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만 6명인 어느 행복한 가정에 엄마가 친구로부터 예쁜 인형 하나를 받아왔습니다. 엄마는 딸들에게 오늘 말을 제일 잘 듣는 사람에게 이 인형을 줄게라고 말합니다. 여섯 딸들은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에이, 그럼 이거 아빠꺼잖아." 딸들이 보기엔 아빠가 제일 집에서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인가봅니다. 이해인 수녀는 자신의 시 <듣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귀로듣고 몸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고 전인적인 들음만이 사랑입니다. 모든 불행은 듣지 않음에서 시작됨을 모르지 않으면서 잘 듣지 않고 말만 많이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바로 나였네요. 아침에 일어나면 나에게 외칩니다. 들어라 들어라 들어라 하루의 문을 닫는 한밤중에 나에게 외칩니다. 들었니? 들었니? 들었니? 경청은 힘듭니다. 듣는게 왜 어려운지 생각해보면 나를 내려 놓은 그 자리에 상대방을 올려놓아야 하니 어렵다고 강원국은 <나는 말하듯이 쓴다>에서 언급했습니다. 즉 경청을 하려면 나에 대한 절제와 상대를 향한 존중이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여기에 배려, 공감, 섬세함까지 더 요구되니 경청하는 것이 어려운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글 쓰는 삶을 살아가면서 매일 블로그에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합니다. 이런 고민중에 다른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기 시작했습니다. 해결책을 제시해 줄 만큼 저는 현명하지 못합니다.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주기만 합니다. 아직은 거기까지 입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독서모임 멤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미리 도서관 독서회실에 도착해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발제 질문을 가지고 이야기할까 생각중이었습니다.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독서회 회장이 먼저 안부인사를 말하고 읽은 소감을 말했습니다. 중간에 끼어들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누르고 회장의 말에 집중했습니다. 그녀의 말이 조금 길어집니다. 그러자 또 집중하지 못하고 저는 어딘가 말 사이에 끼어들 틈을 찾고 있었습니다. 참지 못하고 한마디 추임새를 넣었습니다. 뒤이어 제가 말하고 싶었지만 또 주도권을 뺐겼습니다. 그녀 맞은편에 앉은 회원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또 그 분의 말이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점점 가고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한 일은 이때부터 벌어졌습니다. 마음을 놓고 아무 생각없이 듣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상대방의 말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다른 회원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어느 틈에 내가 어떤말로 끼어들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기울어졌던 몸이 책상앞으로 바짝 붙여졌습니다. "좌파, 우파로 나눠져 집안내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금지다. 5.18 사건을 겪은 광주시민들을 보니 얼마전 계엄령이 일어났을때 얼마나 긴장했을지 상상하지 않아도 알겠다, 등" 각자의 경험담들을 이야기하며 한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결국 저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채 다음 일정이 있어 먼저 자리를 나왔습니다. 오늘 독서모임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에 미련이 남았습니다.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서라도 한시간 더 있다 나오고 싶었습니다. 단연코 독서모임에서 저는 주인공도 아니었습니다. 다른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지 듣는것 만으로도 재미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꼭 내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하엘 소설 <모모>에서 모모도 마찬가지로 놀이터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합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모모에게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는 모모에게 사람들은 계속 찾아옵니다. 진심으로 경청하는 태도는 누군가에게 가장 큰 위로와 선물이 될지도모르는 일입니다. 누구나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합니다. 어떤 모임에 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말만하고 자기자랑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더 많이 듣고 더 적게 말하면 그 모임의 공간 자체가 공감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사실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2025년에는 입을 좀 다물고 상대방의 말에 더 귀기울이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사람에게 입이 하나고 귀가 두개인 이유, 말하기보다 듣는것에 더 집중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조심하라고 합니다. 언니에게 말하면 블로그에 다 기록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읽고 쓰는 삶에서 하나 더 추가가 되었네요. 들어주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