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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슨생 Jun 05. 2024

연애부터 하세요~!

어느 멋진 학생들 이야기

 내가 일하는 학교 건물은 총 4개의 동으로 이뤄져 있다. 기숙사를 제외한 A, B, C 3개 동은 차례대로 ‘ㄷ’ 자 형을 이루며 잔디 운동장을 감싸고 있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그나마 작은 곳은 C동이다. 수업이 없던 월요일 4교시, 난 C동에 있는 과학실에서 조용히 다음 시간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똑, 똑, 똑’

 과학실 창밖에서 누군가 나오게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과학실 가운데 책상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보던 나는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갔다.

 “선생님. 수업 없으시면 저희랑 농구 한판 하시죠.”

 3학년 채욱이가 한 손에 공을 든 채 나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을 걸고 있었다.

 ‘아. 지금 나가서 놀아버리면 5교시 수업 준비할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농구 코트에 있던 준서까지 채욱이 뒤를 따라와서 어서 나오라는 손짓을 해대니 참을 수 없었다.

 학창 시절, 내 유일한 취미가 농구였다.

 “오케이! 오늘 점심 건너뛰고 점심시간까지 고고!!”

 나는 과학실이 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외쳐대며 내 신발 끈을 조였다.


 채욱이와 준서 동기 학년의 학생들은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던 친구들이 많다. 1, 2학년이었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로 인하여 학교에 제대로 온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그러다 3학년으로 진학하던 해에 코로나 기세가 꺾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학교에 등교하였고 2년간 못 다했던 학교에서의 추억들을 쌓아갔다.

 여느 인문계 고3 학생들처럼 입시 부담이 큰 상황이었지만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는 거의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축구나 농구 및 야구를 하였다. 잔디 운동장은 관상용이었기에 죄다 모래 운동장에서 한 대 섞여 종합(?) 구기 운동 활동을 하였다. 가뜩이나 좁은 운동장에서 덩치 큰 친구들이 허구한 날 공을 차대니 바람 없는 날에도 영화 ‘매드맥스’에서나 볼 법한 모래 폭풍이 연출되곤 하였다.

 한 번은 점심시간에 채욱이, 준서와 함께 축구를 하던 친구가 세게 찬 공이 주차장으로 날아가서 교감 선생님의 차 유리가 파손된 적이 있었다. 평소 교감 선생님의 성정을 고려했을 때 함께 공을 찼던 모든 3학년 학생들 모두는 징계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 위기를 직감한 그 친구들은 용서를 구하기 위해 교무실 교감 선생님 자리 앞으로 갔다. 예상대로 교감 선생님은 축구를 했던 학생들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씩씩 거리며 마지막 킥을 한 학생 은 한 발짝 나오라 말하며 물었다.

 “너 그렇게 생각 없이 공을 세게 차면 어떡하나? 학번 이름 뭐야?”

 고개를 푹 숙인 그 학생은 쭈뼛거리며 말하였다.

 “3학년 X반 X번. 황xx입니다.”

 학번과 이름을 듣던 교감 선생님은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면 네가 자연계열 1등 학생인 황xx이야? 너도 공 같은 것을 차고 그러나?”

 근처에 있던 교사들은 다들 업무를 보는 척 노트북을 주시했지만 난 바로 보였다.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축구하다 온 학생들은 있는 힘껏 웃음을 참고 고개를 숙이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반성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교무실에 모였던 학생들은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았고 교감 선생님의 차는 학교 공제회를 통해 변상 처리되었다.


 채욱이 학년 남학생 친구들은 농구를 좋아하던 나와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내가 수업이 없는 시간뿐만 아니라 저녁 식사 시간에도 점수와 상관없는 풀 코트 농구 게임을 하며 함께 땀 흘리고 많이 웃었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그저 놀기만 하지는 않았다.

 2022년 3학년 화학 수업을 내가 진행할 때, 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직접 수능특강 화학문제들을 풀도록 지시하였다. 특정 단원에서 학생들이 맡은 문제들을 미리 풀어보고 분석하고, 수업 시간에 교실 앞으로 나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전자칠판으로 풀이 과정 및 문제의 포인트를 설명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우왕좌왕하며 말도 많이 더듬고 끝까지 풀이를 완결해 보이지 못하였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친구들은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였다. 수능이 얼마 안 남은 9월쯤엔 교사인 나 보다 더욱 정확하고 빠른 방식으로 킬러 문제들을 풀어내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채욱이와 준서 그리고 교감 선생의 차 문을 부수었던 황도 그 학생들 중 하나였다. 나중에 채욱이는 한양대, 준서와 황xx은 서울대에 합격하였다.

 

 채욱이를 비롯한 나의 농구 멤버들을 졸업 이후에도 내게 자주 연락하였다. 한 번은 그 친구들이 날 보러 학교에 한번 찾아오겠다고 말하였다. 난 단호히 거절하며 답했다.

 “여자 친구 생기기 전에는 오지 마라.”

 그 친구들은 웃으며 내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들였지만 난 진심이었다. 나중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진화적으로 더 뛰어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숱하게 거쳐 간 졸업생들 중에 나보다 더 못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졸업하고 또다시 예전 추억을 되새기려고 모교를 찾는다 한들 그들에겐 생산적인 에너지가 1도 생길 여지가 없다. 연애의 시작 그리고 실패를 통해 깨닫는 인생의 교훈이 몇 배는 더 의미 있을 것이라는 나름의 철학을 바탕으로 난 매년 졸업생들에게 굳이 날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됨을 역설했다. 채욱이 동기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 채욱이로부터 오랜만에 톡이 왔다.

 “선생님. 이제 당당하게 찾아가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 성공했나 보다. 하지만 채욱이는 못 올 것이다.

 그게 당연하고.

채욱이와의 대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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