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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Feb 27. 2024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독서일기 7

고래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2016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났어.’

‘소설 쓰고 있네.’

소설은 현실이면서 허구의 이야기이다. 난 현실의 이야기라 생각한다. 7:3? 어쩌면 더 될 수도 있다. 신문과 텔레비전을 장식하는 뉴스 대부분이 소설(같은) 이야기다.

‘고래’를 읽으면서 줄곧 느낀 감정도 그렇다. 이건 현실이다. 소설 같은 현실이다.

문득 환타지 소설인가 싶어 정신을 차리면 현실이다. 후드득 털고 다시 정신을 차리며 읽었다. 이 소설 그렇게 읽었다.


     

춘희


 소설은 춘희로 시작해서 춘희로 끝난다.

여섯 달이 되기 전에 걸었으며, 돌이 지나기 전에 몸무게가 삼십 킬로그램이 넘고, 열다섯 살에는 백킬로가 넘는 거구다. 어느 겨울 거지가 된 금복이 술집 마굿간에서 낳는다. 금복을 지나간 수 많은 남자 중 누구의 아이인지 모른다. 어린아이 답지 않은 우울한 눈빛은 그녀를 안아 주려 다가서던 어른들을 멈칫거리게 만들었으며, 검은 피부, 뭉툭한 코는 그녀를 쓰다듬어주려 다가가던 이웃들을 망설이게 만드는 ‘계집아이 답지 않은’ 아이다. 당연히 어머니 금복에게도 사랑은커녕 인정도 받지 못한다. 말을 하지 못하고 지능이 떨어진다. 코끼리와 친구가 된다. 팔백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화재 방화범으로 교도소에 갖힌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바크셔’란 별명으로 불리며‘만인은 법 앞에서 평등하지 않는’수감생활을 한다. 형기가 끝나고, 벽돌공장에 돌아 온다. 어렸을 때 팔씨름 시합을 했던 같은‘통뼈’를 가진 트럭 운전사를 기다리며 벽돌을 굽는다.


 누군가는 고립된 생활 속에서 단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도 하고, 또는 인간 본연의 유희적 욕구 때문일 거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평화로웠던 공장생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그 어떤 해석도 충분한 설명은 아닐 것이다. 왜나하면 그녀의 노동이 단지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너무 필사적이었으며, 단지 유희라고 하기엔 너무나 고된 일이었으며, 또 단지 그리움 때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반복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벽돌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금복

 

춘희 이야기인가 싶은데 금복의 일생이다. 금복이 주인공이지 싶으면 춘희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고민 끝에 금복을 나중에 언급하기로 했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었으나 매력적으로 생겼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다가가고 또 끌어 들인다. 배짱과 머리가 좋고 언변이 뛰어나다. 동생을 낳다 엄마가 죽고 아버지와 산다. ‘남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어린 계집애가 손에 작은 보따리를 들고’생선장수의 삼륜차를 타고 산속 동네를 벗어 난다. 그리고 바다를 보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신이 살던 집보다 족히 서너 배는 됨직한 거대한 물고기, 고래를 본다. 나중에 고향에 돌아간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물고기와 마을의 저수지보다 수십 배는 더 넓고 거대한 바다에 대해 얘기를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소망을 이루기란 어려운 법, 그녀의 인생에서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인생의 정점에서 고래 극장을 지어 건축가들이 뽑은 올해의 건축물로 선정된다. ‘사람들은 돈이 죄악의 근원이라고 말하죠. 하지만 천만에요. 모든 죄악의 근원은 가난입니다.’라는 철학으로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둔다. 첫 남자인 생선장수를 시작으로 부두 하역 노동자 걱정, 건달 칼자국, 벽돌장인 文, 다리 밑의 거지와 벽돌공장 노동자 등 수 많은 남자들이 거쳐 가지만 끝까지 남는 남자는 금복이 버린 文뿐이다. ‘편리한 게 많은’ 이유로 남자가 된다. 철저하게 외면했던 딸, 춘희에 의해 극장이 불타고, 지극한 사랑을 쏟았던 수련과 약장수에게 배신을 당한다. 그에 더하여 시멘트 벽돌로 바꿔 타지 못한 고집과 장군이 큰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인물평으로 기관에 끌려가 곤욕을 치른다. 끝내 춘희가 지른 불 속에서 극장과 함께 사라진다.

     

 금복은 왜 그토록 철저하게 춘희를 외면했을까? 단지 그녀가 (첫사랑?)걱정의 씨이기 때문에? 아니면, 춘희가 여느 계집아이처럼 귀염성이 없어서? 그도 아니면, 자신을 매어둔 과거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 아니면 여성으로서의 지난한 삶? 그 삶의 유일한 흔적을 자신의 인생에서 지우고 싶어서?


난...찾지 못했다.      



평대

 

평대가 어딘지 짐작이 안간다.

산골은 분명한데, 어느 지방일까?

몇 가지 단서가 있다. 감옥을 나온 춘희의 거대한 육체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고 꾸준히 남쪽을 향해 움직였다. 출발한 지 아흐레째 되는 날 아침, 그녀는 비로소 기찻길 너머 성냥갑처럼 가로로 길게 늘어선 벽돌가마를 발견했다. 기차가 지나가고, 금복이 만든 고래극장이 불타 없어지면서 도시도 쇠락한다. 개발 시대 피고 진 수 많은 고장 중 하나 쯤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이것은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에 관한 귀납법적인 설명이다. 즉, 한 인물의 성격이 미리 정해져 있어 그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과연 금복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기적 같은 행운이 찾아 온 것일까? 아니면, 그런 행운이 찾아 왔기 때문에 그녀가 주인공이 된 것일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불경스런 질문이며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하는 것처럼 까다로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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