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원 1

황금 조팝나무

by 박종규

비록 시골에서 처음 가꾸어본 정원보다는 적은 면적이지만 그나마 도시 근교에 다시금 정원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결혼이란 사건 이후 두 번째 맞이하는 행운이라 할만했다. 첫 정원은? 누구나 첫 정원을 맞이하는 것은 매우 달콤한 경험이지만 결국에는 아쉽게 끝나는 허니문과도 같았다.

처음 마련한 정원 내의 땅과 식물 그리고 돌의 정령(精靈)들은 초보 정원사의 무지와 미숙, 과욕과 낭비로 말미암아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서로가 초보인 상태에서 만난 인간의 결혼과 달리 이미 자연에서 충분한 진화를 겪고 난 이후 이주한 자연의 혼들은 실망하고 탄식했으며 그는 열심히 일을 하고도 결과에 한숨을 쉬는 서투른 정원사였다.

과거의 실패를 충분히 인지한 그는 어느 이른 아침, 인근 야생화 식물원에서 ‘황금 조팝나무’를 사 오면서 미리 자리를 잡은 여러 식물의 아니마(anima 혼)에게 고사(告祀)라도 지내고 싶었다. 나무든 돌이던 그들이 원하는 곳이, 아니 적합한 지리적 환경이 있게 하련이다. 아무리 관목이라도 비슷한 관목들과 떨어져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있고, 비록 야생초라도 아무 곳에나 심어서는 안 되는 종류도 있다.

조팝나무는 장미과이다. 4월과 5월 사이에 흰 꽃잎을 피우는 이 나무에서 가끔 황금빛의 꽃망울을 맺는 나무로의 변이가 일어나는데 이 변이를 지속적으로 증식한 것이 황금 조팝나무라고 한다. 조팝나무는 그 군락에서 동시에 흰 꽃들이 피면 마치 뭉게구름이 길가에 깔려있는 것과 같이 아름답다.

정원에 심을 야생화 나무 묘목들을 사기 위해 식물원에 들어섰을 때, 관리자는 그에게 비닐하우스 뒤편에 키우는 묘목들도 살펴보라고 권유했다. 해가 약간 서쪽으로 넘어간 상태라서 해를 지고 관리자의 부인이 관리하는 뒤편의 식물군락을 살펴보는데 힐끗 얼굴의 왼편만 나타나는 상태에서 석양의 황금빛 햇살에 반사되어, 가지런하게 자라고 있는 황금 조팝나무라고 적힌 묘목을 권유하자 그는 이름에 반하여 주저 없이 작은 나무들을 샀다.

-화분 아니 묘목을 하나 사러 왔어요!

-마음에 두신 야생화가 있나요?

-아뇨, 뭔가 집안에 키우다가 좀 크면 뜰에 옮겨 심으려고요.

-황금 조팝나무를 한번 키워 보시죠? 초봄이라서 아직 꽃은 안 피었지만 화분에 키우다가 나중에 크면 밖에 내어놓아도 되죠.

-일단 집 안에 있으면 자주 보니 물도 주고 마음을 쏟는데 아직 정원에서 키우는 것은 힘드네요.

그가 약간 자신 없는 듯하자 그녀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아마 자기가 키우던 자식과 같은 생명체를 누군가에게 당부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쉽게 생각하다가 실패하시죠. 집 안에 있을 땐 정성을 들이다가 마당으로 이식하면 곧 잊어버리죠. 어떨 때는 그 존재마저. 야생화라는 게 그래요.

-명심하죠.

식물원에서 귀가하는 동안 저물 해가 서쪽 하트형 큰 바위 골 사이를 넘어가자 마을에는 잿빛 어스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모든 광원의 경계는 짙은 음영을 띠고 있다. 마치 사랑의 끝에 잔혹한 슬픔이 시작되는 것처럼. 그래도 희망이란 것은 내일 다시 오는 아침 황금 햇살에 비유하곤 하는 것이라.

천천히 차를 끌고 고원 위로 올라가는 느린 소 마냥 마을의 어귀에 도달하면서 갑자기 스치는 느낌은 거의 그 모습이 옆으로만 비친 관리인 여인의 음성이 너무 낯익다는 것이었다. 조팝나무 군락이 폭풍에 쓸리는 모습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이 황금색이던 흰빛이던 상관없이 그 형태를 기억할 것이다.

고유한 색조나 독특한 형태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음성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가장 보고 싶었던 아니, 평생 다시 들어서는 안 되는 그 음성은 아니었을까? 그런 그의 감정은 과거의 그녀에게도 동일하였을까? 감정 없이 식물을 집에 들여놓는 것은 위험하다. 황금 조팝나무 화분들은 분명히 그에게 과거의 어떤 기묘한 감정을 가지고 잠입했다. 그렇게 그의 정원에는 생각하지 못한 나무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았다. 마치 우리 인생의 빈 공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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