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의 회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 여름밤 아카시아 Jan 04. 2024

문장에 깃든 정서

밤의 이슬이 떨어진 문장 안에는 점점 정적이 쌓인다. 문장의 수많은 가능성중에 내가 쓰려고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개화할지 아직 모르는  닫힌 봉우리 안에서 나는 잠시 그것을 읽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글쓰기와 내가 쓰고 싶은 것 그 두 가지 경계에서 나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잠시 정적 속에서 뒤척인다.


서로 다른 마음사이에 단단한 벽이 놓여 있다고 믿었는데도 그 사이에 꽃이 덩굴을 짓고

향기가 피어난다.

한 사람의 개인성이 드러날 때는 타인과 나라는 관계의 평화보다는 오히려 상처받을 수 있을 만큼의  출렁임을 느낄 때이다. 

한동안 일정하게 유지되는 듯한 관계 속의  평온함사이에서도  출렁임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때로 나는 두 사람사이의 관계에 뒤로 밀려 개인의 느낌이 스스로에게 분실되는 듯한 느낌을 관계의 평화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반면 관계사이의 출렁임은 닿을 듯하면서도 닿을 수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방심하지 않고  끝가지 책임지게 하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 관성이 있다.

사물이나 세계를 보는 평화로운 관점 속에서는 문득 나 스스로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감각이 잘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평온한 공존 속에 있다가, 간혹 삶의 일정 부분 꾸준히 의지해온 사람과 내가 생각한 관점의 차이를 크게 느끼는 날에는 잊고 있던 그 출렁임이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중심을 찾게 하는 결말을 줄 때가 있다. 

그 순간 상처받은 자아를 너머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순간과 대면하게 한다. 

그것은 왜 소중한 순간일까... 관계 속의 결렬은 어쩌면 수많은 다양성 중에서 그 자신만의 길을 찾게 하는 스스로를 향한 폭로이기 때문이다.

나는 거기에 있다. 상처받고 상처를 주는 사이에 잊고 있던 개인의 성향이 독자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짧은 순간이지만 그 속에서 누구보다도 나처럼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고 싶다는 강렬한 삶의 책임감을 더 이상 회피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 

삶은 그때  강렬한 실존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잠시라도 느낀 사람은 그 개인의 삶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것 같다. 

  



새해가 되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나 스스로에게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강요하고 세상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싶어 진다. 그것은 나 자신이 써온 것에 대한 의구심이다. 내가 보고 표현해 내야 하는 것에 대한 회의이다.


누군가처럼 써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의심 속에  이런저런 찾고 싶은 방법론 속에서 내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나는  매달리게 된다. 마치 글쓰기에 정답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며칠 동안의 사고의 유추 속에서 뱅뱅 돌고 나서야 어느 순간, 깨닫는 때가 온다. 

가장 나답게 끝까지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글이 된다는 것. 그것은 타인의 의도대로 쓰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나의 영혼이 간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쓸 줄 아는 나 자신을 향한 친절한 허용이다. 


수많은 감각과 사유이전에 그저 내가 내 글이 자연스럽게 뻗어 나오길 허용하길 바라면서 새로운 낮과 밤을 지나가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 형태가 없는 것에서 새로운 개성을 띄고 나 자신과  결렬되지 않은 채 끝까지 하나하나의 문장들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미래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문장들이 밤 사이에 고여 있던 꿈을 펼친다. 

사적인 것들에게 개인의 정서가 깃든다. 그것들은 작고 사소하지만 사소한 차별로써 개인적이다. 

사적인 미학과 자연을 보는 관점, 취향을 돌보는 시간. 그것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미래의 어떤 것으로 나아갈 때 나는 가장 나답게 살고 있고 내 안에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의 관점을 나의 삶 안에서 계속해서  살아내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거기에 있다. 나의 삶이 펼쳐지는 눈이 부시도록 빛이 드는 그때 

나의 가장 사소한 행적들이 나의 삶 너머에서부터 향기를 내뿜어 올 때 

그때, 혹시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는 누군가, 거기에 완벽히 존재하고 있는 나를 볼 수도 있겠다.

우리는 각자로써 거기에 존재해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밤 아카시아향이 쏟아지는  일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