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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명 Jul 14. 2024

어디로 가서 뛸것인가

제마냐 춘마냐

춘천마라톤(춘마)과 JTBC마라톤(제마) 동시에 풀 코스 신청을 성공했다. 접수는 제마부터 시작했다. 마라톤 붐이 일어나 풀코스를 온라인으로 신청하는것도 운이 따라줘야된다. 제마신청은 오전 10시에 시작했다. 땡 하자마자 접속하지 않으면 대기가 늘어나 사이트 접속시간이 길어지면 이내 마감이 되어버린다. 그 시간에 알람을 맞춰놨지만 약속으로 인해 시간을 놓쳤다. 약속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생각이 나 뒤늦게 접속을했다. 성공했다. 내 옆에 앉은 지인은 같이 접속했지만 매진이라고 떠 실패했다. 이건 풀코스 마라톤을 이번에 꼭 뛰어라는 운명같았다.

제마 신청을 하고 한달 후 쯤 춘마를 신청했다. 오후 2시, 사이트 접속부터 안된다. 너무 많은 인원이 몰려 서버가 계속 다운된다. 내가 누군가. 영웅시대 아닌가. 임영웅 콘서트로 이런 상황은 익숙하다. 이럴때일수록 여러번 경험으로 터득한 것, 기다리기다. 하지만 기다려도 사이트는 열리지 않았다. 화면이 움직이지 않는다. 선택을 해야했다. 다시 뒤로가기 버튼을 누를 것인가? 이대로 있을 것인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고 계속 클릭을 하며 사이트가 안정화될때까지 기다렸다. 이름 입력란으로 넘어갔다. 풀코스 신청을 했는데 결제사이트에서 먹통이 된다. 다시 뒤로가기를 해 될 때까지 입력을 반복했다. 성공했다. 함께 달리기를 하는 주형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접수 진행중이이라는 말에 "내가 해줄께. 주민번호 불러." 주형이 엄마것도 성공했다. 운좋게 나는 제마와 춘마 2개 모두 풀코스가 신청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이 두 대회가 일주일 간격으로 열린다는것이다. 매 10월 마지막주 열리는 춘마와 11월 첫째 주 열리는 제마. 이 두 경기 모두 풀코스를 뛴다는 건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안된다. 초보 마라토너에게는 무리일거 같지만 괜히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를 시켜본다. 아직 풀코스를 뛰어본 적이 없어 어느정도로 힘이 든지도 모르고 끝나고 내 몸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도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다. 모두 힘들다는 제마와 춘마를 그것도 2개 모두 운좋게 접수를 성공했는데, 어떤 대회를 뛰어야할지에 대해선 화장실 전략과 코스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항상 마라톤을 뛰면 화장실로 곤란한 경우가 생겼다. 올해 대구국제마라톤 대회 때 일이었다. 올해 세계육상경기연맹에서 대구마라톤을 실버레벨에서 골드레벨로 승격을 해 1등에게 주어지는 상금이 4배가 올랐다. 엘리트 선수들이 대거 참여했고 10km 출발선에 서 있으니 반대편에서 풀코스 첫 번째 주자로 출전했던 그 엘리트 선수들이 뛰어가는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멋진 장면을 보고 영상에 담느라 화장실 가는 시간을 놓쳐버렸다. '10km인데 뭐 그냥 뛰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출발때는 괜찮았다. 출발 코스가 약간의 내리막과 오르막이라 뛸 만했다.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코스를 다 내려가니 5km지점에서 급수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마신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배를 중심으로 위에서 맴돌았고 밑에선 화장실이 가고 싶어 아랫배가 빵빵하게 차올랐다. 아직 도착하려면 5km를 더 가야하는데... 주위를 두리번 거려봐도 보이는 건 허허벌판뿐이었다. 순간 저 벌판으로 달려가 아무도 안 보이는곳에서 일을 볼까도 생각했다. 벌판 끝으로 건물 하나가 보였다. 무슨 건물인지도 모르겠다. 커피숍 간판도 없고 일반 가정집인지 알 수가 없는데 그리로 달려갈까도 생각했다. 결론은 사람들에 휩쓸려 앞으로 달려나갔다. 완만했던 내리막은 금새 오르막으로 바꼈고 속도는 나지 않았다. 7km지점쯤 다시 급수대가 보였다. 목은 탔지만 저 물을 먹는 순간 다음 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저 멀리 결승점인 스타디움이 보였다. 화장실은 급히 찾았지만 없.었.다.

