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매 순간 빛난다 9

새로운 내러티브

by 박종규

수술과 검사 그리고 치료의 과정에서 나는 그로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과거 여행의 즐거운 감각들 기억해내었다. 기억의 바다 안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해산물도 심지어 폐기물도 들어있고 반대로 진주조개와 같은 보물도 때론 맛있는 물고기가 떼로 잡힐 수도 있다. 심리적 치유를 위해서는 아직 극복하기 어려운 괴로운 추억은 즉시 바다에 던져버리고 아름답고 영롱한 추억은 현재 의식으로 재현하는 것이다. 부정적 트라우마는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바꾸어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드는 것이다.


닝보에서 마지막 종착지인 온주(윈저우)로 간 일행은 학생의 친구 한 명이 대접하는 점심 식사로 여정을 시작했다. 온주는 남송 시대 중국의 대외 무역항이 되어 해상무역이 아주 번성한 지역이었다. 개방 이후에도 온주의 상인들은 상해의 경제를 장악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는 중국 전체 경제계에서 온주 상인(경제인)의 우수한 상술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제자의 친구와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그들이 다른 지역의 중국인들 보다 더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효율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지만 아주 검소했고 수수한 차림을 했으며 일반 중국 부자들에게서 보이는 허세가 거의 없었다.

허허실실(虛虛實實)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인이 바로 온주 상인의 후예인 이 청년이었다. 한국인들은 명실상부(名實相符) 중에 명을 먼저 택하나, 중국인들은 실을 먼저 택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제까지 내 인생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살았을까? 헛된 명분을 추구하면서 살았을까? 아니면 그나마 실리를 챙기면서 살았을까? 온주의 해안가를 산책하면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다.

당시 연구실 모임에 나오는 중국인 학생들 가운데 강서성(장시성) 출신인 형제가 저장성 여행 이야기를 듣고 다음 방학에는 반드시 자기 고향으로 가자고 권유했다. 그들은 강서성 성도인 남창(난창)에서 공무원인 부모님들 밑에서 비교적 어려움 없이 자란 아이들이었다. 초창기에 온 중국 학생들은 그 이후의 학생들과 달리 공부도 잘했고,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최고위급 공직자 자녀와 비교해서 단지 물가와 학비 문제로 한국행을 택한 중간 관리급 공직자 자녀들이 많았다. 대부분 학생이 경영학과에 몰렸고 일부는 컴퓨터공학과로 입학하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두 전공만큼은 한국의 대학들이 중국의 유수 대학을 앞서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중남부에 있는 강서성은 당시에는 한국과 그다지 교류가 없었고, 그 성의 수도인 남창 역시 그렇게 알려진 도시가 아니었다. 일 년 후 겨울 방학에 우리 가족은 그들과 함께 약 일주일 정도 강서성 여행을 시작하였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다 그렇듯이 계획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과연 내가 이곳을 오리라고 언제 한번 생각은 했던가? 아이는 일 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고, 아내는 오랜만에 다시 오는 중국에 대한 기대로 기분이 고조되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군주와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은 것)의 문화는 교권이 점점 하락해가는 한국과 달리 중국 내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중국인들의 꽌시(关系: 개인 간의 인연을 통해 맺어진 관계) 문화는 외부인의 접대 시에 가장 잘 나타나는데 그들은 항상 누군가 귀빈을 고급 식당에서 접대할 때 소위 꽌시 목록에 있는 주요 사람들을 초청해서 인맥을 더 두텁게 한다. 꽌시는 마치 뿌리 식물의 생존 구조와 비슷하다. 고구마나 감자와 같은 식물의 열매는 지표 밖으로 드러난 나무 식물과 달리 지층 안에서 함께 열린다.


고구마나 감자를 캐본 사람은 알겠지만, 고구마 잎과 줄기를 캐보면 그 줄기에 따라 군데군데 열매는 마치 포도송이처럼 무리 지어 열린 것을 볼 수 있다. 중국 사회는 표면적으로 보면 피라미드형 나무와 같은 통치 구조를 가지나, 이면적으로는 뿌리 식물과 같은 꽌시로 연결되어 있다. 이 꽌시는 접대 시에 드러난다. 학부모가 초청한 식사 자리에는 그들이 맺고 있는 각종 집단의 주요 인물들이 함께 초청되는데 그 가운데 초대된 공직자의 직함을 보면 학부모의 사회적 위치를 가름할 수 있다.

