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싸이월드 페이퍼 : 15화
페이퍼 작성 : 2005년 8월 20일 시간적 배경 : 1999년 하반기
1999년 하반기부터 난 시나리오작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본격적인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갔다. 누가 시나리오를 쓰는 법을 알려준 건 아니었다. 서점에서 시나리오 작법 서적을 구입해서는 이를 읽고 집필에 적용했다. 이때 구입했던 서적들이 대부분 장편시나리오 작법을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응당 극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 시간 분량의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을 집필했다. 단편부터 시작해 차츰 장편으로 도약하는 일반적인 영화과 시나리오 전공자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때문에 현재도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시나리오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다. 장편을 쓰는 것보다 단편을 쓰는 게 분량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어렵고 힘들다.
1999년 하반기에는 내게 컴퓨터가 없었다. 시나리오를 집필하려면 컴퓨터가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이 당시 가장 흔했던 곳이 바로 PC방이었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PC방에서 워드프로세서가 깔린 컴퓨터를 골라 그곳에서 부지런히 정해진 분량의 시나리오를 기계적으로 써나갔다. 어느새 단골이 되자 사장님은 아예 지정석을 마련해주시는 것은 물론 당시 가장 최신 워드프로그램인 ‘한글97 기능강화판’까지 설치해주셨다. 그 PC방의 가장 구석진 자리는 그렇게 차츰 나만의 작업실로 변모해나갔다.
방과 후 집으로 가는 길에 PC방에 들러 게임을 즐기는 동네 꼬마들에게 난 참으로 이상한 아저씨였다. 비록 그때 내 나이 고작 스물한 살이었지만 대부분 열 살이 넘지 않는 꼬마들에게 충분히 아저씨라 불릴 만했다. 남들은 열심히 <스타크래프트>나 <레인보우 식스>를 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글을 쓰는 나는 그들에게 틀림없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난 시끄러운 게임 OST와 BGM, 그리고 꼬마들의 함성소리들이 귓가를 어지럽히고 어두운 조명에 조금만 글을 쓰면 눈이 침침해지는 그야말로 최악인 집필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집필을 이어나갔다. 아마 하루에 평균적으로 글을 제일 많이 썼던 기간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였다. 오히려 지금이 최신형 노트북에 조용한 환경이 갖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반도 하루에 쓰지 못한다. 소음과 어두운 조명은 집필의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촉매제였다.
그렇게 두 달 간 그 PC방을 드나들며 완성한 시나리오를 ‘아이찜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했다. 당시 그 공모전의 심사위원은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제작 중이셨던 이창동 감독님이었다. 초보 작가라면 늘 그렇듯 자신의 작품이 최고라는 착각은 당시의 나도 갖고 있던 터라 틀림없이 수상통보전화가 올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러한 전화는 끝내 걸려오지 않았다.
수상만 했다면 상금으로 당장에라도 노트북 하나 장만해서 PC방에서 글을 쓰는 생활을 청산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몇 달간은 더 그곳에서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이후 그곳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03년도 여름창작교실에 제출했던 <미드나이터(Midnighter)>라는 드라마극본 외에 서너 편이 된다. 하지만 모두 여러 공모전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PC방에서 글을 쓰던 시절은 2000년에 아버지께서 내게 노트북을 사주시면서 청산되었다. 이젠 꼬마들의 소음 속에 해방되어 더욱 많은 작품들이 배출될 걸로 여겼는데 반대로 군 입대까지 한 편도 완성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짠하고 힘들었던 시절이지만 가끔씩 머릿속으로 떠올리면 좋은 추억이 되었던 시간들이었다.
(에필로그)
PC방에서 시나리오를 쓰던 시기에 완성했던 <미드나이터>라는 제목의 드라마극본은 무려 14년 후에 내게 소소한 영광을 안겨주었다. 바로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최종심에 올랐던 것이다. 1999년부터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도전했었는데 무려 십여 년 만에 거둔 놀라만한 성과였다. 이때 그냥 등단이 되었더라면 화룡점정이었는데.
<미드나이터>는 2017년 하반기에 『K-스토리』라는 계간지에 실리는 것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