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위기와 공존의 의미
5년이 넘어가던 해에 담당의는 마지막 MRI 검사에서 간에 이상한 조직이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재발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아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늘 그런 소식에 대비하는 마음의 탄력을 높여나갔으나 아내는 그렇지 못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물었다. “ 의사의 대답은 무척 애매했다. ”지금의 영상으로는 완전한 판독이 불가능하니, 안전을 위해서 복부 절개를 통해 조직을 채취하고 간의 반을 잘라내는 것이 안전하다는 협진 의사들의 의견입니다.” “그러면 반쪽 간으로 살아야 하나요?” “간은 재생이 가능한 장기이니 절제술을 받은 경우, 보통 6개월이 지나면 전체 간 부피의 약 80% 이상, 기능은 거의 100% 회복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듣고 바로 수술을 할 수는 없었다.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에 남은 인생을 걸 수는 없었다. 아는 의사들의 마지막 조언은 수도권 종합병원으로 자료를 옮겨가서 다시 재진을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검사 자료를 받아서 서울의 S 병원 암센터로 다시 갔다. 그곳은 마치 공항 대기실처럼 생긴 건물 병동 전체에 전국에서 올라온 환자들로 거의 틈이 없을 정도였다. “천국으로 가는 마지막 대기실 같네” 내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자, 아내는 짜증을 내며 앞으로 제발 죽는다는 소리는 다시 하지 말라고 경고를 던졌다. 투명한 벽으로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건물 안에 보호자와 환자 그리고 의사와 간호사와 직원들이 섞여 있어서, 환자들 다수의 얼굴빛인 잿빛 분위기보다는 마치 온실 안에 병든 식물들을 자르거나 붙이는 연구실처럼 보였다.
담당 의사의 대기실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가운데 면담 후 그들의 밝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빛만으로도 환자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노년층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생각보다 젊은 층도 꽤 있는 것을 보니 그나마 짧은 우리 인생에 평균보다 더 짧은 인생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제발 젊은 그들에게 희망을!’ 초원의 일 년생 풀은 지극히 짧은 주기를 가지지만 사는 동안 엄청난 씨앗을 뿌리고 죽어간다. 가끔 인간 가운데도 요절한 천재라 불리는 특이한 사람들은 아주 젊은 나이에 죽지만 큰 흔적을 남기고 간다. 만약 그들에게 그런 흔적보다 좀 더 긴 삶을 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쪽을 택할까? 내가 보기에 정말 천재라면 사는 쪽을 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그 흔적도 언젠가 지워질 것인데, 보장만 된다면 더 살면서 솔직하게 살 것이다.
S 병원의 검사 시스템은 24시간 작동한다. CT든 MRI이든 가장 빠른 검사를 받으려면 심지어 새벽 1시에서 5시 사이에 예약된 검사도 감수해야 한다. 기다리는 환자가 많기에 의료용 검사 기계는 쉴 틈이 없었고, 담당 간호사와 관리 기사 역시 3교대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환자가 많기에 의료용 검사 기계는 쉴 틈이 없었고, 담당 간호사와 관리 기사 역시 3교대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첫 번째 진료 때 담당 의사는 3개월 이후 몇 가지 검사를 하자고 했다. S 병원의 검사 시스템은 24시간 작동한다.
첫 번째 진료 때 담당 의사는 3개월 이후 몇 가지 검사를 하자고 했다. 지정한 예약일에는 새벽 2:30분경에만 두 가지 검사가 가능했다. 검사 당일 전날에 인근의 호텔에 방을 지정하고 다시 일주일 후에 결과를 보러 다시 병원에 가는 긴 여정이 그 후 6개월마다 정상 판정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SRT가 생겨서 수서역까지 1시간 반 정도면 도착한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세계 각지의 도시를 여행했듯이 이번엔 서울이란 도시로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 같아.” 앞일을 걱정하는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온 말이었다. 어차피 유목민이었던 우리 조상들 대부분도 길 위에서 죽지 않았는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는 사람은 매 순간 스쳐 가는 구름과 바람의 시원함과 햇빛과 별빛의 찬란함을 놓쳐버리기 쉬운 법이다.
새벽에 가는 병동은 인적이 거의 없고 형광등이 밝게 켜진 넓은 건물에 각 검사실의 위치와 방향을 표시하는 전광판이나 지시선만 선명하게 보이는 아주 낯선 공간이었다. 어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곳은 마치 방금 죽은 사람들이 저세상으로 가는 일종의 대기실과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일정을 반복하다 보면 곧 그것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처음 새벽녘에 큰 건물 사이로 연결된 통로를 따라 인적이 거의 없는 길들을 헤매다 보면 사후의 세상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어질 것이다. 아마 내가 이 생애 혹은 저 생애라는 윤회적 사고를 결정적으로 떨쳐버린 것은 새벽의 검진을 경험한 이유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사고사가 아닌 다음에야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죽음에 맞이한다고 해도 종말적 단계가 항상 되풀이된다면 그 이상 비극적 삶은 없다. 모든 인간은 시한부 삶을 산다.
중립적인 표현을 쓴다면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산다. 50살을 사나, 100살을 사나 결국 죽는다. 죽음은 생각하기 싫은 단어이지만 그렇다고 죽음에 바탕을 둔 불안이라는 정서는 피할 수 없다. 공포는 대상이 있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無)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그렇다. 어떤 철학자가 한 말이지만 그렇게 새로운 사유는 아니다. 단지 그 문제를 그가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풀은 마르고 꽃은 진다. 그러나 그런 개체는 자기의식이 없기에 고민하지 않고 순리대로 사라졌다가 일년초가 아닌 이상 다시 땅에서 솟아난다. 사람은 특히 개별자로서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세나 윤회의 이야기에 매달린다. 어떤 공상과학자는 뇌의 모든 기억을 외장 하드에 모두 옮겨놓았다가 언젠가 다시 자기 인체의 복제술이 가능해지면 그 인체의 뇌에 기억을 다시 옮겨가서 과거 황제들이 추구했던 영생을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다고 해도 그는 매 생애에 마지막이란 허무 앞에 서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다시 한 해가 가고 여러 해가 쏜 살처럼 지나갔다. 매번, 검사를 받고 다음 주에 다시 SRT를 타고 결과를 보러 가는 일도 점점 익숙해졌다. 담당 의사 진료실 앞에 줄지어 기다리는 환자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더 잦아지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질병의 극복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물론 다시 못 보는 얼굴도 때론 절망적 얼굴들도 많이 보였지만 마치 수용소 안의 수인들이 함께 살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처형장에도 혼자 가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가게 되면 두려움도 확실히 적어질 것이다. 적어도 이런 기분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인간은 일종의 공동 연대감을 가질 때 외로움이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