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철학 8: 미션

정의와 사랑: 미션

by 박종규

1. 정치와 종교


공자는 정치(政治)의 政을 正이라고 규정한다. 즉 통치의 이상은 정의의 구현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반면에 종교의 본질은 박애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정치와 종교는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다. 그러나 많은 세기 동안 정치와 종교는 서로의 목적을 위해 통합되기도 야합하기도 하였다.


서양의 중세로 대표되는 신정정치의 시대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통합된 시대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은 곧 종교가 정치와 통합되는 길을 열었으며 그 후 약 1000년 동안 로마 가톨릭 혹은 동방 정교와 같은 정치-종교가 유럽을 지배하였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난 신교 역시 독일 루터 국교회나 영국 성공회와 같은 정치-종교의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의 기타 국가에서의 연이은 종교개혁은 결국 대다수 국가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달성하였으며 비로소 종교는 종교의 길을, 정치는 정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국은 종교적 박해 즉 정치-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이주한 청교도들이 세운 국가이다. 그러므로 대표적 신교국가인 미국에서는 제정분리가 엄격하게 지켜졌으며 종교는 어떤 정치적 간섭도 받지 않고 마찬가지로 정치 역시 종교와 분리되었기에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북미의 신교와 남미의 구교


신교 국가의 식민지였던 북미와 달리 남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라는 구교 국가의 식민지였기에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미치고 있었던 지역이었다. 영화 ‘미션’의 배경은 바로 이러한 남미 지역에서 벌어진 정치적 종교적 갈등 상황이었다. 18세기에 가톨릭은 주로 라틴계 국가(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국가종교였다. 그러나 중세와 달리 교황의 영향력은 개별 국가의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톨릭 내의 가장 강력한 선교단체인 제수이트 교단의 신부들은 군대에 비유하면 특공대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오지에 파견되어 가톨릭을 선교하는 임무를 맡았기에 언제라도 순교할 각오를 가지고 있는 신부와 수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영화의 초반부에 십자가에 매달려서 폭포에 떨어져 순교하는 예수회 신부의 순교 장면은 이웃 혹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 예수의 십자가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십자가는 정의를 위한 죽음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죽음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공동체는 정의의 토대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자기희생적 사랑 위에 건축된 공동체이다. 교회는 남의 피를 흘려서 만든 사회가 아니라 자기의 피를 흘려서 만든 사회이다. 이런 점에서 일반적인 정치적 공동체와 기독교의 교회 공동체는 전혀 다르다.



3.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 수사


가브리엘 신부는 앞서 순교한 신부들과 마찬가지로 순교를 각오하고 오지의 밀림으로 선교를 떠난다. 가브리엘 신부가 택한 순교의 일차적 방법은 바로 오보에였다. 영화음악 사상 가장 아름다운 음악 중 하나로 불릴 만큼 감동적인 음악이 바로 가브리엘 신부가 아마존 밀림 속에서 연주하는 오보에 소리이다.

선교는 만약 어떤 이데올로기의 일방적 강요라면 즉 남미인의 서구인화라면 선교의 본질에서 어긋난 것이다. 그러나 선교의 목적이 자기희생에 바탕을 둔 신성한 사랑의 전파라면 선교의 방법이나 수단은 훨씬 자유로울 것이다. 가브리엘의 선교는 선교의 본질에 충실히 접근한다. 가브리엘은 어떤 우월감을 가지고 성경을 들고 밀림을 들어간 것이 아니라 박애의 마음을 품고 오보에를 들고 인디오들에게 접근한 것이다.


로드리고는 노예상인으로서 자기 이익만을 위해 인디오를 노예로 팔던 장사치였다. 그러나 부인과 불륜을 저지르던 동생을 살해한 자책감에 수도원에서 수사로 고행의 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로드리고에게 수사의 길은 예수의 십자가를 발견하여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택한 길이 아니라 스스로 저지른 악행에 대한 참회의 길로 택한 것이다. 따라서 외관상으로는 비록 성직자가 되었지만 아직 내면적 중생(거듭남)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은 가브리엘 신부가 비폭력을 선언하며 스스로의 죽음의 길을 택하는 것과 달리 로드리고는 일부의 인디오와 함께 폭력에 의한 저항의 길을 택하는 점에서 가브리엘의 죽음과는 다른 면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4. 정의와 사랑


다수의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하는 구원자로서 메시아였다. 그러나 메시아로 온 예수는 그런 정치적 해방자가 아니라 새로운 인류의 씨, 새로운 사회의 기초가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러 온 메시아였다. 그러므로 예수의 메시지를 듣고 가장 분노한 유대인들은 민족주의적인 유대인들이었다.


예수를 판 유다는 이스라엘의 젤롯당(열심당)원 출신이었다고 한다. 젤롯당은 이스라엘 독립운동단체를 의미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은 해방시킬 강력한 힘과 능력을 가진 그런 지도자를 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로마에 맞서서 싸울 투사가 아니었고 또 이스라엘의 해방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 유다의 눈에 비쳤을 것이다. 결국 유다는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독립에 방해가 되는 이 이상한 메시아를 처형해야만 했고 결국 바리새인과 로마인에게 팔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가브리엘은 투쟁을 하기 위해 축복을 부탁하는 로드리고에게 이렇게 말함으로써 예수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소. 만약 당신이 옳다면 하나님이 당신을 지키시겠지. 하지만 옳지 않다면 축복은 무의미하네. 무력이 정당하다면 사랑이 설 자리는 없다네. 틀림없이 그럴 거야. 나는 그러한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없어지네. 나는 축복을 할 수 없소. 로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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