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와 헤시오드
플라톤(Platon, BC329-347)은 호메로스가 그리스인들을 가르쳤으며 그의 서사시들은 인생의 지침이 될 가치를 주었다고 주장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피루스 문헌들 중에서 호메로스의 두루마리가 다른 모든 저자들의 것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헥토르(Hector)와 아킬레스(Achilles)의 이야기, 트로이 전설과 오디세우스(Odysseus)의 방랑은 서구 문화의 한 부분을 이
룬다.
『일리아스』(Ilias)와 『오디세이아』 (Odysseia)가 한 개인의 작품인지 아니면 많은 시인들의 작품을 편찬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이들은 기원전에 오랫동안 구전되어 온 것을 750~725년경에 기록한 것이다. 헤시오도스(Hesioclos)의 시(BC 700년)와 더불어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유럽에서 문자로 쓰인 기록으로서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묘사된 사회는 한편으로는 기원전 1400~1100년경 트로이의 미케네적 (청동기) 세계를, 다른 한편으로는 호메로스 자신의 시대를 반영한다. 그 사회는 질서 정연하고 위계적인 사회로서 시장적 관계가 아니라 선물(gifts), 도둑질, 시합에서의 승리에 대한 보상, 전쟁에서의 약탈, 정복자들에게 패배한 도시들의 공물 등을 통한 부의 분배에 기반해 있었다.
호메로스의 눈에 교역(交易, trade)은 부를 획득하는 이차적이고 열등한 방법으로 보였다. 영웅들은 귀족 전사들로서, 엄격히 계급에 따라 보상을 받았다. 선물은 엄격한 상호성의 관례에 따라 교환됐으며, 이 관례에서는 선물 교환(exchange)의 관련 당사자가 선물의 교환 이후에도 전과 동일한 계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주인은 손님들에게 환대와 선물을 제공해야 했으며, 그 대가로 손님들은 나중에 아마 그 주인의 가족에게 선물을 제공해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제를 유지하는 기초는 지주(landowners)와 그의 가족 및 그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 (land)에서 일하는 노예들로 이루어진 가구(家)였다. 주인과 노예는 함께 일했을 것이다. 호메로스가 보기에 번영은 유복한 가구에 소속된 결과였다. 그러나 과도한 부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가계는 부유해야 했지만 과도하게 부유해서는 안 되었다. 물론 상인과 장인도 존재했으나 그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자들보다 중요한 지위가 아니었다. 노예들은 설사 자유를 얻더라도 지주 소유지에서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교역을 통한 부의 취득은 농업이나 군사적 공훈을 통해 얻는 것보다 확실히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27-29쪽)
캠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의 추천으로 잘 알려진 로저 백하우스의 ‘경제학의 역사’는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양지성사와 더불어서 연속된 경제학적 문제를 시대별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고대시대의 문헌들로부터 경제에 관한 여러 물음들, 즉 교환과 노동, 지배와 착취, 생산과 분배에 관한 당시의 상황을 추정하고 있다. 호머와 헤시오드의 저작에서 나타나듯이 이미 그 이전에 발생한 근동의 고대국가에서 처럼 희랍의 도시국가는 잉여노동으로 인해 발생된 직종이 분화된 위계질서의 구조를 보여준다.
시인이나 사가들이 저술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들이 자급적 노동에서 면제되어 있다는 보여주고, 그 작품 속에 묘사된 영웅들이나 전사계급은 실제적인 노동의 결과물이나 재화의 생산자를 소유하거나 약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월등한 무력을 지닌 왕이나 영웅들은 농업이나 상인들보다 상위에서 재화를 약탈하거나 공납받고 있으며 시인이나 사제들은 그러한 지배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창작하기 바빴을 것이다. 그리고 학문은 노동의 나날들이 아니라 여가를 가진 귀족 혹은 자유시민의 한가한 명상 속에서 발생하였다.
헤시오도스가 쓴 두 편의 시 중에서 가장 실질적인 경제적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노동과 나날」(Works and Days)이다. 이 시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나는 유명한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명백히 메소포타미아의 창조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질병과는 거리가 멀고 힘든 노고도 없는 신들의 황금시대로부터 노동과 비참히 나날의 현실인 '철의 종족 (race of iron)*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조건에서 어떻게 생활을 꾸려나갈지에 관한 많은 조언을 하고 있다. 노동과 나날은 동양적 지혜문학(wisdom literature)의 전통에 속하는 시로서, 의례적 또는 점성술적인 금언(金)과 농사나 적절한 항해시기 -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에 관한 실제적 조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 든다.
그러나 동일한 전통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바빌론(Babylonian)과 히브리 (Hebrew)의 창조 이야기와 비교할 경우, 헤시오도스의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세속적이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인간을 번영케 하는 것은 제우스이고, 도덕을 세우고 제우스를 기쁘게 하는 일이 인간의 주된 과제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저자 자신의 호기심의 산물이지 사제들의 저작은 아니다.
헤시오도스는 기본적인 경제문제가 희소한 자원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노동해야 하는 이유는 "신이 음식을 계속 숨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하루만 일해도 일 년 동안 일하지 않고 살 수 있기에 충분한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부를 낳는) 노동과 여가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29-30쪽)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는 바빌론이나 이집트의 제의적 서사시가 아니라 세속적인 서사시이다. 그는 사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문학의 기원이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서술의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고대문명에 비해 예술이 종교에 비교적 덜 종속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놀드 하우저의 저술에서 잘 정리된 예술적 표현양식의 패턴은 다음과 같다.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표현 양식이 교차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고대 그리스 문학의 글쓰기 형태에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필자와 같은 대학의 교양학부에 있던 진중권이 곰브리치와 하우저의 미술사, 예술사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해서 상업적 이익을 얻었지만 필자의 이 글은 그런 의도와는 전적으로 무관한 수천 년 전 그리스 시인 헤시오드의 의도와 합치한다.
순수한 창작은 시장과 무관하다. 아카데미는 마켓과 무관하다. 하지만 시장 이전에 권력이 존재한다.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희소성 이전에 힘이다. 고대적으로 표현하면 완력이고,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생산력은 마력(horse power)에 의존한다.
아직도 부자는 마력의 차로 부를 과시한다. 슈퍼카 혹은 최고급차를 당신에게 누가 무료로 준다면 문제는 유지비용이다. 이런 문제는 고대에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경제학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