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공무원 입성, 안팎으로 인지도 상승에 기여
공무원 되기 전에는 4년제 대학을 나온 그저 그런 아줌마였는데,
공무원이 되고 나니 나의 위상이 조금은 달라졌다.
그것은 특히 친척들이 많이 모인 명절만 되면 어른들이 공무원이란 직업을 얼마나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나의 시아버님은 6남매 중 막내시다. 고로 나의 남편은 사촌 형제들 중에서 막내다.
시댁의 첫째 사촌 아주버님과 내 시어머님의 나이 차가 두 살이라고 들었다.
설이나 추석에 시댁의 큰집에 차례를 도우러 간다. 나는 막내 꼬두바리 며느리이고, 예닐곱 명의 형수님들이 층층시하 위로 계신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난 그저 그런 막내 동서였다. 처음 두 번의 명절은 나는 묵묵히 설거지만 하는 며느리였다. 특별히 나에게 관심 갖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내가 결혼 후 2년을 지날 무렵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난 순식간에 아주 매우 똑똑한, 형편이 좋지 않았던 막내 작은 아버님 댁을 일으킬 총명한 며느리로 인식 상승되었다. 아이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제일 큰 형님과 사촌 시누이 한 분은 내가 당신의 아이들에게 공무원 합격 비법(?)과 공무원 시험의 동기부여를 일으켜 주길 기대하시며, 부엌에서 내쫓고(?) 다과상 앞에 앉히셨다.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부모님과 수험생에게 각각 강조해서 얘기한다.
일단 부모님에게는 경제적 눈치 주지 말고 맘 편히 공부할 3년간의 시간을 주라는 것을 말씀드린다.
다른 주변 환경에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만 올인한다면 2~3년이면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올인이라는 말이 정신적 신체적 부분이 모두 포함이라, 수험생 본인도 정말 몰두한다는 전제하에서다.
나는 시간적, 경제적으로 모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공부를 했기에 올인의 환경을 가진 수험생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리고 수험생에게는 공무원이야말로 문화, 기획, 회계, 복지 등 무궁무진한 분야에서 일해볼 기회를 가지는 직업이라는 것. 각 지자체들은 작게는 20여 개, 많게는 35개쯤의 다양한 부서로 구성된다. 그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은 나의 이 말을 듣고는 '정말 그렇게 다양하다고? 한번 해볼까?'라는 흔들리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이런 얘기들은 지금도 변함없는 전하고 싶은 진리이다.
명절 때마다 나는 공무원 준비를 부모님으로부터 독려받고 있는 조카들을 만날 때마다 공무원은 전혀 따분한 직업이 아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공무원의 직업 세계를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나는 동 주민센터 민원대에서 시작해서 복지, 감사, 기획 등을 거치면서 20년 공직 생활을 해왔다. 새로운 업무가 주어질 때마다 생소하고 법령이나 지침을 새로 공부해야 하지만, 가끔 내 적성에 딱 맞는 업무를 만나 신나게 일할 때도 있다. 물론 말도 안 되게 억울하게, 잘못도 없이, 민원인한테 고개를 숙여야 할 때도 있지만, 기획 분야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만든 새로운 사업으로 주민의 삶이 달라지는 보람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무원으로 일하는 중에 가끔 이런 생각도 했다.
잠들기 전...차라리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침에 눈을 뜨면..차라리 출근 버스가 교통사고가 나서 얼마간 입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얼마전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보면서 미래도 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종류는 다른 힘듦이지만.)
도대체 내가 공무원 시험은 왜 봐서 이런 직업을 갖고, 20년이나 일을 하고 있을까.
그만두지도, 힘들다고 토로하지도 못하는 이런 직업을 왜 택했을까.
다른 서너개의 직업을 전전해 봤으니,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이 직업이...그래도....짤리지 않는 이 직업이...다른 직업보다는 버티기 수월하다는 것을.
20대 다른 직장에 근무할 때, 나는 버스 타고 퇴근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자정이 넘어서 퇴근하는 것은 다반사, 한달에 며칠은 그저 씻으러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공무원은 적어도, 아무리 힘든 부서라도 버스 퇴근 시간은 지킬 수 있다.
혹 버스 통행 시간 이후에 퇴근하게 될지라도, 아마도 그것은 일년에 특히 바쁜 일정 기간에 한정일 것이다.
공무원은 몸이 힘든 일이 아니고, 마음이 괴로운 직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원, 민원, 민원...
교통, 주차, 공동주택, 하다못해 등초본..
민원부서가 아니라도 민원과 관계되어 있지 않은 부서는 없다.
감사과에 근무한 적이 있다.
내부민원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민원인이 공무원을 감사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예산업무는 내부민원도 크지만, 관내에서 힘좀 쓰는 분들의 요구, 시구의원들의 요청도 만만치 않다.
누군가가 얘기한 적이 있다.
내 자식에게 이 직업을 권하고 싶냐가 직업만족도의 척도라고.
난 단언코 말한다.
내 자식들이 이 직업을 선택한다면 말릴 수는 없겠지만, 절대 권하지는 않겠다고.
담대한 사람들은 잘 맞는 직업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심의 극치인 나와 내 자식들에겐 하루하루가 잠못 드는 날의 연속일 듯 싶다.
미용실에 가도 공무원 티가 난다고 한다.
이 조직이 나를 이리 소심한 사람으로 만든건지,
소심하니 이 조직에서 2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공무원이 되고 나니 공무원 편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조차도 공무원은 전례답습, 무사안일의 전형인 사람들일 뿐이고,
공무원의 복지가 좋아지는 걸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공무원 초임 시절에 동창 모임에서 그 즈음 처음 생긴 공무원 복지제도인
'복지포인트'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동창들의 반응
- '우리 세금으로?, 공무원들을 왜?' '직업이 복지인데 복지를 또 왜?'
힘든 민원 때문에 '아 때려치고 싶다.' 라고 하면,
- 어쨌든 안 짤리잖아. 너 힘들면 나한테 넘겨라.
나도 안다. 결혼 전 해봤던 직장 생활에서 충분히 겪었던 일이기에
무엇보다 이 직업이 고용이 보장된 곳이라는 장점은
근무 중 많은 것에 대한 부담을 덜고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
그래도, 그래도... 이제 공무원은 쉽지 않다.
안정된 노후와 정년보장을 지키는 것도 점점 어렵다.
최대의 장점 공무원 연금법도 많은 부분 개정되었다.
아직은 경쟁률이 높은 이 직업의 세계에 들어왔음에도
몇년 되지 않아 이것을 박차고 나가는 직원들이 하루하루 늘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이해의 시선으로
세상이 공직의 세계를 봐 주길 희망하는 건....너무 큰 바람인건가?......
어쨌든... 나는
소리치고 협박하는 민원인만 없어도 할 만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