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발가락

산골마을까지 사춘기는 찾아들었다.

by 이광주

토요일 밤이 좋다. 여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밤이라서 좋다. 산골 마을에는 일찍 땅거미가 밀려왔다. 등잔불 아래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어른들은 사랑방에 모여 새끼 꼬며 긴긴밤을 보냈다. 그때가 우리에겐 기회다.

‘사기정골’에는 남녀 또래 십여 명이 살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모든 관심은 이성(異性)에 관한 거였다. 여자라는 단어만 들어도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고, 못 들은 척 딴전을 피웠다. 업어주던 사촌 누나에게조차 말을 걸기 쑥스러워졌다. 일 년에 한 뼘씩 키가 자라고, 제법 어른처럼 털이 나기 시작했다. 팬티에 누런 코 같은 것을 묻혀 방구석에 숨겨놓고 학교 가는 일도 잦았다. 끼리끼리 모이면 “야 너 거시기에 털 났어, 그거 해 봤어?”라는 이야기가 단골 소재다. 여학생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누구는 가슴이 머리통만 하다거니,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댄다며 키득거렸다. 십 리 등굣길이 짧았다.


영철이와 함께 여학생들 불러낼 궁리를 한다. 그와는 장단이 잘 맞았다. 어두운 논둑길을 가로질러 건넛마을 사는 J네 집으로 갔다. 그는 동네에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나 남학생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간섭 심한 부모 몰래 불러내는 것이 관건이다.

J 방은 대나무 숲과 맞닿은 별채에 있어 대나무 숲으로 숨어들었다. 조그만 격자무늬 창을 통해 등잔 불빛이 새어 나왔다. 그가 방안을 서성일 때마다 실루엣 처리된 움직임이 극도의 관능미로 다가왔다. 입이 마르고 숨이 멎을 것 같다.

작은 소리로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댓잎 스침이 부르는 소리를 삼켜 창문을 넘지 못했다. 웬만큼 큰소리도 댓잎 소리를 이기지 못했다. 다른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키가 작아 창문에 손이 닿질 않았다. 조그만 돌 몇 개를 창문에 던졌으나 응답이 없다. 목말 타고 올라 창문을 두드려 보자고 했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기대라도 하는 듯 그 애가 옷을 벗고 있으면 어떡하지! 엉뚱한 상상이 꼬리를 문다. 놀라 소리라도 지르는 날엔 어른이 쫓아 나올까 더욱 조심스럽다.

밑에 엎드린 영철이가 “낑- 낑” 앓는 소리를 낸다. 가볍게 창문을 두드렸다. 기다렸다는 듯 답을 한다. “누구야?”, “어 나야, 대나무밭 모퉁이에서 기다릴 게 지금 나와.”

잠시 후, 대나무 숲 끝자락에 어렴풋이 누군가가 보였다. 직감으로 J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몰래 나오느라 죽는 줄 알았어.”라며 엄살 부리는 소리가 사랑옵다. 그 애를 앞세워 여학생 두세 명 더 불러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모꼬지 남녀 몇 명이 모이면 약속이나 한 듯 외딴집에 사는 재도네 사랑방으로 간다. 어머니와 둘만 살고 있어, 어른들 눈을 피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 여자 남자로 편을 갈라 ‘빽도 윷놀이’를 한다. 지는 편에게는 꿀밤을 주거나 팔뚝 때리기 벌칙을 준다. 벌칙을 핑계로 여학생 손을 잡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어떤 날에는 내기로 '라면'이나 ‘라면땅’ 과자를 사다 먹으며 토요일 밤을 보냈다.

놀이가 지루할 때쯤, 누군가 갑자기 등잔불을 껐다. 순간 암흑천지다. 여자들은 무섭다고 불을 켜라며 키득거린다. 의도적인 불 끄기다. 어떤 녀석은 “키스 타임이야 키스타임.”이라며 웃기려 든다. 서로 성냥 통을 찾겠다며 더듬거리다 손이 겹친다. 누구 손인지 알 수 없으나 찌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가늘고 새하얀 피부가 연상되는 부드러운 촉감이다. 덥석 잡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이성의 촉감을 경험한 순간이다.

친구 아버지가 군에서 가져왔다는 빛바랜 군용 담요를 넓게 펼쳐 담요 밑으로 다리를 길게 뻗고 수다를 떤다. 주로 여학교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는 사이 밑으로 쥐들이 기어 다니는 듯 담요가 들썩인다. 여자의 발가락을 찾아 나선 늑대 발들이다. 이성의 감촉을 느끼려는 늑대들의 아우성이다. 발가락들은 느리나 역동적이고, 은밀하나 저돌적으로 움직인다.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도 들린다. 누구의 것인지! 맞닿은 순간 숨이 멎을 지경이다. 담요 밑에는 성에 대한 본능적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사춘기 발가락들이 쉼 없이 움직인다.

키득거릴 뿐 누구 하나 담요를 걷어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린 것 같다. 사기정골 사춘기 또래들은 성에 대한 호기심을 발가락을 통해 조금씩 해소해나갔다. 사랑방 구석에서 담요 덮은 청국장이 서서히 띄워지듯 그들도 성숙해 갔다.



늦은 밤, 놀이가 끝나면 여자들을 바래다주겠다며 자청해서 나섰다. J를 바래다주는 일은 내 몫이다. 어둠을 뚫고 논둑길을 앞서 걸어갈 뿐 아무 말이 없다. 건너편 소나무 숲에서 울어대는 부엉이 소리가 어둠을 가를 뿐이다.

가을걷이 끝낸 논에는 짚단 쌓아 놓은 짚더미가 빈집처럼 스산하다. 그 아래 짚단 두어 개를 끌어다 놓으며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앉아” J의 답도 듣기 전에 먼저 짚단 위에 앉았다. “누가 보면 어떡해?” 불필요한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바특하게 앉더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슬며시 손을 잡았다. 모른 척 잡혀준다. 세상에 이렇게 부드러운 감촉은 없을 것 같다. 순간 사타구니 사이에 찌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본능과 이성(理性)이 싸우기 시작한다. 엎치락뒤치락 몇 합을 겨루던 싸움은 이성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 생각 하면 안 돼. 발가락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빨리 집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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