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혈서
혈서는 이렇게 해서 쓰였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열일곱 봄날. 지금 남아 있지는 않아서 몇 장을 썼는지 모르겠다. 아마 두 장이나 세 장이지 않았을까 싶다. 꽃 편지지, A4보다 작은 편지지였다. 연필 깎는 칼로 오른손 검지, 지문을 가로질러 베었다. 아프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장감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버지가 이 편지를 받고 변했으면, 금주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썼다. 생각만큼 피가 줄줄 흐르지 않아서 손가락을 쥐어짜면서 썼던 기억이 선명하다. 연필이나 펜으로 쓰는 것만큼 글씨도 예쁘지 않았다. 어떤 글씨는 굵고 어떤 글씨는 뭉뚱그려지게 써졌다. 오랜 시간을 썼다. 아마 이렇게 시작했을 거다.
‘금주’
‘아버지 술 그만 잡수세요. 아버지 술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세요. 술 좀 끊으세요. 저도 학교 가고 싶어요.’ 등등
바로 아래 동생인지 그 아래 동생인지를 언급하면서 그 녀석이 아버지 술 마신 날은 무서워서 집 밖 울타리 아래 쭈그리고 앉아 운다고도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썼다. 다 쓴 편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피가 마른 편지는 변색된 물감으로 아무렇게나 쓴 것처럼 보기 싫었다. 혈서라고 아래에 쓰고 싶을 만큼 혈서다운 느낌도 없었다. 혈서로 쓴 편지지를 접어 봉투에 넣으니 두툼해져 좋은 모양이 안 나왔다. 봉투는 볼펜으로 썼다. 고향 주소를 적는 기분이 묘했다. 그동안 우리 집 주소를 적을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 이름 뒤에 귀하라고 썼는지 귀중이라고 썼는지는 모르겠다. 중학교 졸업 지식으로는 최상의 존칭을 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