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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 자식이라는 이름

이름표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방향

by 쭘볼 니나

최근 둘째가 대학생이 되었다.


순둥순둥한 첫째는

코로나 시국에 대학생 입학을 한 이유도 있지만

'I' 성향이라 그런지 '대학생활'에 대해 특별히 나의 잔소리가 필요 없었다.


첫째와 다르게

극 'E' 성향의 둘째는

1학기 내내 자정을 넘은 귀가에, 만취하지 않은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신입생 시기를 가열차게 보냈다.


나는 입학 전에 둘째에게 딱 두 가지만 지켜 달라고 당부했었다.

가급적 1시 이전에 귀가, 그리고 '외박'만 하지 말라고.


며칠 전 둘째가

비장한 얼굴을 하고

토론을 가장한 '싸움'을 걸어왔다.


과 모임에서도, 동아리 모임에서도

12시 넘었다고 집에 가야 한다는 친구는 자기 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대답했다

- 늦을 수 밖에 없는 일이 있으면 미리 얘기를 해줘.

엄마가 절대 안된다는 거 아니잖아.

상황에 따라서는 2-3시가 될 수도 있겠지


그랬더니 둘째가 하는 말

- 제가 왜 허락을 받아야 하죠? 저는 이제 성인인데

외박할 때도 허락받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요.

(다른 어머님들! 정말 그런가요??)

성인이 왜 허락을 받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정을 우리나라의 '엄마'만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고3 내내

나는 누구보다, 당사자인 수험생보다도 더 절실히 대입을 위해 달렸다.

학원과 모든 입시 정보를 내가 저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했건만...

퇴근 후에도, 아무리 피곤해도 저 잠들기 전에 먼저 자는 일이 없었건만..


고3 1년 뿐이겠는가

스무살이 되도록 저를 위해 달린 내가

자정이 넘어 귀가를 하게 되면 얘기를 들을 자격도 없단 말인가.


- 나이만 되면 성인인 거니? 진짜 성인이면 용돈도 받지 말고, 학비도 받지 말아야지

니가 고3때와 지금이 달라진 게 뭔데? 너는 성인이 아니라 그냥 학생인 거야.

엄마는 경제적 독립을 해야 진짜 성인이라고 본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둘째와 토론을 가장한 싸움이 점점 격해지고

잠들었던 남편과 첫째가 방에서 나와 중재를 했다.

- 엄마는 온 식구가 들어올 때까지 안 자고 기다리는데, 걱정이 되는 걸 이해 못 하느냐...


결국 나는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라고 소리 질러 버렸다.

- 이 놈의 자식, 이제 니 멋대로 살아봐라 엄마는 너한테 관심을 끄련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을 차리면서 나는 생각한다.

- '이놈의 꼴보기 싫은 자식, 아침에 깨워주나 봐라'

(밥을 떠놓고, 둘째가 좋아하는 반숙으로 계란 후라이를 해서 밥 위에 얹는다.)

- ' 이제는 일어나야 되는데....알람은 해놓고 잤으려나.'

(남편한테 둘째 방을 가리키며, 깨우라고 눈짓을 한다.)


고3 시절 '니 공부지, 내 공부냐??!!' 라고 등짝을 때리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며 어르고 달래며 공부시켰던 마음이랄까...


회사에 출근해서 서운한 마음에 둘째가 미워지려니

내가 대학생 때 엄마한테 했던 '꼬라지'가 생각났다.

취업에 필요한 교육원을 다니고 싶었는데, 수강료가 부족했다.

엄마한테 보태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없다고 하셨다.


나는 말했다.

엄마가 당연히 해줘야 되는 것 마냥,

엄마가 나의 빚쟁이인것 마냥

- 나는 대학 내내 장학금을 타서 엄마돈을 아껴주지 않았냐

그 학비로 생각하고 보태 달라


그 말을 들은 엄마의 대답이 아직도 생각난다.

- 맞어, 그랬지. 우리 딸이 공부 잘해서 엄마 돈 많이 아껴주었지.

그래 그런데....

돈이 없는 엄마는 미안한 듯 말끝을 흐리셨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괘씸하고 못돼 처먹은(!) 딸이었는지...

엄마에게 부끄럽고 너무너무 죄송하다.


이제껏 아이들이 내 수고를,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아이들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라는 말을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학원 한번 못 다니는 게 그렇게 아쉬워서

'공부만 해라' 하는 친구들의 부모가 부러웠었다.

부모님은 나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 할 시간도 없으셨고

대학 갈 성적이 되는 것도 기쁘면서도 부담스러우셨을 것이다.


부모에게는 못 받은 것에 대한 투정만 부렸던 내가

자식에게 내가 해준 것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 모습이라니!


아이에게 섭섭한 마음이 가시지는 않지만

내가 못 박은 넓은 가슴을 생각하며


아이도 언젠가는 알아 줄 날이 있겠지

스스로 위안해 본다.


고마움이라는 마음의 보상도

부모 자식간은 한쪽 화살표만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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