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서둘러 출근준비를 한다. 출근 시간은 한 시간 반이상이 걸렸다. 때문에 일곱 시 반이 되기 전에 출발해야 했고 그래서 새벽 여섯 시 알람이 울렸다. 알람소리에 일어나 아이들끼리 알아서 챙겨 먹을 수 있도록 아침을 준비해서 식탁에 차려놓고는 씻고 화장을 한다. 마무리가 될 때쯤엔 아이들 방으로 들어간다. 두 녀석의 궁둥이를 통통 치며 잠을 깨운다. 그리고 영어 테이프를 틀어준다. “이제 그만 일어나자~” “테이프 틀어줄게” 두 녀석은 부스스 눈을 비비며 나를 바라본다. “엄마 벌써 준비 다했어?” “ 그럼 벌써 다 했지~ 아침도 식탁 위에 차려놨으니까 잘 챙겨 먹어.” “응 알았어 엄마.”라고 답하며 아들 녀석이 벌떡 일어나 나를 따라 나온다. 그리고 90도로 인사를 하며 “안녕히 다녀오세요.” 한다. 그러니 딸도 따라 나오면서 인사를 한다. “엄마 한 시간 반을 가려면 어서 나가야겠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두 아이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서는 나는 다행스러웠고 감사했다. 내가 먼 길을 달려 일터로 가는 상황이어도 괜찮았다. 마음이 여유 있어지니 몸이 조금 힘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학교를 다녀오면 오후 내내 혼자 있어야 하는 아들 녀석이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우리 세 식구만 살게 된 상황도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아이의 학교 생활은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늘 미안했다.
빚이 있는 상태에서 두 아이를 키워야 했고 월세도 내야 했다. 규칙적인 월급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자리가 선뜻 찾아지지 않았다. 당장 첫 한 달은 동네 지나는 길에 음식점에 ‘직원구함’이라는 표시를 보고 용감하게 들어갔다. 다행히도 사장이 있어 바로 면접을 보고 당장 그다음 날로 출근해도 좋다는 답을 들었다. 떨리는 마음에 출근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고기도 자르고 반찬도 날랐다. 정말 힘들었다. 처음 음식점에 출근한 날은 집에 돌아와 누워 발을 주무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본 식당은 고되고 호된 곳이었고, 홀직원은 담당한 테이블은 끝까지 책임지며 마무리를 해야 했고, 응대를 잘해주면 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힘들게 해서 받은 팁을 홀에 있던 직원들과 모두 나눠 갖는 것이었다. 자주 받았던 나는 은근히 부당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또한 식당은 처음이라 잘 몰랐지만 주방과 홀 직원 간의 다툼이 많았고 그러한 모습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런저런 이유로 딱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바로 토지분양 사무소 소개를 받아 출근을 했다. 그곳도 한 달 정도 다녀보았지만 나에게는 맡지 않는 직업이었다. 하루에 전화를 백통씩 걸어야만 했고 한 건도 계약하지 못하면서 한 달 월급을 받던 날의 그 눈초리는 마주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죄송하다며 소개해준 분에게 미안하다 이야기하고는 그만두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정착하지 못하다가 고민 끝에 봉사활동을 하며 알고 지냈던 친구가 근무하는 곳을 찾아갔다. 그때 그 친구는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여성의류 매장의 매니저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조언을 듣고 싶었다. 찾아간다고 당장 백화점에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내가 판매를 해도 괜찮을지, 판매를 하려면 어디서 해야 좋은지만 묻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바로 판매를 할 수 있겠는지 물었다. 나는 우선 돈을 벌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했고 판매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백화점에서 경력을 쌓으면 그 친구처럼 나중에 매장을 운영하는 매니저가 될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내 입장에서는 그것 만큼 미래가 명확해지는 일도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직원을 필요로 하는 매장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했다. 내가 무척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친구는 마침 본인 매장에 직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친구를 통해 매니저가 되겠다는 커다란 목표를 갖게 되었고, 친구매장의 직원으로 일을 바로 시작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규칙적인 월급을 받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이다.
첫 출근을 하던 날의 두근거림과 설렘은 내가 권한 옷을 사갔던 첫 고객이 준 설렘과 함께 내가 그곳에서 17년간 있도록 해주었다. 내게는 잘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목표가 있었기에 앞만 보고 달렸다. 거리는 멀었지만 가장 이른 시간 깜깜한 매장에 도착해서 불을 켜고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옷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행운이 가득하길 빌며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응대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매니저가 할 말이 있다며 불렀다. 무슨 일일까 무척 걱정을 하며 다가간 나에게 “너무 먼 거리인데 다니기 힘들지 않아?” 하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전혀 괜찮아. 걱정 마. 그리고 나 의류판매가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 내게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했다. 그랬더니 안 그래도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길 기회가 생기면 소개해 주겠다며 내가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을 주변 매니저들이 다들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전해줬다. 아무도 보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을 들으며,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내가 하기로 한 일은 철저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미래의 매니저가 되어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집에서 한 시간 반의 거리였지만 난 상관없었다. 출퇴근 세 시간도 불사할 마음이었다. 우선 일할 수 있어 당장 아이들과 먹고사는 일을 해결했다는 안도감과 나중에 매장을 운영하는 매니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출퇴근 길은 고생길이 아닌 감사의 길이었다. 세상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엄마의 자리가 아닌 어른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퇴근길 지친 상태에 집에 도착하면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며 아들 녀석은 어김없이 달려 나와 문 앞에서 90도 각도로 꾸벅 인사를 했다. 딸아이는 책상에 앉아있다가 중학교 2학년답게 마지못해 천천히 걸어 나왔지만 표정만은 밝았다. 밝은 웃음으로 나를 맞이해 주는 우리 가족의 밤은 또 다른 시작도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퇴근 후 청소를 하고 아이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지만 따뜻한 눈길을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언성이 높아지지도 않았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일도 없었다. 집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평화로운 곳이 되어 있었다. 나와 아이들이 함께 선택한 결과로 아이 둘과 새로운 페이지를 펼치던 시간들은 내가 제대로 어른이 되어가는 날들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