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전과 첩보 활동의 중요성
21세기의 전쟁은 누가 얼마나 정확한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적군의 주둔지와 이동 그리고 화력규모를 먼저 알아내고, 그것을 감지하고 파괴할 수단을 가지느냐에 승패가 달려있다. 그러므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영토를 넘어서 지구 전반을 감시하는 군사목적용 정찰위성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발사하고 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아마도 이런 고도의 정밀한 감시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스파이나 도청 그리고 감청에 의존하였다.
몽고메리 장군 역시 지휘관은 정보와 첩보 활동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기원전 201-120)의 말을 인용한다. 장군은 "적의 성향과 기질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로부터 2000년 후, 1857년 프로이센의 참모총장이었던 폰 몰트케(1800-1891)는 장교들에게 "여러분들은 적 앞에 펼쳐진 길이 세 갈래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중에서 적은 네 번째 길을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좋은 지휘관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일급의 정보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조직의 우두머리는 훌륭한 지적 자질을 갖춘 장교여야 한다. 그는 대단히 명석한 사고 능력을 가져야 하며, 적에 대한 모든 문제와 관련된 부수 사건들 중에서 핵심을 추려낼 수 있어야 한다. 장군은 적의 마음을 이해하거나 최소한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몽고메리 장군은 그러한 이유로 2차 대전 당시 자신의 막사 안에는 적장의 초상화나 사진이 걸려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적장의 움직임이나 패턴을 수시로 감지하였는데, 아마도 이런 능력이 그를 롬멜이라는 독일의 명장을 격퇴하는 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그는 전쟁 시 그의 얼굴을 뜯어보며 자신이 감행할 작전에 그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헤아려보곤 했다고 회고한다.
사실 이런 능력은 범인이 가지기엔 쉬운 능력이 아니다. 주무왕과 강태공의 만남은 덕치를 행하는 군주와 그를 뒷받침하는 전략가의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전에 보여준 범례라고 볼 수 있다. 유비와 제갈량이 만나기 훨씬 전 은나라(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립한 주무왕은 강태공을 만남으로써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육도삼략]이라는 책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후대에 편찬된 것으로 직접 태공망이 썼다고 보기엔 힘들다.
강태공은 주무왕을 만나 먼저 문도와 무도에 대하여 논한다. 그리고 무도의 세 번째 전략을 <모략 전술>로 명명한다. 주무왕이 강태공에게 "무력을 쓰지 않고 모략으로 적을 정벌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
태공망이 제시한 모략 전술은 12가지이다. 1) 적국의 군주가 좋아하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여, 그의 뜻을 맞춰 줍니다. 이렇게 하면 교만한 마음이 생겨 마음대로 나쁜 짓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적국의 군주가 사랑하는 신하에게 가까이 다가가 적국의 군주와 신하를 이간질시켜 나라의 권위가 나눠지게 만듭니다. 3) 적국의 군주를 가까이 섬기는 측근들을 비밀리에 매수하여 매우 깊은 걱정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4) 적국의 군주에게 음탕한 짓을 즐기도록 부추겨 주고 정욕을 더욱 키워줍니다. 그러면 적국은 싸울 것도 없이 스스로 간사하고 사악한 기운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5) 적국의 충신은 후하게 예우하고, 적국의 군주에게는 야박하게 예물을 보냅니다. 그러면 적국의 군주는 충신을 의심하게 될 것입니다. 6) 적국의 조정에 있는 신하를 매수하고 변방의 외직에 있는 신하를 이간질시킵니다. 7) 적국의 군주의 마음을 꼼짝 못 하게 사로잡도록 엄청난 뇌물을 바치고, 곁에서 모시는 측근 신하를 매수하여 비밀리에 이익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8) 적국의 신하에 나라의 중요한 보물을 바쳐 친교를 맺고 그것을 빌미로 모략을 꾀합니다. 이를 이중의 친교라고 합니다. 9) 적국의 군주에게 훌륭하다고 치켜세워서 허영심을 품게 하고, 그가 곤란한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줍니다. 그러면 그 군주는 정치를 거뜰어보지 않고 게으름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10) 몸을 낮추어 적을 섬겨서 믿음을 얻고 적의 군주의 마음까지 손에 넣습니다. 11) 교묘한 방법으로 적국의 군주를 에워싸서 가려 버립니다. 은밀하게 적의 영웅 호걸을 포섭합니다. 12) 적국에 분란을 일으키는 신하를 길러서 군주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 빼어난 미녀와 음란한 음악을 바쳐 군주의 의지를 뒤흔들며, 품종이 좋은 개나 말 따위의 애완 동물을 보내어 군주의 몸을 지키게 하고, 때로는 큰 권세를 부리도록 만들어 자기 자만에 빠지게 합니다.
주무왕은 강태공을 만남으로써 7백년이 넘는 주나라를 건국하고 유지하게 되었다. 후대에 공자는 주나라의 모든 문화와 진수를 뽑아서 유학의 기본으로 삼았다. 그 후 한무제는 동중서를 만나 유학을 국학으로 삼고, 중화사상의 뼈대를 만들게 하였다. 후대의 손자병법이나 제갈량의 병법서의 무도는 모두 육도삼략의 이치에 근본을 삼고 있다. 과연 현대 정보화 사회에도 고대의 이런 정보전이나 기만술은 어떻게 변형하여 사용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