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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없는 식탁의 여유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만

by Mindful Clara

우리 집 식탁에는 반찬이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김치 한가지 정도는 늘 있지만, 흔히 말하는 밑반찬—조림, 짠지, 젓갈 같은 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런 반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짭조름한 젓갈이나 간장에 조린 멸치와 콩, 김무침 같은 밑반찬들은 아주 가끔 먹으면 괜찮긴 하다. 하지만 그걸 매일 먹자니 밥을 너무 많이 먹게 되고 오히려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나 역시 밑반찬을 만들어 본적이 있다. 재료의 맛을 살려서 만든다(버섯볶음이나 콩나물 무침등). 그러나 내 입맛에 간을 맞추다 보니 너무 빨리 먹게 되어서, 만드는 수고에 비해 아쉬움이 큰 느낌이었다.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에게 냉장고 안에 쌓여있는 반찬통이 주는 답답함도 의외로 크다. 음식을 꺼낼때 마다 하나씩 따로 담아줘야 하는 번거로움 역시 나와 맞지 않는다. 그리고 밑반찬이라는 것은 항상 그릇에 조금씩 남는데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골치 아플때가 많다.

버리기에는 아깝고, 다시 하나씩 싸서 집어 넣는 것도 여러모로 골치아픈 일...


그래서 나는 반찬을 쟁여두는 대신, 그때그때 간단히 요리해서 먹는 것을 선호한다. 마치 일품요리처럼 한두 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그걸로 한 끼를 해결한다. (남으면 최대 두끼정도까지)

대단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다. 달걀 말이를 한다고 해도 냉장고에 있는 신선한 채소를 볶아 넣고 좋아하는 자연 치즈를 곁들인다든지, 버섯이 있으면 마늘과 허브를 넣어 간단히 볶아 먹는다.

요리는 빠르고 간단하지만 그때그때 만든 음식은 늘 따뜻하고 만족스럽다. 무엇보다도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만 만드는 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아이들도 냉장고에 오래 놔둔 음식은 잘 안 먹는다는 점이다. 며칠씩 먹는 반찬보다, 방금 만든 따뜻한 요리 그리고 간단히 일회분씩 준비하는 샐러드 같은 것을 훨씬 더 잘 먹는다.

예전에는 냉장고 안이 꽉 차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적도 있다.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편리하게 느껴졌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성된 음식이 아니라 요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냉장고가 훨씬 더 든든하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오늘은 뭘 해먹을까?" 하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유.
매일 다른 재료 그리고 다른 기분으로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가벼움이 좋다.

물론 이 방식이 모두에게 맞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무조건 냉장고에는 반찬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은 순간부터 식사 준비가 덜 힘들어졌고, 요리 자체가 더 즐거워졌다.
매일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한 끼를 대하는 지금의 방식이 내 삶의 리듬과 잘 맞는다는 걸 느낀다.

반찬은 없지만, 우리집의 식탁은 늘 새롭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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