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10년 차, 이제는 노부부처럼 익숙한 우울과의 동행
‘우울증’. 너무도 익숙하고, 이제는 흔해져 버린 진단명.
20대 초반에 처음으로 진단받고, 나름의 급성기를 거쳐 일상생활이 버겁지 않게 느껴질 때까지 부단한 치료와 노력을 했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바쁜 흐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지만, 가끔 불쑥 찾아드는 우울감이 이제는 놀랍지도, 별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저 싸울 만큼 싸우고, 그럼에도 억지로 붙어살다가 결국 정이 들어 버린 노부부 같다.
멀쩡한 척 바쁘게 살다가, 왜인지 몸이 축 늘어지고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또 왔구먼, 자네. 죽지도 않고 또 왔어. 어유, 지겨운 양반”
만성 우울증, 기분부전증, 고기능 우울증..
내 우울을 부르는 말은 다양하지만, 미운 정이 들어버린 나에겐 그저 노부부 같은 감정이다.
‘영감님’이라고 불러버리는 것은 어떨까. 수년 동안 나를 들었다 놨다 못살게 군 것에 대한 복수다.
우울 영감님과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풀어보자면, 몇 년 동안 지겨울 만큼 기나긴 싸움을 했다.
끝없이 나를 짓누르는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 약도 먹었고, 잠깐이지만 상담 치료도 받았고, 주변에서 좋다는 책을 소개받아 읽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는 기분이 나아지는 듯했다가도 금세 다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만큼 삶이 버거워졌다. 수없이 많은 감정 변화를 겪으며, ‘언제쯤 이 끝없는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감정 기복의 진폭이 점차 줄어들며 일상생활을 무난하게 이어갈 수 있을 수준까지 감정의 기본선이 올라갔다.
아마도, 헬스장에서 스쿼트를 하다 보면 다리에 근육이 붙듯이 끝없는 오르내리락을 통해 마음 근육이 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근육통을 피할 수 없듯, 수없이 반복되는 마음 근육통을 앓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진저리를 칠 만큼, 힘겨웠던 기억이다.
그렇게 ‘우울을 이겨냈다!’라는 생각을 하며, 일상생활에 충실하다 보니 이제는 시간이 흘러 30대 직장인이 되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며, 때때로 피곤하고, 괜찮은 척 속이며 ‘어른답게’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
세상 물정 몰랐던 순두부 같은 상태에서, 숨 가쁘게 돌아가는 어엿한 직장인들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것은 웬만한 각오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눈에 띄는 나의 색을 숨기고, 점차 주변과 비슷한 색을 칠해가며 직장에서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맞추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되었다.
튀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지내며, 맡은 바 일을 빈틈없이 완수할수록 '그럴싸한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종종 느껴지는 무력감과, 막중한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의 피로감, 습관성 자책 모두가 그저 '어엿한 사회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동반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것들이 어느새 적정 수준을 넘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나는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만성적으로 기분이 다운된 상태로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종종 찾아오는 자책감과 불만족, 나와 부딪히는 사람들에 대한 풀리지 못할 분노를 안고 '불편한 마음'이 기본값이 된 채로 지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불건강한 상태였음이 확연히 느껴지지만, 이런 상태가 너무도 익숙하여 '산다는 게 그렇지 뭐' 하면서 지냈다.
내 급성기 우울증은 이미 지나갔고, 어쨌든 '죽고 싶은 상태'는 벗어났으니 된 게 아닐까.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무수히 하고 있으니, 나정도면 꽤 괜찮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MMPI 심리검사를 해볼 기회가 생겼다.
평소에도 MBTI나 TCI 등 각종 심리,기질검사를 좋아하는 나는 '와, 재밌겠다!'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검사를 실시했다.
그렇게 며칠 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들으러 간 검사 결과에서, 제대로 팩폭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