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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운 Feb 26. 2022

아니 그따위로 프러포즈를 했단 말이야?

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스페셜 4화 

  아주 예전에 MBC의 수요예능프로그램인 <황금어장>의 속의 코너 ‘무릎팍 도사’에서였다. 당시 게스트가 발라드의 황제라고 불리는 신승훈이었는데 그는 예능에만 출연했다 하면 받았던 질문을 이번에도 강호동한테 받고 말았다. 


  “결혼은 언제하실 겁니까?” 


  신승훈 역시 똑같은 대답을 이번에도 내놓았다. 


  “이년 후에 할 겁니다.” 


  그 이년 후에 할 거란 소리를 5집 발표할 때부터 들었던 것 같다. 5집이 1996년에 나왔으니 지금으로부터 십이 년 전이다. 그런데 그는 이번 ‘무릎팍 도사’에서도 이년 후에 하겠다는 소리를 하며 오래 전부터 그의 팬이었던 내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그는 이런 코멘트를 덧붙였다. 


* 난 신승훈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슬픈 발라드보다는 경쾌한 댄스 리듬이 가미된 곡을 더 좋아한다. 


  “예전에는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올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노력을 해야 되요.” 


  그 말이 내게도 가슴에 팍 꽂히며 와 닿았다. 


  ‘그래, 역시 사랑은 노력하는 자가 얻는 거지.’


  어찌 보면 당연한 소리를 하신 것일지도 모르는데 나도 아직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는 신승훈과 같은 생각을 했다. 


  ‘사랑은 운명처럼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찾아오는 거야!'’


  장편 시나리오를 습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한 나로서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벌어지는, 첫눈에 남녀 주인공이 서로 반하며 불꽃같은 사랑을 하는 일이 기다리면 일어날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신승훈보다는 빨리 대부분의 연인이나 커플들은 그런 식으로 사랑이 시작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신승훈도 진작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발라드 가수라는 명예와 함께 막대한 저작권료에 음반판매 수익 등으로 부를 가지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연인을 만들 수 있으리라. 다만 지금은 가수와 작곡 활동에 더 매진하느라 신경을 안 쓰는 것일 뿐. 그게 나와 그의 솔로 생활 중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요즘같이 사랑하기 좋은 계절, 몇 년 전 같으면 왠지 모를 외로움이 찾아오면서 지독히 몸서리를 쳤다. 근데 요즘은 의외로 덤덤하다. 오히려 주변에서 다정히 걷고 있는 연인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득도를 한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솔로의 생활이 더 길어지면서 약간은 자포자기 심정이 자리한 듯하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언젠간 나도 좋은 사람 만나겠지. 그리고 요즘 같은 상황이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그래도 주변의 친구들이나 후배들 중에 사랑을 하고 있는 녀석이 있으면 달라붙어 코치코치 캐묻는다. 그중 가장 첫 번째로 하는 질문은 바로 사랑의 시작이다.


  “너나 그녀나 둘 중에 누가 먼저 좋아한다고 프러포즈를 했으니까 사귀는 거 아냐?” 

  “그렇지. 보통은 남자가 먼저 하지.” 

  “그래? 그럼 너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했어? 준비 기간은 얼마야? 상대방이 바로 오케이했어, 아니면 뜸을 좀 들였어? 돈은 많이 들었어?” 

  “아니 뭘 그렇게 번거롭게 귀찮게…….” 

  “그럼?” 

  “그러니까… 지난번 술자리에서 말이야. 그 때 걔도 있었잖아.” 

  “어, 그랬나? 어, 그랬다.” 

  “한참 취하고 나서 둘이 테이블 따로 앉았을 때 있잖아. 그때 고백했지. 너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실은 자기도 전부터 나 좋아하고 있었다고 그럼 사귀자고 하던데.” 

  “뭐야, 그게 끝이야?” 

  “그럼, 뭘 더 이상 어떻게 해?” 

  “에라이, 그래도 명색이 프러포즈인데 그걸 술김에 하냐! 니가 그러면 그렇지. 너한테서 무슨 근사한 프러포즈 이벤트를 듣겠다고.” 

  “야, 너는 뭐 나중에 근사하게 할 줄 아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래도 너처럼은 안 한다!” 


  근데 다른 연인들에게 물어봐도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근사하게 하지는 않았다. 정말 내가 생각했던 프러포즈는 TV드라마의 남자주인공만 하고 있었다. 하긴 그게 무슨 소용인가?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오랫동안 아끼고 사랑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그래도 아직도 프러포즈의 환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나는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반드시 로맨스드라마에서 본 장면들을 각색해서 프러포즈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근데 지금으로 봐서는 아마 다짐에서 끝날 확률이 무척 높아 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그게 큰 흉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으니…….



          

(에필로그     


  2007년 겨울, 내가 신촌에 자리한 컴퓨터학원에 다닐 때이다. 배가 출출했던 나는 신촌사거리에서 연세대로 가는 길에 자리한 ‘던킨 도너츠’ 매장에서 도너츠와 아이스 초코를 주문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매장 안은 수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테이블 하나 차지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운 좋게도 마침 난 막 테이블을 떠나는 커플을 발견하고 황급히 그 자리로 달려가 앉았다. 그리고 주변은 북적거리고 시끄러웠지만 나름 신문도 보면서 여유롭게 도너츠와 아이스 초코를 마셨다. 

  그런데 내가 자리한 2층 매장으로 한 쌍의 커플이 올라왔다. 그들이 매장에 들어섰을 때는 단 한 군데도 빈 테이블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어찌할 줄 모르며 계속 매장 안을 빙글빙글 맴돌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테이블에서 일어서려는 손님은 없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트레이에는 다 쓴 휴지와 빈 플라스틱 컵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래, 내가 일어서자.’ 


  왠지 모르게 그 커플에게 동정심이 일었던 나는 이런 생각과 함께 아직 온전하게 남은 도너츠 한 개를 그대로 입 속에 구겨놓고 후다닥 자리에 일어났다. 당연히 내가 자리를 뜨면서 생긴 빈 테이블에 그 커플이 와서 앉았다. 그들은 좀 전의 당혹스러움은 잊고 서로 맛있게 도너츠를 먹으면서 얘기꽃을 피웠다. 


  ‘에휴, 앞으론 이곳에 못 오겠다. 저런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내가 어찌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턱하니 혼자 앉아있을꼬.’ 


  그래서 그 뒤로는 주로 창가에 붙은 스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먹는다. 꼭 이런 결심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느 매장에든 스툴에든 대부분 나처럼 외로운 청춘들이 홀로 많이 앉아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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