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가 죽었다
동기들이 차례대로 휴학을 해도 앞만 보고 달렸다. 문득 부러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싶었다. 졸업을 해야 대학원에 갈 수 있으니까. 졸업을 해야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4학년의 마지막 학기, 11월임에도 한겨울처럼 추웠던 어느 날. 대학원 면접을 보고 온 나는 대학에서와 달리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를 깨닫고 집에 오는 길에 아주 조금 눈물 지었다. 물론 기분은 내내 바닥이었고 집에 와서도 이불 속에 숨어 조금 더 울었다.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지, [합격을 축하합니다] 라는 합격창을 보고 훌쩍였다. 불과 한 달 전의 면접에서 그토록 움츠러 들었던 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일단 들어갔으니 됐다고. 그만큼 간절히 바라던 대학원이었므로 나는 순진하게도 대학생 때처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잘 해내지 못 했다.
석사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내 정신세계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을 느꼈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스스로를 외면한 것이다. 그만 두기는 아깝잖아. 아무튼 버티면 될 거야. 그렇게 2학기를 맞이했고,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처음에는 수업을 빠지는 정도였다. 이제야 사춘기를 맞이한 어린애처럼 학교에 간다면서 다른 길로 빠졌다.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하고 읽는 시간이 길어졌고, 아예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구매해 근처 카페에 앉아 해가 다 지고 세상이 캄캄해질 때까지 문제를 풀었다. 그런 기이한 행동을 곱씹으며 당시에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 하도록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내게 필요했던 건 그저 아주 작은 성취감이었다.
불면에 시달렸다. 새벽에는 캄캄한 창밖을 보며 10층에서 떨어지면 깔끔하게 죽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말도 안 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닫고 나는 휴학을 결심했다.
휴학을 적극 권유한 사람은 교수님이었다. 자퇴는 안 된다. 차라리 잠깐 휴식을 가져라. 복학해서 힘들면 그 때는 수료로 마무리 짓자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자퇴를 감행할 용기는 없었다.
봄 학기 휴학 후 돌아가려 했지만, 반년 뒤의 가을 학기도 휴학을 하게 됐다.
교수님과는 종종 연락을 주고 받았다. 문자나 전화라는 수단을 두고 메일로 편지를 보내고, 한참 뒤에 또 편지 같은 답장을 받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수님은 내게 선배 한 명을 소개시켜 줬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다른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선배라면서.
나는 극심한 내향형의 인간이므로,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만나서 커피 한 잔 정도는 하게 됐고, 교수님이 왜 다리를 놓아 주셨는지는 알 수 있었다.
선배는 하얀 설원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꿈꾸었던 그 막연한 길을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멋진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의 등을 보고 걸으면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용기가 생겼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 끝까지 완주하고 싶어졌다.
선배와는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았다. 가벼운 잡담을 하기에는 서로를 너무 모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너무 먼 사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한 마음으로 선배를 응원하고, 나홀로 선배를 동경하는 것 뿐이었다.
당연히 우리가 주고 받는 연락은 줄어 들었고 종국에는 뚝 끊겼다. 그래도 슬프지 않았다. 그 겨울, 나는 복학을 준비하고 있었고 선배와 나는 같은 공부를 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만나게 될 터였다. 그러니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그 날까지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다거나, 선배의 옆에서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복학 신청서를 작성해놓고 끝끝내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부고소식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선배가 죽었다. 사고는 아니었다.
학교에 돌아가지 않고도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 다시는 선배를 만날 수 없게 됐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도 울컥하고, 눈물이 줄줄 났다. 평소에는 친구들에게 잘 연락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매몰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친구들을 찾아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또 눈물을 줄줄 흘렸다.
매일 멀쩡한 얼굴로 부모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핸드폰과 이어폰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운동을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나는 캄캄한 어둠 속을 정처없이 걸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운동장을 맴맴 맴돌다가 달렸다. 밤이면 운동장의 트랙을 따라 거닐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가로등 빛이 환하지는 않았고, 덕분에 나는 운동장을 달리며 엉엉 울어도 됐다. 귓가에 들리는 라디오가 다정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껏 울다가,
또 잘 살다가,
어느 날에는 흐느껴 울다가,
이제는 울지 않는다.
서른.
나는 어느덧 선배와 같은 나이가 됐다.
여전히 코끝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