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의 영원
장덕전에 가기 전, 난창에서 먼저 들른 곳은 중국 도교의 발상지로 알려진 용호산(龍虎山)이었다. 이 산은 <작은 계림>으로 불릴 정도로 낮은 산봉우리들 사이로 시내 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중국의 산수화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전에 우린 계림을 가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계림보다 규모가 작아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못하였으나, 배를 타고 유람하는 계림과 달리 이곳은 뗏목을 타고 하류로 내려가는 인상적인 코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관광객을 위하여 과거 여기에서 시행되던 독특한 장례문화가 재현되었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의 시신을 절벽의 구멍으로 올려서 매장하는 소위 승관 의식이었다. 장생불사의 신선을 꿈꾸던 도인들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절벽의 틈에 난 구멍에 자신의 시신을 안치해 달라고 부탁했는지, 아니면 묻을 만한 묘터가 그렇게 풍부하지 못해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의식(儀式)을 보고서는 작은 산봉우리의 절벽들이 더 이상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죽음이 더 낫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지구는 산 자도 죽은 자도 만원 버스와 같이 더 태울 수 없을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 가장 간소한 장례는 병원에 자기 시신을 기증하는 것이다. 그러면 병원에서 알아서 사용할 만큼 사용하고 화장하여 유족에게 연락한다.
나이가 들면 두 가지 이유에서 부고를 많이 접하게 된다. 첫째 이유는 누구이든 나이 든 만큼 그의 부모님들이나 연장자들의 별세가 잦아진다. 두 번째 이유는 고령화 사회라 해도 60세 혹은 70세를 넘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꽤 많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주변에서 신생아 탄생의 소식이 적게 전해진다면 이것이 바로 인구감소의 신호이다. 인구학자들은 대략 90억 명이 지구란 행성에 탑승할 최대 인원이라고 예측한다. 2025년 기준으로 약 82억 명의 인류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개별 국가적으로 인구감소는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나쁜 소식은 아니다.
가을이 오면 나뭇잎은 나무를 떠날 준비를 한다. 농부는 열매를 따서 저장하거나, 가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태워버린다. 과연 내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열매란 것이 있을까? 지금부터 10년 혹은 20년을 더 산다고 계산해 봐도 실제로 나에게나 타인에게나 의미 있는 어떤 것을 만들어낼 시간은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다. 게으른 자는 황혼에 바쁘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결과에 급급하기보다도 매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빛나는 순간들이 모여서 구슬처럼 꿰어질 때 그 삶은 열두 보석 목걸이처럼 함께 빛날 것이다.
“하루만 살자.’ 병이 발견된 이후 내 인생의 좌우명이 된 말이다. 이제 이 말은 ‘지금 여기’로 바뀌었다. 오늘 지금 여기가 나에게 의미 있는 순간일 때만, 지나간 모든 순간의 지금 여기도 함께 빛이 난다. 일행은 이제 용호산이란 지극히 평온한 산수를 떠나 그 당시엔 외국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 숨겨진 비경인 삼청산으로 향했다. 사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은 안휘성에 위치한 황산이다. 그 부근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정작 황산에 가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장가계와 계림에 가본 이후에 어떤 산을 봐도 그렇게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삼청산에 갈 때도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로마를 보고 파리와 런던을 보고 나면 사실 유럽의 소소한 도시는 그다지 대단한 곳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너무 큰 것에 매료되면, 소소한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 우리가 수없이 보아도 놓치고 있는 것들은 바로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생각을 비우려면 아주 간단하다. 눈을 감고 무엇이 들리는지 그리고 내 몸 안에 어떤 근육과 세포가 활동하는 지를 들여다보면 나의 시선을 아주 미세한 것들에게서 반응하는 내 몸의 생체 신호들을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항상 존재함’을 만나게 된다.
가을이 깊어지면 단풍은 더 진해진다. 노년은 익어가는 시절이다. 그런데 노년의 삶이 무료하거나 단조로워지면 그것은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남은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자. 늙은 다윗은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으며, 주자는 “일촌광음불가경( 一寸光陰不可輕: 한순간도 가볍게 생각 말라)”을 충고했다. 장수의 비결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가치 있는 목적을 향하여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이다. 삼청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길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만만한 여정이 아니었다. 삼청산은 도교의 세 신선인 삼청(옥청, 성청, 태청)이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행 중간중간 일행은 이 봉우리 각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우람한 산봉우리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은, 우리의 얼굴 특히 학생들과 아이의 얼굴이었다. 당시 라이카 렌즈가 들어간 소형 파나소닉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갔는데, 실제 사진의 화질을 보니 정말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자연과 인간의 빛들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 이후 라이카 사진기를 구매하려 했지만, 여전히 고가였던 이유와 더불어 핸드폰의 사진 기능이 발달하는 바람에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그 카메라는 그렇게 한 번 사용되고 어딘가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도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져도 뭔가 빛나고 의미 있으며 또 누구에겐가는 정말 아름다운 순간들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CT와 MRI 검사를 병행하면서 일주일 후 결과를 보고 다음 검사 일자를 예약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나에겐 남은 모든 시간이 오늘이나 지금의 시점으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공간에 속한 것으로 보았고, 게다가 상대적 시공간마저 일종의 부드러운 카펫처럼 행성의 중력에 따라 굴곡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정한 공간이 곡면이라면 빛의 속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이 느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인생의 굴곡이 심한 순간을 중심으로 체험된 시간은 느려지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길어지기도 한 것은 반드시 심리적 체험에서 벌어지는 현상만은 아니다.
