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매 순간 빛난다 11

삶이 빛나는 순간

by 박종규

삼청산에서 내려온 일행은 높은 산의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부르튼 발을 족욕이라는 중국 특유의 치유 방식으로 푼 다음 산 아래의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아마 중국을 여행한 사람들은 누구나 족욕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은 가장 직접적으로 외부와 접촉하는 기관이라서 모든 감각이 발달해 있다. 투병 중에 나는 양방과 한방에 모두 전문가인 친구에게 배운 수지침 요법과 자석을 통한 경혈 요법을 병행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항암으로 인한 부작용 치유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금 더 살 사람은 그렇게 사는 길로 가고, 조금 일찍 죽을 사람은 그렇게 죽을 길로 간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사면이 막힌 길목에서도 어딘가 소슬바람이 불어오는 빈틈은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모든 길이 막혀있다 하더라도 머리 위로 하늘이 보인다면 최소한 희망은 있다. 물리적 하늘이 아니라 뭔가 다른 차원에서 당신의 부정적 환경을 긍정의 기회로 바꿀 신비한 신호가 올지도 모른다. 마치 메마른 들 위 오랜 가뭄 끝에 어느 날엔가 단비가 내리듯이. 나는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생과 사의 여러 고비에서 살아난 경험은 이성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다. 봄이면 우리 집 정원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름 모를 야생화가 피어난다. 대부분 야생화의 꽃잎은 아주 작은 꽃망울로 시작하는데, 소규모의 군락을 이루며 함빡 피었다가 사라진다.

S 병원을 가는 주기가 길어지던 어느 날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 분야의 전문의가 모여서 검토한 결론은 간에 보이는 희미한 점은 종양이 아니라 일종의 색소 변이로 판정되었어요. 이제 더 이상 올라오지 마시고, 의료공단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만 정기적으로 받으세요. “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우리의 마음이 즐겁지도 그렇다고 감격스럽지도 않았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우리는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서로 이야기했다.


아내도 그 긴 여정 속에서 미래를 걱정하거나, 과거를 후회하는 마음을 비우게 되었다. 아마 누구에겐 가는 무척 짧지만, 같은 시간이 다른 사람에겐 무척 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내도 깨달았을 것이다. S 병원 설립자도 죽음을 앞두고 누군가 자기 남은 생을 반년만 연장해 준다면 재산의 반을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도 반년이 주어지면 기업경영 이상의 가치 있는 삶에 그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죽음의 목전에서 24개의 철학적, 종교적 질문을 가까운 성직자에게 질문했고 후에 다른 성직자가 그 답들을 묶어 책으로 내었다.

사실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지 알고 그것에 매진하는 삶은 모두에게 그렇게 쉽지 않다. 사람들 대부분은 주어진 삶에 적응하고 그날그날 살아가며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며 건강을 관리하거나 연금저축이나 건강보험을 드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죽음이란 낯설고 기이한 소식이 항상 우리의 목전에 있다는 절실한 경험을 한 사람은 삶의 방식이 통째로 바뀔 수 있다. 한국전쟁 전 가난한 소작농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회수하는 데 아주 가혹한 지주가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터지자 북한군이 점령한 그 지역에서 소작농들은 이 지주를 묶어서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전쟁이 끝나자 전 재산을 빈민구제 사업에 쏟으면서 남은 생을 살았다고 한다. 착취자로 살았던 그가 기부자로 살게 된 것도 죽음에 직면한 경험 덕분이었다. 죽음은 우리에게 가장 나쁘고 시급한 소식이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어쩌면 자기 삶에 대한 최대의 전환 기회이기도 하다. 만약 내게 몇 달만의 생이 남았다면 <버킷 리스트>란 영화처럼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대개의 버킷 리스트는 인간 욕망 구조의 단편을 수평적으로 진열한다. 실제로 그것을 해봐도 만족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다 안다. 일급호텔에서 투숙하거나, 유명 관광지에서 마음껏 놀아보거나, 스카이다이빙이나 스쿠버다이빙을 해도 우리의 신체는 그런 새로운 충격에 금방 내성이 생겨버린다. 물론 자신의 생에 한 번쯤 원하던 경험을 하고, 죽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타인에게 해롭지만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게 그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있냐 하는 것이다. 돈을 어떤 경험으로 교환하는 것은 돈 이상의 가치를 획득하기 위함이다.


많은 경비를 들여 북극의 오로라를 보러 가는 사람에게 밤하늘을 휘감은 오로라의 광채 안에 사로잡히는 경험은 반드시 해봐야 할 여행일지도 모른다. 나도 캐나다로 유학 간 아이에게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함께 오로라를 보러 더 북쪽으로 가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나에게 매일 밤하늘은 뉴질랜드 남섬 테카포 호수에서 본 남반구의 수많은 별 무리와 중국 강서성 삼청산 아래에서 본 북반부의 놀라운 은하수와 성운들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말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비록 도시의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별 무리가 밤하늘을 수놓고 있기 때문이다.

밤이 있기에 별은 더욱 빛이 난다. 고난이 있기에 삶은 더욱 고결해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기에 우리는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다. 가치와 가치를 교환하다 보면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다가가게 된다. 우리는 제한된 시간 내에서 영원한 것을 찾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주어진 것은, 영원을 더 영원으로 빛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그리고 그 영원은 우리가 시간을 초월함으로써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근원을 이루는 영원 자체가 시간 속으로 침투된 것을 마치 극지에 빛나는 오로라처럼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삶은 매 순간 빛난다. (이 글은 필자의 자전적 에세이 혹은 소설이며, 여기에 올려진 사진 이외의 이미지들은 Microsoft Copilot를 이용하여 직접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에세이의 목적은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내러티브 치료, 즉 사건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함입니다. 특히 중병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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