생각했다. 이대로 골인지점으로 들어가더라도 화장실이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 끝까지 주로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한계가 다가왔다. 뛰니 더 참을수가 없었다.  진퇴양난, 사면초가가 이럴때 쓰이는 한자성어인가. 고작 화장실 때문에. 고작이 아닌 급박한 상황이었다. 결승점으로 들어가는 스타디움 입구가 보였다. 결승점 보다 먼저 보이는 건 그 앞의 화장실. 드디어 빛이 보였다. 들어갔다. 줄이 서있었지만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로 직행, 평화를 되찾았다. 남은 거리 700m, 여유롭게 결승점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짐보관함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속을 웃으며 따라 걸었다. 기록은 포기해야했지만 이번 기회로 마라톤 대회 전 화장실은 꼭 가자는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과 무색하게 바로 다음 달 열린 여성의 날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상암 경기장 주변을 뛰는 대회였다. 대회 시작 전 화장실도 두 번 다녀오고 모든 준비를 다 마쳤다. 이번엔 3km지점부터 급수가 시작되었다. 물 한잔을 거하게 마셨다. 그 뒤 시작된 배의 약한 통증, 별 일 아닐거 같았다. 4km쯤 화장실 표시가 있는 건물이 보였다. 살짝 들어갈까 고민했지만 지나쳤다.

1km쯤 더 갔을까 신호가 왔다. 이번엔 큰 건이다. '아~연달아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1km를 돌아가서 화장실로 갈지 앞으로 5km를 갈지 선택의 순간. 다들 앞으로만 뛰는데 나만 1km를 다시 뒤로 뛰어간다니 억울했다. 그래서 쭉 이어가기로 했다. 혹시나 중간에 화장실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깐. 사이프러스 나무가 양옆으로 이어진 흙길이었다. 낭만적인 이 흙길, 너무나도 큰 나무, 저 나무 사이로 들어가 조용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 숲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오르막길, 화장실은 보일 기미가 없었고 배에서는 요란한 소리들이 나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에게 화장실을 물어보니 "결승점까지 가셔야해요." 라고 대답 뿐. 이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인가. 진통이 오는것 마냥 주기적으로 배가 신호를 줬다 안 줬다를 반복했다. 신호가 없을땐 빨리뛰었다. 신호가 오면 속도를 줄였다. 결승점 1km를 남겨놓은지점에서 보이는 화.장.실. 바로 코스를 이탈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다시 평화가 왔다. 남은 1km를 전력질주했다. 행복하고 가벼운 전력질주였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몇번의 화장실을 다녀왔다. 장염이었는지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누웠다.




이 두 대회때문에 약간의 화장실 트라우마가 생겼다. 풀코스를 뛴다고 생각하니 제일 먼저 화장실이 있

냐 없냐가 중요했다. 춘천마라톤은 춘천의 시골길을 달리니 화장실이 부족할터 한편 JTBC마라톤은 잠실과 수서역을 중심으로 도심을 달리니 화장실은 걱정을 안해도 될 듯했다. 춘마는 연달아 10번을 나가면 명예의 전당에도 오를 수 있고 역사가 깊은 대회여서 꼭 한번 나가고픈 대회이다. 제마도 마찬가지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고 도심을 달려보는 대회는 통제된 도로에서 달리는 재미가 있다.

전략적인 면에선 춘마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다고 한다. 26km지점부터 시작되는 오르막에선 많은 마라토너들이 포기하는 지점이라고 익히 들었다. 제마는 초보가 뛰기에 코스는 적당하다고 했다. 마음 같아선 올해 두 대회를 모두 달려보고 싶지만 마라톤 초보인 나에게는 아직 무리라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했다. 욕심을 낼 상황도 아니었다. 자칫하다 몸에 무리라도 가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40대 중반, 어디라도 아프면 회복이 더디니 달리기 인생에 걸린 일일수도 있다. 아직까지 선택하지 못했다. 그 어려운 풀마라톤 접수를 2개나 성공하고 행복한 고민을 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결론은 어느 대회를 참여하든간에 올 가을 내 마라톤 인생에 풀코스를 한번은 뛴다는 것. 그 준비를 위해 런교실을 등록하고 일요일마다 반포종합운동장으로 향한다. 올해만 경험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대회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느 대회가 될지 모르지만 목표를 정하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 더 중요한것이 아닐까. 진짜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의 풀코스는 아직 무리겠지? 혹시 될수도 있지 않을까. 데카르트 형님의 말 처럼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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