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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새 Aug 27. 2024

그렇게 거기서 오래 살았는데,
아직도 그립고 그래요?

26 avril, 2024 en Corée


가만 세보니까

1년 5개월을 그곳에서 살았더라


서울보다는 파리에서의 삶이 더 익숙하지

파리는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눈을 감으면 파리 구석구석의 길거리들이 떠오른다


가만히 눈을 감아보자,

찬란히 비추는 오월의 햇빛과 

그 사이를 살랑이는 나뭇잎과

나무가 드리운 서늘한 그림자

코 끝을 스치는 향긋한 라벤더 향

귀를 간지럽히는 아름다운 그들의 언어


아, 


나는 그들의 언어를 마음 가득히 사랑한다

까탈스러운 듯, 은근하게 상대에 대한 애정을 표하는 그 언어는

평생 내 입술 위에서 춤을 출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바쳤던 그곳을 뒤로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이제 3주째인데

여전히 하늘 위를 붕 떠서 살아가는 기분이다

하루에 큰 감정 변화가 없는 그러한 삶

휴학을 했고, 과외 외에는 일이 없고,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파리에 있을 때는 일상의 작은 일에 감사하는 일들이 참 많았다

한참 우중충하다가 갑자기 햇빛이 짠, 나타나는 날에는

건물에 비치는 그 노란빛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동안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

비 온 뒤 촉촉한 루브르의 외벽이 너무나 멋져서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나

마음에 와닿는 화가의 그림 앞에서 글을 쓰고 시를 쓰고 노래를 듣던 나

매일 출퇴근하면서 걷는 길인데도 늘 새롭게 마음에 와닿았고

아침의 새소리 하나에도 기분이 훌쩍 좋아지던 나였다


지하철 지연과 고장이 밥 먹듯 일어나니

그러한 작은 느림에는 불만이 생기지 않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 지하철 안에서도

가끔 옆자리 아줌마 아저씨들이 한숨을 쉬고 욕을 하는 것을 들으며

내가 이걸 알아듣는 수준이 됐다니! 웃으며 뿌듯해할 뿐이었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하루에 가득했고

무척이나 짧은 하루를 끝마치고 드는 잠은 달콤했다 


주말마다 자연 속에서 쉬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를 하고, 잔디밭에서 옆돌기를 하고, 빵집에 산책을 갔다

그런 날이면 매일 멋진 꿈을 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르른 밀밭을 뛰어다니며

샛푸른 그 물결에 나를 맡겼다

사실 돌아온 게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립다는 감정조자 들지 않았다 그간 2주 동안 

그래서 나는 프랑스가 더 이상 그립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립지 않은 게 아니라

내 몸과 정신이 그곳에 수채화처럼 물들어버린 탓에  

육체는 이곳에 있어도 여전히 나의 영혼은 그곳에 남아있는 것 


삶의 한 조각 정도는 8000km 정도 떨어진 곳에 놓고 와도 

괜찮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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