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쌩신입으로 취업하기
이제 다른 길은 없다. 더 이상의 직무 고민을 할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이 직무를 영원히 할 수 있나? 에 대한 질문엔 yes, ofcourse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정한 이 직무로 취업을 해야 하긴 하는 것이다.
디자인이라면 담을 쌓고 지낸 세월이 더 긴 나는 포트폴리오 디자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의 심정은 앞이 안 보이는 터널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학원은 그야말로 내가 어느 정도 비빌 언덕을 마련한 셈이었다.
디자인 학원 첫날, 소수정예로 모인 수업에서는 선생님께서는 짧은 자기소개를 부탁했다. 그런데 웬일? 비전공자가 나뿐이었다. 다들 디자인을 업으로 하거나, 디자인학을 다니는 재학생이었다. 아니! 비전공자가 많다면서요! 첫날부터 나는 풀이 한껏 죽었다. 그러나 도망칠 곳은 없다.
수업은 짧은 이론 수업 후 지난 과제를 한 명씩 피드백해주는 시스템이었다.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괜한 자격지심에 덜덜. 첫 피드백 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건(?), 에피소드가 있었다. 디자인계열에 있는 사람이라면 기본 중 기본, 아니 이건 일반 사람에게도 허용하지 못하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미지를 다 깨트려 포폴을 만든 것.
선생님: 포트폴리오에서 비율 깨진 이미지 사용하면 보지도 않아요.(단호)
나:아.... 네....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죠?
선생님:....... shift 누르시면 돼요.
나의 저 기본 of 기본 질문에 선생님은 꽤나 놀라셨을 거고 나는 느꼈다. 선생님의 짧은 침묵 속 당황을.
선생님은 참 친절하신 분이셨는데 마스크 뒤로 당황한 모습을 나는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똥 손이 디자인에 뛰어들었다니..
중간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으니 진행한 부분까지 발표를 하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발표를 진행했다. 역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의 모습은 처연하기 짝이 없고 아주 많이 산만한 발표와 과연 청자들은 이해를 했을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발표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다음 수강생의 발표에 나는 끝없는 자책과 좌절을... 했다. 발표 실력뿐만 아니라, 피피티의 레이아웃, 가장 중요한 uxui디자인까지 뭐하나 떨어지는 게 없었고 선생님의 찬사가 이어졌다. 정말 완벽한 발표였어요..!
강의는 2달 과정으로 uxui디자인 입문자를 위한 강의였다. 2달이란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끝이 났고 응당 만들어져야 할 1개의 포트폴리오는 없었다. 어디 있어요? 없어요. 어디 갔어요? 아니요. 그냥 없어요.. 일주일에 한 과제씩 주어지는 걸 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하나의 과제를 하기에도 무척 버거웠다. 전에 다뤄보지 못한 디자인 툴을 익히는데만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내 과제는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고 매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잘하는 사람이 많은 분야에서 잘할 수 있겠어?' 하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많이도 던졌다. 그리고 그 나약한 마음가짐부터 뜯어고쳐야 했다. '나는 할 수 있어!'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그때 마음속으로 수 없이 외친 '할 수 있다'에서 나는 조금씩 근거 없는 자신감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눈물 나는 정신승리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