”몸 상태는 오늘 어때?, 이렇게 오랫동안 검사받는 것도 정말이지 너무 힘들지 않아? “ 기차를 탄 즉시 아내는 안쓰러운 듯 자주 하던 말을 불쑥 던졌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그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차례였다. ”긴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느니, 이제는 약간 고통스럽더라도 뭔가 진정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어, 요즘 교환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어, 남은 시간의 교환가치“ 아내는 멍하게 내 말을 듣더니 이내 쓴소리를 했다. ”또 이상한 말을 하네, 힘들면 힘들다고 해, 둘이 짊어지면 반이 되잖아. “
사실 늙고 병드는 것도 서러운데 그것들을 혼자 감당한다면 얼마나 힘들까? 고독사가 자살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하다. 집 뒷산에 난 숲길을 걸어가다 보면 가끔 병이 들거나 늙어서 말라가는 나무를 보게 된다. 사유지인 산은 벌목을 자주 하지 않고 숲의 나무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그 나무는 말라 썩게 된다. 하지만 혼자 사는 노인과 달리 최소한 그 나무는 외롭게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싱싱하게 자랐을 때 차라리 벌목을 당해서 가구로 변신하거나 장식품으로 가공되었다면 훨씬 가치 있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숲 속에서 서서히 말라가면서 옆에서 같이 자라나고 숲이 된 친구들의 품 안에서 고요하게 대지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애처롭지 않았다.
노인들은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지면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근대화 이후 고향 혹은 그곳에 남아 있는 친지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결국 요양원으로 가거나 호스피스병원으로 가게 된다. 왜 인간의 두뇌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진화되었을까? 자신의 말로를 미리 알고 고민하는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하다. 만약 시간이 연속적이면서도 동시에 불연속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이런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연속적인 시간 안에 불연속적인 무수한 순간들이 밤하늘에 빛나는 많은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당신은 ‘영원한 현재’ 안으로 즉시 들어갈 행운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CT와 MRI는 인간이 현미경을 통해 눈의 시각으로 사물의 내부 구조를 관찰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CT는 내면의 장기를 X-선을 이용한 단층촬영으로 3차원 입체 영상을 얻어서 그 상태를 정밀하게 판독한다. MRI는 자석으로 만들어진 둥근 통에 누운 인체의 특정 부위에 고주파를 쏘아 여기에서 나온 반응을 디지털 정보로 만들어 영상화한다. 굳이 인체를 해부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구조를 보게 되는 것이다. 조기에 종양을 발견하면 생존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누구에겐가 남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길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것이 문제이다.
전쟁과도 같은 중증 외상을 경험한 사람은 비록 남은 시간이 길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해야만 하는 장벽이 남아 있다. 유명 병원에는 그런 환자를 위한 상담센터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일반 정신의학과에서도 치료를 위한 여러 방법을 제공한다.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시간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첫사랑의 시간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첫사랑에 빠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배경이 된 공간은 희미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도 빛나는 청춘의 눈부심에 가려서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 한용운은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사라져 가는 첫사랑의 느낌을 노래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첫 사람의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만난 사람 중 누군가는 먼저 떠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떠난다. 죽음으로 인해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고대 인도인들이 그리고 이집트인들이 윤회 이야기를 창작하고 믿은 것은 이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것 같다. 윤회는 일종의 패자부활전과 같다. 이번 생에 안되면 다음 생에 되게 하자. 윤회의 이야기는 영혼 불멸의 이야기나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보다 아름답다. 윤회가 있다면 난 죽으면 나의 집 앞마당에 매년 올라오는 쑥으로 살고 싶다. 적어도 아내와 아이와 그의 가족이 그 집에 살 때까지는 부드러운 쑥의 순이 되어서 봄의 의 밥상에 올라가고 싶다. 물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이번 생에서 배웠다. 다음 생이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자들이 전파 현미경으로 발견한 원자 내부의 세계가 불연속적 입자로 보인 것처럼, 나는 시간의 불연속성과 마음의 초월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벚꽃 나무의 꽃잎들은 봄이 오면 연속적으로 피지만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거의 동시에 떨어진다. 일 년 중에 벚꽃의 화려한 순간은 불과 일주일 정도이다. 그래도 봄이면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봄마다 벚꽃 터널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의 마음에도 그 꽃잎들이 휘날린다. 모든 시간이 응축되면 벚꽃의 시간이 된다. 시인은 그 순간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원한 지금(eternal now)’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