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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버드 Aug 23. 2022

퇴사할 '때'

퇴사 D-8


퇴사가 일주일 남짓 남았다. 3년 반 정도를 일한 첫 직장이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때'를 아는 사람이 부러웠다. 어김없이 나는 '때'를 잘 못 맞춘 것 같다. 조금 더 일찍 그만뒀어야 했는데.

입사할 때 내가 생각한 퇴사할 '때'는 지금이 아니긴 했다. 19년 2월에 입사를 결정하고서 다짐을 했다. 2년 일하고 모은 돈으로 세계여행하기. 21년 3월에 떠나겠다고.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1년을 채웠을 무렵 그만둘까 흔들렸지만 더 다녀보기로 결정했을 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파괴자 코로나가 왔다. 세계여행이라는 꿈은 그 어느 때보다 불가능해 보였고, 코로나가 좀 잠잠해지는 것 같아도 떠나야 할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어 근속 기간이 길어져만 갔다.


1년 차부터 날 힘들게 한 사람은 3년 반이 지난 오늘까지도 힘들게 했다. 초반에는 나랑 다른 파트에 있는 저 사람의 눈치를 왜 봐야 하고 왜 비위를 맞춰야 하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자주 부딪힐 줄 알았으면 그냥 맞출걸 그랬다. 그 사람이 1년 동안 육아 휴직을 간 동안은 걱정이 없었다. 그 사람은 나보다 적어도 5년은 더 일했는데, 남들과 같이 일하는 거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아 더 대단할 뿐이다. 직장 생활에서 더러운 똥은 피할 수 없고, 참아야 한다는 걸 괴롭게 배웠다. 물론 같은 파트에서도 싸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서 분통이 터진 적은 있지만, 어느 정도 예의와 대놓고 똥은 아니어서 참을 수 있었다.

대표의 가스라이팅도 만만치 않아서, 잘하면 당연하고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쥐 잡듯이 잡는 이곳에서, 모두가 서로에게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이 직업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이 직장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헷갈렸다. 마음이 모난 날에는 이 직장의 장점이라고는 바이크를 탈 때 바다가 보이는 예쁜 출퇴근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바이크까지 없이 빼곡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으면 어땠을지 눈앞이 아찔했다.

퇴사 노티스를   가스라이팅은 극에 달했고, 대표가 나에게 원했던 퇴사 시점까지 후임자를 뽑지 않을  같아 남은 사람들만  힘들어지게 되었다. 퇴사를 앞둔 지금도 마냥 행복해야 하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다.  퇴사할 인원이 2명이라 다른 사람들의 연차를 소진시키기 위해 최소 인원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코로나에 걸려 남들의 연차가 잘리고  그래도 없는 인원이  없어 질까  노심초사하며 다니고 있다. 날카로워진 나는 결국  문제로 가까운 이와 다투기도 했다. 대표의 가스라이팅은 코로나에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이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퇴사할 '때'도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아니었다. 퇴사를 못했다면 이 버틸만한 지옥을 버티며 더 예민해졌거나, 다행히 튕겨져 나갔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다행히 나는 이곳을 떠난다. 퇴사를 시켜 줄 수 없다던 대표와의 찝찝한 마무리를 남겨두고. 아무도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줄 것 같지 않지만, 나는 내가 열심히 했다는 것을 안다. 다음엔 여기가 아닌,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열심히 일 할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찾아 일을 안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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