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굴러가 유-

추억은 작품을 만든다.

by 이광주

고교 시절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돌 굴러가 유-’다. 충청도에서 왔다고 서울 사는 녀석들이 비아냥대며 놀려대는 단골 메뉴다. 돌 굴리며 놀았던 추억이 있으니 전혀 상관없는 말은 아니라며 웃어넘겼다.

어린 시절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에 살았다. 산은 놀이터 겸 삶을 배우는 성장 학교였다. 봄이면 고사리, 두릅, 엄나무 순을 따고, 여름이면 골짜기 웅덩이에서 멱을 감고. 가을이면 머루, 다래를 따 먹었다. 겨울에도 무릎까지 쌓인 산에 올라 토끼몰이를 했다. 산에서 내려올 때도 죽은 나뭇가지를 양손에 가득 들고 왔다. 산골 사는 어린이들은 땔감의 중요함이 학습되어 자연스레 행동으로 나타나는 거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보자기를 마루에 던져놓는다. 부엌에 들어가 찬장을 뒤진다. 삶은 감자 몇 개가 점심이다. 허기진 배가 채워지면 몇몇이 ‘모자봉’으로 향한다. 그곳에 오르는 길은 안마당처럼 익숙하다. 크고 작은 바위가 어디에 있고, 쉴만한 곳이 어디쯤 있는지 눈을 감고도 안다.

산마루에 올라 앞가슴 섶을 젖혀 산들바람을 가득 넣는다. 가슴골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이 슬며시 숨어버렸다. 가쁜 숨 돌려놓고 사방을 둘러본다.

오르며 헐떡대느라 나무 등걸 만 보았는데 산마루에 오르니 나무는 없고 숲만 보였다. 산 아래 다랑이 논두렁은 사라지고 무성한 벼들이 너른 들판을 만들어 놓았다. 진녹색 들판을 향해 손가락으로 허공을 크게 그리며 “저 논 몽땅 내-꺼.”라고 친구보다 먼저 소리쳤다. 순간 엄청난 부자가 된 것 같다. 그것도 잠시, 크기를 알 수 없는 구름 덩이가 산 중턱으로 밀려와 땅 부자 꿈을 덮어 버린다. 그뿐만 아니라 큰 나무며 억센 가시덤불, 커다란 바위를 몽땅 덮어 운해로 변신시켰다. ‘모자봉’ 봉우리만이 홀로 얼굴을 삐죽이 내밀더니 꿈은 또 꾸면 된다며 운해를 바라보란다. 솟아오른 봉우리 사이로 뭉게구름 타고 가는 호랑이도 보이고, 거북도 보였다. 구름은 만물상을 만들고 지우기를 반복하더니 산허리를 돌아나가며 운해도 걷어가 버렸다. 구름이 걷히자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청명한 하늘이 보이고, 끝을 알 수 없는 탁 트인 녹색 들판도 보였다.


구름 구경도 싫증 나고 돌 굴리기 놀이를 하자고 했다. 처음엔 축구공 크기 돌을 골라 산 아래로 몇 개를 굴렸다. 조금 굴러가다 멈추고, 사라지기 일쑤여서 재미가 없었다. 합심하여 큰 돌을 골라 굴렸다. 큰 돌은 멀리 굴러갈 뿐 아니라 용맹하기가 천하무적이었다. 웬만큼 큰 나무는 일격에 쓰러트리고 뛰어넘었다. 내리 꽂히는 속도감은 통쾌함이 최고다. 급경사에서 빠른 속도로 흙먼지 날리며 내리꽂을 땐 표범이 뛰어가는 것 같고, 나무에 부딪혀 이리저리 방향을 바꿀 땐 멧돼지처럼 우직하고 날렵했다. 산야를 제압하려는 듯 우르릉 우르릉 쿵 쿵 울부짖음이 산등성이를 넘어 산 전체로 퍼졌다. 갑자기 골짜기로 숨어버린 듯 우르릉거림이 작아지더니 ‘퍽’하는 함지박 깨지는 듯한 단음을 끝으로 장렬하게 사라졌다.

몇 차례 돌을 굴리던 중 구르는 돌을 따라가던 시선이 놀라 멈췄다. 산 아래서 누군가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사람 살려!”를 외치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산 아래에서 땔감 나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직감으로 기와집 머슴 김 씨라는 것을 알았다. 돌을 피해 허겁지겁 달아나는 모습이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웠다. 이번엔 김 씨가 있는 방향으로 조준하여 돌을 굴렸다. 돌 구르는 것보다 피해 달아나는 김 씨 모습이 여간 재미난 것이 아니었다. 굴러가는 돌에 김 씨가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놀려먹는 재미에 묻혔다. 그가 공포에 질려 긴박하게 도망갈수록 쾌감은 더했다. 누군가는 “돌 굴러가-유”라며 약까지 올렸다. 우리가 누군지 알 수 없을 거라며 더 큰 돌을 굴리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주변 돌을 모두 굴리고 나서야 돌 굴리는 놀이는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무 등걸 한 개를 끌고 내려왔다.


그날 저녁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머슴 김 씨가 씩씩거리며 찾아왔다. “아줌니 이 녀석들 때문에 내가 죽을 뻔 했슈-.”그는 모자봉에서 있었던 돌 굴린 이야기며 이리저리 도망 다녀 간신히 살았다며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큰일 날 뻔했다며 연신 허리 굽혀 사과했다. 그날 저녁 회초리 세례를 받고 김 씨를 찾아가 잘 못을 빌었다. 그는 화가 풀린 듯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너그럽게 타일렀다.


“사람 죽는 겨, 다시는 그러지들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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