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일기 4화: 기준이 너무 높아 잡으려고 애쓰다 보니

매일이 철봉에 매달린 채 버티는 삶이었다

by 당근

상담 이후, 집에서 감정을 곱씹으며 생각을 하다 상담사님에게 연락을 보냈다.


"상담 직후에는 눌러두었던 '우울한 나'가 증폭될까 봐, 또다시 우울감에서 벗어나려는 그 힘든 과정을 다시 겪어야 할까 봐 걱정됐어요.

오히려 집에 와서 좀 더 울고 싶은 만큼 울고, 할 일을 하며 지내다 보니까 제가 너무 불필요하게 많은 짐을 들고 버티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알아차림의 과정인 줄 알고 노력해 왔던 것들이, 실은 자기비판과 감정의 정제에 가까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


"긍정과 부정의 균형을 맞춰야겠구나 싶어서 당분간 분석과 개선, 각오를 다지는 글쓰기는 잠시 쉬고 단순하게 감사일기를 쓰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기분도 점점 나아지고 있고.. 다만 오랜 기간 본의 아니게 단련한(?) 회피를 내려놓고 나를 지키는 연습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오래 걸릴 것 같아 상담을 받으면서 행복해지려는 연습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아직 스스로가 그렇게까지 힘든 상태였다는 게 솔직히 실감은 안 나지만, 왠지 앞으로 힘들었던 나에 대해 알아가려는 마음의 가능성은 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바쁘신 와중에도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이번 주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보낸 긴 연락에, 상담사님이 따뜻한 답장으로 격려해 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짧게나마 하루에 3~5가지씩 감사한 점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꾸준히 적다 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일주일간 다시 바쁜 일상을 살다가, 자그마한 기대감을 안고 두 번째 상담일이 되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듯, 상담도 달지만은 않았다]


지난 상담 이후, 내가 ‘외면하고 억누르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마주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상담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상담실에 도착했다.


상담사님은 간단한 근황을 물어보고는 첫 질문을 하셨다.

"이번 상담에 두고 있는 목표가 무엇인가요?"


순간 숙제가 있었나 하고 당황해서, “목표를 정해 오기로 했었던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정하기로 한 건 없었지만 한 번 말해보라고 하셨다.


나에게 요즘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지난주에 비해 직장에서 별다른 이벤트가 없어 평범한 일상을 보냈기에 스트레스는 비교적 덜 받았다. 다만, 집에서 혼자 쉴 때마다 오래전에 잘못했던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라 마음은 한시도 편하질 않았다. 그래서 반추하는 습관을 어떻게든 고치고 싶다는 생각에 이렇게 답했다.

“부정적 편향의 사고방식이요. 그리고 지나간 일을 너무 자주 반추하고, 그럴 때마다 자책을 심하게 하게 돼요.”


목표를 정한 뒤엔, 관련된 대화를 한참 나눴다. 상담사님은 내게 물었다. 무엇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했느냐고.

일과 인간관계에서 내가 저질렀던 실수와 갈등에 대해 조금씩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내심 상담사님이 나에게 공감해 주고 편들어주길 원했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치료적인 의사소통'이었으므로, 대화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직장과, 직장 동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상황에 대한 내 견해와, 그 안에 섞인 비합리적 신념, 부정편향의 사고를 골라내는 과정을 겪었다. 중간중간 인정하기 싫은 내용들이 섞여있었고, 내 의견을 보충하여 상대를 납득시키고 싶은 억울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내가 직접 보고 들으며 생각한 것이 있다고, 편향적 사고라고만 말하지 말고 조금만 양보해 달라 하고 싶었다.


'정말로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대했어.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게 분명한데.. 나도 잘못한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반응이 정말 과하단 말이야!'

'이런저런 점은 객관적으로 봐도 정말 불합리한데. 이건 내가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개선해야 할 점이 눈에 보이는 걸 어떻게 하란 말이지..? 직장에서 나만 그렇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단 말이야'


그렇지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고, 말해도 원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입을 꾹 다물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직장, 가정에서 비슷한 상황이라 느낄 때 내가 늘 택한 방식이었다. 입을 꾹 다무는 것.) 그리고 속상한 마음을 이성적으로 달래려 노력했다.


“지금 중요한 건 나를 치료하는 것이지, 직장과 동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잖아. 중요한 일에 집중하자.”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그렇게 오랜 대화를 나누다가, 상담사님이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예요?”


왜..?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밖으로 대놓고 표출하지 못할 화를 왜 그렇게 품고 있을까?

분명 내 주변의 상황은 부조리했고, 직장 동료는 나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그런 와중에 나는 나에게조차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잘하고 싶고, 세상에 잘 섞여 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 비해 나는 부족했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합리에 맞서보려다 지쳐 저항할 의지를 잃고 물러서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내 기준에 반하는 것들을 보며, 입으로는 ‘신경 안 써야지’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내내 그에 대한 분노에 장작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상담사님이 또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독립투사처럼 살아요?”


'어..? 독립투사?'

왜인지 익숙한 단어였다. 나 홀로 전장에서 무기를 들고 만신창이가 된 채 사람들에 맞서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다 생각났다. 이전에 내가 내 입으로 직접 내뱉은 표현이었다.


한창 직장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상황을 개선해 보기 위해 이것저것 추진하며 노력하고 있을 때, “나 왜 이렇게 독립투사같이 살지? 이렇게 살아서 얻는 게 뭐라고.”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번아웃이 와서 1년의 휴식 기간을 가지고 난 후, 돌아오면서 다짐한 것 중 하나가 “독립투사처럼 살지 말기, 에너지 아끼기”였다. 그런데 그 단어를 상담에서 또 들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다.

“오, 그 표현 저도 저한테 했던 말이에요. 이제는 그렇게 안 살려고 했는데.. 예전 버릇 못 버리고..”


그러나, 독립투사는 예상했듯이 이번 상담에서 그렇게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었다. 주변 상황을 잔뜩 재단하며 화가 나 있던 나는, 높은 기준으로 장벽을 쌓아놓은 채 고립되어 주변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회사는 이래야 한다, 교육은 이래야 한다, 동료는 이래야 한다, 선배는 이래야 한다, ‘나’는 이래야 한다...' ‘must’와 ‘should’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데, 현실은 당연히 그와 다르니 그 괴리에서 오는 불행감을 내내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이상적인 내 모습도 아니고, 현실의 내 모습도 아니고, 그 사이에 있는 현실과 타협할 수 있으면서도 적절히 추구할 만한 ‘타협 가능한 나’였던 것이다.


가지고 있는 기준을 모두 내려놓을 필요도 없고, 계속해서 힘들게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저, ‘현실과 절충할 수 있는 선’을 찾아 조절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내가 바꿀 수 없는 일까지 끌어다 신경 써서 불행해지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신기한 건, 이 같은 내용을 내가 이미 여러 번 글로 적고 다짐했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직장에서 하는 다양한 고민들과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서 에세이를 쓰는 편인데, 거기에 종종 나오는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집중하기’, ‘바꿀 수 없는 일에 에너지 낭비하지 않기’였다. 익히 알고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혼자서만 되뇌는 다짐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을 때보다 오래가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그보다 좀 더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다른 문제가 있던 것일까?

확실한 것은, 상담을 통해 내가 못 보던 부분을 조금씩 들춰보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내 신념과 체계가 큰 폭으로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