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셰어하우스 만들기 9화
전날 밤엔 수험생처럼 두 손 모으고 기도했어요. 계약 잘 되게 해달라고. 계약서를 잘 읽게 해 달라고도 기도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읽고 이해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더 시급했어요 푸하항! 오전까지 공부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오후에는 일찍 씻고 잠들어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었죠.
오늘은 계약 당일 제가 한 일, 그리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 꼭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공유할게요.
1. '사촌언니' 대작전
는 사실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한 거예요. 집 구하러 다닐 때 은행, 부동산, 공공기관 여기저기서 이상한 일이 많았거든요. 어린 여자애라고 만만하게 보는듯한 눈빛, 말투, 태도, 불쾌한 경험. 최근에 이사한 친구도 이에 격하게 공감하며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사촌언니가 된 사연. 우리끼리 미리 롤플레잉 하며 울분을 깔깔로 이겨냈죠.
2. 계약 전,
이사 갈 집에서 한 일 3가지
1. 해가 뜨는가: 채광 & 하자 체크
이전에도 집을 보긴 했지만, 제대로 확인 못한 게 있었어요. 전 세입자는 암막커튼으로 생활해서. 햇빛이 잘 드는지 확인 못한 게 계속 걸렸거든요. 그래서 부동산 사장님께 계약 전에 집 한 번만 더 보고 싶다고 요청했어요. 창문 활짝 걷어놓고 구석구석 확인했는데, 햇살이 밝고 따뜻하게 잘 들어서 안심했습니다.
꼼꼼한 '사촌언니' 덕분에 하자도 발견했어요. 거실 벽지가 좀 찢어져있고, 방충망도 구멍이 뚫려있었거든요. 살면서 알게 됐으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했을 텐데. 덕분에 계약서 쓰면서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2. 집 인생샷 찍기: 하우스메이트 공고문용 사진
하우스 메이트 구할 때 쓸 사진도 찍었어요. 부동산 매물 잘 찍는 방법은 '광구패'. '광'각으로, 방의 가장자리 '구'석에서, '패'닝(좌에서 우 혹은 우에서 좌로 카메라 이동하며 촬영)으로 출처 유튜브로 미리 공부하고 갔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사장님이 훨씬 잘 찍어주셔서 결국 사장님이 찍어주신 사진을 썼어요 하하
3. 당근 동네 설정: 살림살이 미리 확보
이사 갈 집에서 위치 인증을 미리 했습니다. 덕분에 필요한 물품 찾기가 한결 수월해졌어요. 냉장고부터 접시, 멀티탭, 모션 데스크까지! 생활 전선, 착실하게 준비 중입니다.
3. 부동산에서 계약하며
1. 부동산에 입장하며 클로바노트 녹음 ON
계약에서 모든 것을 협상하고 최종 확정 짓게 되는데, 특히 저희 중개인들은 구두 협상에 능한 분들이셨어요. 유한 태도로 설득을 잘 하지만, 계약서를 제가 원하는 대로 꼼꼼히 작성해 주는 스타일은 아니셨죠. 혹시라도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 계약서에도 없지 않느냐'와 같은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니. 나중에 저를 지킬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이 남겨두려 했어요.
2. 계약서 작성 전 확인한 체크리스트
- 공인중개사 자격증
- 임대인 신분 (등기부등본, 건출물대장과 일치 여부)
- 계약금 입금 계좌가 임대인 명의인지
- 계약서상 임대인 주소가 실거주지인지 *계약서랑 등기부등본 주소가 다르길래 놀랬는데. 임대차 계약서에 적힌 주소가 실거주지였음. 등기할 때마다 돈이 들기 때문에 안 바꾼 거라고. 저도 이사한다고 민증을 재발급 바로 하진 않으니까 이해했죠
- 등기부등본: 2-2 참고
- 건축물대장: 2-2 참고
※ 아래는 열람 권한을 얻은 서류예요.
- 확정일자 부여 현황 1. 선순위 보증금 총액 참고
- 전입세대 확인서 (현재 거주자 이름과 전입일자)
- 국세 및 지방세 완납 증명서 (미납금)
※ Tip: 웬만하면 이건 임대인이 떼오게 요청하세요.
보통은 임대인이 서류를 직접 떼온다는데, 부동산마다 다른가 봐요. 제가 직접 떼보라고 하네요. 국세는 세무서에서, 나머지는 주민센터에 임대차계약서를 가지고 가면 열람을 할 수 있어요. 다만 이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더라고요. 주민센터에 가서도 계약서 보여준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라 열람 신청서를 작성해야 해요. 어렵고 가늠 안 되는 용어들이 난무하는데 직원분들도 잘 모르시니 답답하고. 서류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고. 한번 갈 때마다 기가 쪽쪽 빨려요.
3. 협상: 특이사항 공유하며 '다 들어주세요..(초롱이 눈)'
- 하자 보수 요청: 아까 집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며 도배, 방충망 교체를 요청했어요
- 계약금 5%: 이건 사전에도 협의한 내용이지만 집주인 측 중개인이 계약서에 잘못 쓰신 거예요, 계약금 10%라고 ㅠㅠ 그래서 좀 머쓱한 상황이 될 뻔했어요. 그래도 제 중개인이 잘 말씀해 주셔서 5%로 진행했습니다.
