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를 가로막는 자, 누구인가?
저자는 이 장에서 먼저 중국의 오래된 격언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새 사람이 웃으면 옛사람은 운다." 이 말의 뜻을 그는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 뒤에는 종종 재수 나쁜 사람이 있다는 의미로 풀이한다. 기존의 태자가 폐위되고 유철이 태자가 된 사건에 가장 불행한 자는 바로 폐태자 유영이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이 어머니의 실수로 그런 처지로 몰린 것이다.
그는 임강왕으로 격하된 이후 2년이 지났을 때 자신의 궁전을 조묘(조상을 제사 지내는 사당)까지 확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묘의 담장에 속한 땅 일부를 침범했을 뿐인데, 유제(황제와 제후 등에게 복식과 예의 등에 관련하여 엄격한 제한을 규정한 제도)를 범한 죄를 지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 즉시 황제에게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 죄를 내려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갔다.
유영은 장안으로 들어가려든 날, 수레가 부서지는 불길한 사고를 당해서 직접 중위부(수도의 치안을 담당하는 부대)의 수장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당시 중위(우리식으로 말하면 수도경비사령관)인 흑리인 질도는 유영의 탄원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를 하옥시켰다. 중위와 언쟁을 벌이던 유영은 스승이 보낸 필기구를 들고 부황에게 편지를 쓰고 자살을 한다.
과연 이 죽음은 자살인가? 아니면 타살인가? 아니면 강요된 자살 즉 타살적 자살인가? 이 죽음에 대한 가장 강렬한 반응은 그의 할머니 두태후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즉시 대노하고 질도를 처형하라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경제는 슬퍼하지도 놀라지도 않고 단지 질도를 마지못해 면직시키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몇 개월 후 질도의 집에 큰 선물을 하사하고, 안문군의 태수로 봉했다.
나중에 두태후는 질도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마침내 그를 죽이고 만다. 저자는 질도가 경제의 바둑돌에 불가하였다고 평가한다. 그는 막후의 흉수로 경제가주모자라고 추측한다. 그런 이유를 왕뤼친은 다음과 같이 든다. 한 가지 이유는 황제는 늘 폐태자가 현재 태자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 유영이 일개 왕의 분수를 넘어선 것을 이유로 폐태자를 따르는 무리를 척결하기 위함이었다.
경제와 그의 신하 주아부와 두영은 조정의 대사에 관한 결정을 할 때 항상 같은 의견을 내었다고 한다. 두영은 유영의 사부였기에 태자를 폐위시키는 일에는 주아부와 함께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아마 경제는 이런 공신 두 대신이 폐태자당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반대를 할수록 오히려 경제는 유영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 것이다.
유영은 자살했고 주아부와 두영은 경제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하게 될 것이며, 유철에게는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는 태자에서 한무제로 등극하는 데 9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가 만난 험난한 급류는 어떤 정치적 상황이었을까? 권력의 중심을 향한 유철의 본격적 행로는 이제 시작된다.
우리가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 어떤 정치인을 유철과 대비해 보면 과연 이런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전진하는 정치인들이 누구인가가 보일 것이다. 만약 권력의 중심에 들어선 자가 한무제와 같은 큰 그림을 가지지 않고 단지 권력욕에만 사로잡힌 자라면 한국의 미래는 암담할 것이다.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팬덤정치를 끝낼 때가되지 않았는가? 과연 서구식 대의 민주주의와 소수의 나라에서만 채택되는 대통령제는 늘 전쟁의 위기 상황인 분단 한국에서 양립 가능한 제도일까? 국민들 사이에서 대한한국의 미래 정치 제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토론이 시작될 때이다. 도대체 한국의 정치-경제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