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가지 종류의 글을 소재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적고 있는데, 하나는 책을 읽고 관련된 이론이나 감상을 기술하는 서평형 에세이고, 하나는 오로지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에서 추출하는 정통 에세이다. 서평형 에세이는 독서모임에서 추천된 도서를 읽고. 화두가 되는 문장을 중심으로 하여, 관련된 인상적인 구절을 다른 자료를 통해 이해하거나 연상되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책을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정통 에세이는 전적으로 나의 기억과 경험에만 의존하여 문장을 구성한다. 각각 목적에 따라 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쓰는 맛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먼저 서평형은 객관성이 중요하고, 적어도 책의 논지와 저자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정보 전달의 목적이 강하므로 목차를 잡고 그에 따라 논리를 구성해야 한다. 반대로 정통 에세이는 '에세이'라는 장르의 개념 그대로, 생각이나 느낌이 가는 대로 문장을 구성하고 시간 순서나 목차나 상관없이 문장을 기술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므로 자료의 신빙성이나 객관성보다는 지극히 내 취향과 감정이 중요하다.
서평형 에세이는 방향 설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글 쓸 소재를 찾는데 그리 무리가 없지만 자료를 축적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그것을 압축하고 추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보통 한 편의 글을 적는데 한 달 정도 소요된다. 아무래도 여러 자료들이 섞이다 보니 퇴고하는 데도 글을 쓴 만큼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반면 정통 에세이는 소재를 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한번 콘셉트이나 감정이 잡히면 갑자기 술술 써지게 되고 필요한 만큼의 분량을 뽑을 수 있다. 나는 정통 에세이를 지하철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안 구상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즉흥적으로 적는다. 소재는 여정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모두가 소재가 되며, 때문에 내용에 두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바로 그러한 특징 때문에 읽는 묘미가 있다. 또한 주제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구성하는데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쓰는 것이 가능하다.
서평형 에세이는 글이 완성된 후 문장의 연결성과 논리 전개가 자연스러우면 글이 깔끔해지고 나중에는 한 문장으로 내용을 수렴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면 전통 에세이에서는 치밀한 논리 전개보다는 기억과 감정의 결이 서로 잘 어울리는 것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내용이 전개될수록 기억의 또 다른 단면에 새로운 해석이 가미되게 되고 기존의 소재에 다양한 감정들이 덧입혀진다.
주어진 자료에 의지하여 글을 쓰거나 전적으로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 의거하여 글을 써보는 것은 각각 사유를 깊게 하고, 관점의 폭을 넓혀준다. 그런데 내게 가장 어려운 장르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시'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가 다른 장르에 비해 간단하게 보일지 몰라도, 한정된 형식 속에 세계를 담을 수 있어야 하므로 사실,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장르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를 구상하는 것부터 스스로 만족할만한 표현에 이르기까지는 뼈를 깎는듯한 성찰과 퇴고의 과정이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시집이 얇을 수밖에 없는것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