들뢰즈란 프랑스 철학자는 그의 동료와 함께 전통적 위계적 질서를 반영하는 나무 모델의 사유와 반대로 리좀(Rhizome: 땅속에 있으면서 땅 위로 줄기를 분지시키거나, 땅속에서 잎만을 땅 위로 나게 하는 땅속줄기)을 모델로 한 새로운 사유를 21세기의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과연 서구 중심적 사고에 익숙한 그는 중국인들에게 오래전부터 이런 사유가 일상화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중국인들은 나무가 위로 뻗어가는 형태와 뿌리가 지층으로 번성해가는 모순에 익숙하다. 지금의 한국인에게 ‘당신은 이중적인 인간이다’라는 말이 일종의 욕으로 들리지만, 중국인들은 이런 이중성을 음양의 논리로 모든 사물이 가진 대립적인 측면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중화사상에서 중화사상은 한족 중심의 중화(中華)사상 이전에 유교의 핵심인 중화(中和)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교의 문화를 예악(禮樂)에 기초한 문화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공자는 인간은 예절 교육을 통해서 중(中)에 이르고, 음악 교육을 통해서 화(和)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내부적으로는 중화(中和)를 강조하면서도 외부적으로는 중화(中華)를 표방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런 현상 역시 위로 솟은 나무와 옆으로 퍼지는 뿌리를 동시에 고려하는 중국 특유의 사유에 기인한다.

난창에서 학생들이 먼저 안내한 곳은 중국 도자기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장덕전(장더전)이라는 도시였다. 한나라 시대부터 도자기 생산을 시작한 이곳은 송나라 시대에 청화 백자란 독특한 형태의 도자기를 만들어내면서 명나라 이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도자기는 흰 자기에 붓으로 코발트 재료의 청색 그림을 그려서 구운 것으로 아마 한국인들은 조선의 청화 백자를 연상하면 쉬울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청 홍 황 백 흑(푸른색, 붉은색, 금색, 백색, 검은색)이라는 다섯 가지 색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오행 사상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청색은 나무에 해당하며 동쪽을 의미하고 만물이 상생하는 봄의 기운을 표현한다. 그리고 흰색은 쇠에 해당하며 서쪽을 의미하고 순결 혹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나무와 쇠는 상극(相剋)이나 이것을 한 도자기에 함께 조화를 이루게 함으로써 중화에 도달하게 하는 상태를 목표로 하였을 것이다. 그곳의 여러 도자기 공장을 방문한 아내는 과거 우리가 이탈리아 베네치아시의 무라노섬에 있는 유리 공예품 공장을 가본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여길 보니 과거 무라노의 유리 공예품 공장에서 본 화덕이 생각나지 않아?” “유리로 만드는 과정이든 흙으로 만드는 과정이든, 작품을 위해선 뜨거운 열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네, 찬란한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재료나 장인이나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야, 아마 학문이나 예술이나 창작의 과정은 다 비슷한 것 같아.” “당신 또 이론적으로 접근하네, 그냥 뭐든지 보고 즐기면 되지 항상 뭘 봐도 분석하는 습관은 여전하네?”


아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는 학문의 길에 들어서면서 예술작품이든 심지어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든, 그 내용에 바로 몰입하지 않고 그것을 이루는 구조와 과정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체험 자체를 분석하는 골치 아픈 직업병이 생겼다. 모든 인간이 만든 창작물은 재료만 다르지만, 창작의 목적은 일종의 구조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기본 구조는 감상자에게 감각적 쾌적함을 부여하거나 공감으로 인한 카타르시스를 목표로 한다.

컬트적이고 기괴한 유형의 예술이 현대에 자주 등장하지만, 기형적인 것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다. 물론 뭉크의 작품을 보고 고전적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않지만,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그러진 초상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러나 공감을 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무라노 공장의 유리 공예품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베네치아역으로 돌아오면서 역 가까이에 있는 선물 가게에서 적당한 가격으로 파란색의 유리 물고기를 샀다. 장덕전에서 나는 피보다 짙은 붉은빛의 호리병을 샀다.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 당시에 내 몸의 피가 줄어가는 것을 신경세포가 미리 감지했을지도 모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