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운동화

뽀송뽀송한 운동화는 어머니 품속 같다.

by 이광주

하얀 줄이 밭고랑같이 가지런하다. 이쪽저쪽 오가며 쟁기질하듯 한 줄 한 줄 정성 들여 꿰었다. 꼬인 곳은 곧게 펴고 팔자 매듭으로 마무리했다.

밤사이 빗물에 젖을세라 ‘워리’ 녀석이 물고 갈까 걱정되어 머리맡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오늘따라 아침 해가 늦잠을 잔다. 빨리 운동화를 신고 뛰어보고 싶다.

처음 신어본 운동화 밑창은 부드럽고 단단하다. 두툼한 천으로 만든 갑피는 겉창에 덧대 부드럽게 감싸준다. 발과 한 몸이 되어 날아오를 것 같다. 중학생이 된 덕이다. 처음부터 운동화를 신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게다(나막신)를 만든다. 도끼로 통나무를 쪼개고, 자귀로 다듬는다. 요리조리 돌려가며 앞부분은 발가락에 맞추고 뒷부분은 뒤꿈치에 맞추며 내 발보다 조금 크게 만들었다. 밑창에 가로로 골을 내어 미끄럼을 방지하고 흙이 달라붙지 않도록 했다. 발바닥 면은 파리가 미끄러지도록 반복하여 사포로 밀어댄다. 마지막으로 ‘피댓줄’을 발에 맞게 잘라 못을 치면 완성된다.

게다를 신고 나가면 돌부리에 차이기 일수여서 발가락은 피가 나고 상처투성이다. 상피병(象皮病)에 걸린 것처럼 발이 단단해지고 두꺼워진다. 피댓줄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몇 차례 물집이 생겼다 터지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발에 맞추어졌다. “따그닥, 따그닥” 게다에 대한 추억의 전부다.

밤이 되면 어른들은 사랑방에 모여 짚신을 삼았다. 새끼를 꼬아 일곱 자(尺) 길이 씨줄 두 가닥을 만든다. 씨줄 중간 부분을 예비 줄로 묶어 허리에 고정한 다음 끝부분을 양쪽 엄지발가락에 건다. 가지런히 정리해 놓은 날줄 용 짚을 씨줄 사이를 지그재그로 오가며 베를 짜듯 날줄을 엮어 간다. 중간중간 발 크기에 맞게 코를 만들어 주며, 촘촘히 조여 준다. 뒤꿈치 부분에 오면 씨줄을 두 줄로 합쳐간다. 중간에 만들어 놓은 코를 꿰어 발등에 맞게 조인 다음 뒷부분 씨줄과 연결해 마무리한다. 끝으로 잔털과 솟아난 검불을 제거하면 짚신이 완성된다. 하룻밤에 서너 켤레씩 만들었다. 짚신은 게다보다 물집이 생길 염려도 없고 부드럽다. 맑은 날에는 요긴하게 신었으나 비가 오면 무용지물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끼던 고무신을 꺼내 신어야 했다.

고무신은 읍내 장에 가거나 학교에 갈 때 신어야 한다. 안쪽 가운데에 타이어 그림이 그려진 검은색이다. 고무신은 게다에 비하면 어머니 젖가슴같이 보드랍고 매끄럽다. 돌부리에 차여 상처가 나거나 물집이 생겨 파상풍에 걸릴 염려도 없다. 비가 오는 날에도 걱정이 없다. 젖으면 거꾸로 잡고 쥐불 통 돌리듯 쉰 셀 때까지 돌리면 뽀송뽀송 말랐다.

중학생이 되면서 교복과 함께 운동화도 신어야 했다. 검정 운동화에 흰색 끈을 매야 한다. 어머니는 발이 클 것을 대비하여 한 치수 넉넉한 것으로 사 오셨다. 발도 운동화가 처음이라 낯을 가리는지 운동화 속에서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달걀 꾸러미 묶듯 마디마디 단단히 조이고 팔자 매듭으로 마무리했다. 매듭을 묶는 순간 운동화는 거짓말같이 한 몸이 되었다. 뛰면 같이 뛰어오르고, 달리면 한 발짝도 뒤지지 않고 같이 뛰었다. 그뿐이 아니다. 높게 뛰면 뛸수록, 거친 길을 가면 갈수록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게다가 청양고추처럼 아리다면 운동화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웠다.


일요일이 되면 어머니는 운동화를 정성스레 빠셨다. 끈을 풀고, 안창을 꺼내고 설포를 앞으로 당긴 다음 헌 칫솔에 비누를 묻혀 설포 깊숙한 부분까지 닦아낸다. 천으로 만든 갑피 부분은 손상될까 봐 비누를 바르고 손으로 부드럽게 씻는다. 마지막으로 밑창과 갑피를 연결해주는 고무로 된 겉창을 칫솔로 닦아낸다. 햇빛 잘 드는 양지쪽 댓돌 위에 세워 두고, 끈은 비눗물로 조몰락거려 빨랫줄에 널어주면 끝이다.

뽀송뽀송 마르고 나면 설포 등을 타고 이쪽저쪽 오가며 쟁기질하듯 한 줄 한 줄 정성 들여 꿰어간다. 꼬인 곳은 곧게 펴고 팔자 매듭으로 마무리하면 어머니 정성이 새것이 된다.

뽀송뽀송한 운동화를 신으면 어머니 품에 안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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