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athematics. 17
1. 닷말 들이 항아리
40대 후반, 그러니까 도시가 식상해지고, 직장 생활이 권태로워질 때, 이다음에 퇴직을 하면 무엇을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대체로 귀향을 많이 생각하고 실제 준비도 했다. 고향에 조그만 땅도 사고, 옆집 빈터도 사들였다. (우리 고향은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저렴한 한 곳이다) 그리고 작은 공책에 설계도를 그렸다. 정원수 두 그루, 흔들의자, 마당 수돗가 옆에 장독대가 있는 집을 그렸다. 주무대는 장독대였다.
크고 작은 항아리 100개를 놓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 모은 항아리가 20여 개 되지? 왜 항아리냐고? 어머니 핑계를 대야겠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기로 유명하시다. 나 역시 그 인자를 물려받았다. 지금도 커피 알 한두 개의 차이를 구분할 만큼의 미각과 후각을 자랑(?)한다. 그래 이다음에 퇴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자.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먹자. 물론 항아리 100개 분량은 판매도 염두에 둔 것이기에 판로 생각도 해야 했다. 내친김에 나름 상표 도안도 해 봤다. 상호를 뭐라고 하지? 어머니 이름 중 하나를 따서 정푸드? 정 된장? 정 간장 고추장? 고향마을 이니셜로 만든 CB푸드? 이렇게까지 나간 이유가 있다. 종종 어머니표 된장과 고추장이 판매된다. 주로 (어머니의) 큰며느리 친구들이 고객이지만.
항아리를 사러 다닐 때 서 말 짜리, 닷 말짜리 하는데 감이 쉽게 오지 않았다. 그냥 대·중·소. 큰 것 작은 것 하면 안 되나? 어렸을 때 집에 말이 있었고, 마당 멍석에 널린 곡식을 말로 되어 사고팔던 모습도 있다. 말을 옆으로 놓고 말타기 놀이도 했었다. 익숙한 서 말 닷 말이 와닿지 않는 것은 사용하지 않아서이고, 계량형의 통일로 사라져간 말이어서이고, 곡식을 액체로 치환하지 못해서 일 거다.
2. 공간 지능
수학에서 들이와 무게는 한 단원에 나온다. (3-2 4. 들이와 무게) 얼마나 넓은지 무거운지 길고 짧은지 알아보는 것을 측정이라 하며, 초등 수학에서 측정은 길이, 넓이, 둘레, 부피, 무게, 들이가 있다. 무게 단위는 mg. g. kg. t, 들이 단위는 mL, L, kL가 있다. 내 몸무게는 68kg이고, 작은 생수 한 병이 0.5L 또는 500mL다.
수학은 단계 학습이다. (나선형 교육과정 엊그제 설명했다!) 3학년에 ‘들이와 무게’를 배우기 위해 1학년 때 ‘비교하기’를 배운다. 비교하기 위해서 ‘더 길다. 더 짧다. 더 무겁다. 더 가볍다. 더 넓다. 더 좁다. 더 많다. 더 적다.’라는 말을 사용하며 배운다. 시시하다고 무시하다 된통 걸리기 쉬운 단원이다. 바람 빠진 축구공과 농구공, 하진이 신발과 라인이 가방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가벼울까? 교문 높이와 축구골대는? 등 얼마든지 응용하고 놀려 먹을 수 있고 오답 유도할 수 있다. 어림과 실측이 동원되기에 공간 지능 좋은 아이들이 두각을 나타낸다.
어떻게 설명해도 ‘들이와 무게’ 이해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수학이 다 그렇다) 이해해도 돌아서면 잊어 버린다. 숫자만 나와도 어지럼증이 몰려온다. 이유가 있다. 몰라도 생활하는데 불편 없고, 수학 못한다고 손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겨내야 한다. 노오력해야 한다. 사회는, 삶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원을 공부할 때는 실물 활용을 많이 한다. 생활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을 직접 재어 보고 달아 보고 부어 보고 펼쳐보아야 한다. 수학은 생활이다.
3. 정신의 무게
승부. 조훈현(이병헌 역)과 이창호(유아인 역) 바둑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전투의 신이라 불린 조훈현, 석불이라 칭하는 이창호.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난다. 세계 최고 바둑 대회 우승으로 국민적 영웅이 된 조훈현에게 바둑 신동 이창호가 제자로 들어온다. 한 집에서 먹고 자며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 이창호, 어느 길이나 그렇듯 정체기가 오고 그 시기는 곤충이 탈피하듯, 나이테를 만들며 성숙의 과정이 된다. 제자는 스승의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싸우고 싶다.
속력행마. 몽골 기마병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상대 진영을 휘젓는 스승 조훈현에 비해, 계산의 신이라 불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는 조심스러운 행보의 이창호. 나는 둘의 대결을 무게로 봤다. 저울에 올려 보아야 알 수 있는 무게가 아닌, 공간의 무게로 봤다. 저 사람은 참 묵직하다고 하지 저 사람은 정신이 80kg이야 하지 않는 것처럼. 무거울려면,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면 무게 있는 사람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포커페이스도 어렵고 입 닫고 사는 것도 힘들다. 타고나야 하는 건가?
4. 들이와 무게를 배우는 이유는 양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있다.
쌀 10kg 주세요 해야지 적당히 두 식구 열흘 먹을 양 주세요 하면 어떻게 될까? 수는 딱 떨어지는 개념 같지만, 사실은 추상적인 면이 많다. 무슨 말이냐면 물 0.32리터 마실 거야 하는 것보다 시원한 물 반 컵만 달라고 하는 것 말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초등 수학은 원리를, 개념을 익히는 과정이다. 무게가 2.5kg인 가방에 짐을 16.4kg 담았다. 가방의 무게는 얼마인가라는 계산에 앞서 나에게 주변에 가방과 짐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 보는 공감이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