- 보증보험: 저희는 제가 HF로 보증보험을 가입하고, 만약 집이 다가구라 가입이 안되면 임대인이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하기로 조율했습니다.
4. (가장 중요) 특약
계약서에서는 특약이 젤 중요한데. 중개인은 '이런 건 한 번도 써본 적 없다, 집주인이 기분 나빠할 거다' 하며 특약으로 안 써준 게 많아요. 그래서 대부분은 구두로 협상했어요. 좀 더 강하게 얘기해볼걸 싶기도 해요.
여러분은 당당하게 요구하시길. 저처럼 중개인 반응에 기죽지 마시고, 전세사기가 판치는데 이 정도 내용은 당연히 적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제 특약은 이렇고요
아래는 임대차 계약 시 '가장 보수적인 특약'이에요. 다음에 부동산 계약을 하게 된다면 중개인에게 이걸 전달하려고요.
- 본 주택의 임대차에 관한 중개대상물확인 설명서 및 계약서상의 시설물 상태는 임대인이 고지한 사항과 임차인 및 공인중개사의 현장 확인 사항을 기초로 한 것이다.(옵션:에어컨 __대, 냉장고 __대)
- 임대인은 임차인의 확정일자 후 주소전입 익일까지 현등기사항증명서상의 권리상태변동 없이 유지하기로 한다.
- 주택을 인도받은 임차인은 _______년 ____월 ____일까지 주민등록(전입신고)과 주택임대차계약서상 확정일자를 받기로 하고, 임대인은 위 약정일자의 다음날까지 임차주택에 저당권 등 담보권을 설정할 수 없고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 예정일 당일까지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하지 않는다.
- 임대인은 임차인의 전세대출 및 보증보험 가입에 동의하고 협조키로 한다.
- 본 물건지로 인한 전세대출 및 보증보험 가입 불가시 계약은 해지하고 계약금 반환키로 한다.
- 임대인이 위 특약에 위반하여 임차주택에 저당권 등 담보권 설정 및 소유권 이전을 한 경우에는 임차인은 임대차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이 경우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위 특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한다)
-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은 임대차계약 체결 시를 기준으로 임대인이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선순위 임대차 정보(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 6 제3항)가 또는 국세나 지방세 체납이 없음을 고지하며 임차인이 선순위 임대차 정보, 세금 체납 내역을 확인하는 것에 적극 협조한다. 만일 체납액이 확인된다면 잔금 지급일 전날까지 체납액 전액을 반드시 상환한다. 체납액이 확인되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지급한 계약금 및 보증금 전액을 즉시 반환한다.
- 계약 기간 중 매매 계약 체결 시 반드시 임차인에게 고지한다. 새로운 매매 계약이 체결됐다는 고지를 받고 새로운 임대인을 신뢰할 수 없다면 임차인은 임대인 지위 승계를 거부하고 임대차를 종료할 수 있다.
- 관리비는 임차인 부담이며, 건물관리규약에 따르기로 한다.
- 본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주택임대차보호법 및 민법과 주택임대차계약의 일반관례에 따른다.
5. 계약 후 챙긴 서류 & 소감
계약 이후에는 아래 서류를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대출, 전입신고 등에 필요해요!
- 임대차계약서
- 중개대상물 확인 설명서
- 계약금 5% 이상 납입한 영수증 (부동산에서 작성)
계약서에 열심히 사인할 때까지도 얼떨떨했어요. 그런데 동행한 친구의 '축하해'에 그제야 실감 나기 시작. 드디어, 나에게도, 드림하우스가! 비건 셰어하우스가!!!!ㅠㅠ 자세한 소감은 다음 화에서 얘기해 볼게요. 사실 계약하고 온 당일 생생한 감정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미리 올렸어요 ㅎㅋㅋ
6. 확정일자
(마지막으로 이것까지 하면 계약날 해야 할 일 끝!)
토요일에 계약해서 주민센터로 못 가요. 대신 신청해 주는 부동산도 있다고 하던데 저는 아니었어요. 그날 저녁, 인터넷 등기소에서 직접 신청했어요.
너무 어려워서 1시간 넘게 끙끙댔는데. 해당동 주민센터에서 카톡으로 보완요청이 오네요.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저녁에 눈을 몇 번을 씻었는지 몰라요. 믿을 수가 없어서요. 통장에 이것밖에 안 남았다고? 누가 빼간 거 아냐? 가계약 XXX원, 본계약 XXX원, 합쳐서 XXX원. 아.. 다 내가 쓴 거 맞네.
어떻게든 계약금 모을 궁리만 하느라, 내 생활비 계산을 안 했다는 게 너무 웃기고 슬펐어요 하하. 하… 덕분에 일본행 티켓도 취소했습니다 ㅠ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생긴 감격스러움, 동시에 텅텅 빈 잔고의 씁쓸함으로 잠들기 어려운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