저수지 건너다 힘 빠지면 죽는다고 했던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죽음이 무서워졌다. 그 후 다시는 저수지를 헤엄쳐 건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