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렇게 사라져 버린 개들 중 한 마리일 뿐이라도.
할머니 댁은 앞서 말했다시피 깡촌이다. 깡촌이라면 응당 마당에는 개 한 마리씩은 키우는 모습이 상상될 것이다. 예전보다, 내가 어릴 적보다는 확실히 많이 줄었다. 뜬장에서 키우는 집들도, 개를 키우는 집들도.
하지만 아직도 키우는 곳에서는 혹서, 혹한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제대로 된 밥하나 못 먹고사는 곳이 여전히 많은 건 참 슬픈 현실이다.
여태껏 사라진 개들은 수 없이 봐왔다. 할머니 댁은 다행히 어떤 개도 키우지 않으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나는 할머니 댁에 오면 주변 집들을 기웃거리며 어떤 개들이 생기고 사라졌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매일 묶여있는 애들은 산책을 시켜주고 도시에서 사 온 간식들을 나눠주기도 물을 갈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서 하는 일이란 쉽진 않아 매번 아쉬움만 남는다.
까미는 할머니 댁으로부터 걸어서 15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있는 집 개였다. 과거형이라는 것은 '사라졌기 때문에' 어제부로 할머니에게서 그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할머니께서 전화가 왔다. 동네일이라면 사소한 것까지 다 공유하는 곳이라 모를 리 없었다.
나는 미루고 미루다 (좋은 소식은 듣지 못할 것 같아 피한 게 맞다) 아랫집 까미는 새끼를 낳았냐고 물었다.
9월에 본 까미는(이름은 내가 지었다) 어느 떠돌이견 때문에 새끼를 배었다. 개체수가 많아지는 건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반대하는 나라서 정말 좌절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할머니 밑에 집 개는 새끼 낳았어요?' 할머니는 '새끼는 다 죽고 어미도 집을 나갔다 한다'
역시는 역시 불안한 마음은 사실이 되어 들려왔다. 워낙 방치하면서 키우는 곳이었기 때문에 크게 바라진 않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새끼와 어미 모두 사라져 버린 건 최악이었다.
순간 철끈으로 묶인 애가 그리 크지도 않은 덩치로 어떻게 끊고 갔을까 생각이 들었다. 정말 목줄을 끊고 도망간 걸까? 아니면 팔아버리고선 거짓말을? 새끼를 잃고 초월적인 힘이 생긴 걸까? 하고 많은 생각이 순간 스쳤다. 저번 주는 시골에서 김장 때문에 모일 수 있었는데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 그때는 살아있었을까 도와줄 수 있었을까 괜한 후회만 가득 남았다.
꼭 시골에 다녀오면 다음 안부가 걱정되는 몇몇 아이들이 있다. 그중 하나였던 까미는 역시나 몇 개월을 살다 생사도 알 수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께는 '그 집은 개 좀 그만 키우라고 해요.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남의 집에 내가 이래라저래라 한디야~' 맞다. 할머니 말이 백번 천 번 맞지.
특히 우리나라 같이 동물복지가 0에 수렴하는 나라라면 더더욱 말이다. 독일을 포함한 동물복지 좋은 유럽이 너무 부럽기만 하다.
그래 여긴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도 죽어나가는 한국, 대한민국이지.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이 생각났다. 사람이 먼저니 동물은 뒷전이다는 말은 아닐 테다. '동물이 행복해야 사람도 행복하다'는 게 동시에 생각날 뿐이다. 하루 종일 까미 생각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까미의 행방불명이 까미에게 좋은 방향이었기를 바라본다. 키우는 환경을 보고 누가 구조했다던지, 아님 집을 나왔는데 어떤 좋은 사람을 만나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고 자라는 상상 같은 걸 해본다.
까미야! 꼭 행복해야 해.
https://youtu.be/8tGjl7GZZ0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