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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Feb 14. 2024

약속의 땅

“탄!  비상입니다!”


마침 비상경비대원이 날아오지 않았다면 저놈의 잘난 척을 몇 번이고 더 봤어야 했는데 다행이다. 


“네, 무슨 일이에요?”

“하.. 할아버님이….”

“할아버지가 왜요?”

숨을 몰아 쉬느라 순찰대원은 말을 잇지 못했는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걸 보아하니 심각한 이야기인 게 확실했다. 경기는 진행되지 않았고 경기장에 있는 모든 무리들도 그들의 말에 주목하였다. 


“할아버지가 왜요!”

“… 기절하셨습니다.”

“기절?! 할아버지 여행 중이셨는데?”

“그게 인간들이 살포한 약에… 같이 간 무리들은 전원… 사망하였습니다.”

“전원이라 하면…”

“약 50…”


나와 포와 한 그리고 루는 동시에 발을 굴러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날아갔다. 대회에 있던 모든 무리들도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자갈침대 주위로 모여 있었다. 날아오는 내내 ‘설마… 돌아가시기야 하겠어…?’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비상사태는 여러 번 있었지만 나의 가족이 봉변당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직 할아버지를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다. 떨리는 마음으로 착륙해 할아버지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할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던 아버지는 내가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할… 아버지.”

“탄…”

“어떻게…” 금방이라도 떨어질것 같은 눈물을  가득 담은 눈으로 할아버지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몸을 살펴보았다.

“인간들이 뿌린 살충제 한 방울을 맞았단다…”


한 방울이나 맞았다고? 한 방울이라는 단어에 무리가 웅성거렸다. 치명적인 양에 놀라 어머니는 기절하셨고 더러는 살 가망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살충제는 맞기만 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하… 할아버지.”

“난. 조금 있으면. 콜록. 떠난다. 떠나기 전에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


나는 할아버지 옆에서 손을 잡은 채 눈물을 겨우 참고 있었다.


“언젠가 말하려고 했는데… 콜록. 지금이 그때인 것 같구나. 콜록. 우리는 사실… 콜록. 그러니까 너희들의 고향은… 이곳이 아니다.”


헉! 뭐라고요?


무리가 웅성거렸다. 여기저기 질문이 터졌고 흥분한 몇몇은 붕붕 날갯짓을 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많은 무리들이 이곳이 고향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니 세상이 이곳 말고 또 있단 말이야? 내가 사는 이곳 말고? 

할아버지가 무리를 향해 발 하나를 높이 들자 일제히 조용해졌다. 


“이제 콜록콜록. 드디어 너희들에게 콜록… 내 고향에 대해서 알려줄 때가 된 것 같구나.”


수만 개의 붉은 눈들이 모두 할아버지의 힘없는 작은 몸짓에 주목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콜록. 보물의 행방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되었구나. 콜록.”


보물이 있다고? 보물이라는 소리에 무리는 다시 어수선해졌다. 


“그거 신맛 납니까?”

“달아요?”


흥분한 몇몇이 생사의 기로에 선 할아버지 상태는 잊고 외쳐댔다. 조용조용!이라고 내가 소리치자 소란이 멈췄다. 


할아버지는 이제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로 천천히 다음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이곳 서재가 아닌 부엌이라고 했다. 부엌? 부엌이라는 명칭은 처음 들었다. 그곳에는 항상 물이 넘쳐났고 안식처도 많다고 했다. 젊었을 때 할아버지는 그곳에서 수박 즙과 신 레몬, 달콤한 포도를 매 분 매 시간 즐겼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 화분에 있는 흙에서 얻는 물이나 가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컵 속의 물이 다였다. 이곳에서 수박, 레몬, 포도는 본 적이 없지만 어릴적 이야기 속에서 들은 적은 있다. 도대체 그것들은 무엇이길래 맛은 말로 형용할 수 없으며 자신의 몸보다 몇 천 배나 커서 죽을 때까지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일까. 날파리라면 꼭 한 번 먹어야 한다는 수박 레몬 포도즙을 할아버지가 정말 먹어봤을 줄이야.  나의 소망은 일절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레몬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던 할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레몬에 대한 소망이 동시에 몰려왔다. 아마 무리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흥분과 배신은 그들을 일제히 소란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기에 있나요!”

“부엌으로 가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당신의 자손은 왜 이 곳에 머무르게 되었나요?”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나도 궁금했다. 하지만 죽어가는 할아버지에게 무리한 요구는 하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솟구치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할아버지는 다시 무리를 조용히 시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포도즙이 넘쳐나던 부엌, 파라다이스 같았던 부엌은 사실 인간이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매일 살얼음판을 걷게 만드는 곳이었다. 정기적으로 오는 살충제, 예상을 뒤엎는 전기채의 출현, 인간 손바닥 공격등이 그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유난히 예민했던 할아버지의 아내, 그러니까 할머니는 동생이 인간의 손에 잡혀 납작하게 된 모습을  목격한 후부터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수박즙을 앞에 두고도 그 위에 착륙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고 할아버지는 결심했다. 가족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기로. 다른 곳에는 안전하고 더 많은 신맛이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무한히 긍정회로를 돌리며 자신을 설득했다. 모두들 말렸지만 그들의 결심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서재에 도착한 후 그들은 마음의 고요함을 느꼈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는 몬스테라 화분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걱정 없는 한 시간을 보냈다. 꿈만 같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꿀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들이 배고프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음식은 없었다. 살기에 척박했다. 이곳 서재엔 물도, 신맛도 찾을 수 없었다. 몬스테라 화분에 있는 흙에서, 가끔 인간이 가져오는 컵 안에서 조금의 물을 얻었고   식물에서 나오는 조금의 신맛과 흙속에 선충과 미네랄이 가득한 작은 곤충 시체 부스러기로 배고픔을 달랬다. 부엌의 음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때때로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썼지만 할아버지는 단호했다. 그렇게 가족은 모두 담백한 식물즙에 적응해 가는 듯했다. 할머니는 차차 생기가 넘치는 원래의 아름다운 얼굴로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의 표정을 보고 행복했다.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인간들의 공격성이 있는 곳 보다 안전한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 무리가 생겨난 것이다. 


“그곳은… 부엌은… 신맛과 단맛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물론 나는 그곳을 떠나왔지만 살면서 한 번 가볼 만한 곳이지. 그곳을… 콜록. 한 번 가보길 바란다. 탄.”


그리고 할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할아버지!!!”

“수장님!”


모두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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