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 #클래식, #헤이리 마을, #독서

by 비루투스

독서클럽에서 읽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 중, 음악 전공자들이 볼만한 '서양 음악의 이해'라는 이론서가 뽑히게 되었다. 400페이지가 훨씬 넘어가는 내용을 대로 이해하고 오는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였고, 한편으로는 생소한 분야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끝까지 읽어보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하고, 이론을 그대로 이해하려 하기보다, 작곡가에 대한 에피소드 위주로 최대한 소화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로 했다.


그중 슈만 부부와 브람스 간의 에피소드가 흥미 있게 읽혔고, 프랑소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소설의 제목을 봤던 것이 기억났다.


슈만은 당대에 유명한 작곡자이자 음악평론가였고, 그의 아내 클라라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연주자였지만 결혼 후 남편을 보필하면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부부 앞에 브람스라는 재능 있는 청년이 나타고, 그들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후원였다.


그런데 만은 브람스를 알게 된 지 5개월 만에 그동안 앓고 있었던 정신분열증으로 강에 투신하게 되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브람스는 남편을 잃게 된 클라라의 곁을 지키면서 그녀를 연모하게 되었고, 그런 마음을 담아서 피아노 협주곡 3악장을 만들었는데, 클라라는 1악장을 듣자마자 이를 눈치챘다고 한다.


브람스는 편지로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지만, 클라라는 애정문제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왜냐하면 클라라는 자신의 삶을 슈만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었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슈만은 남편 이전에도 오라비이자 아버지 같던 존재였고, 배우자의 죽음 후 그녀는 작곡을 그만두고 남편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천재성을 끌어내기 위하여 그녀를 세상과 단절시키고 혹독한 연습을 시켜왔다. 그러한 아버지의 제자로서 클라라에게 다가온 슈만은 세상과의 소통을 이어주는 매개체였고 첫사랑 이기도 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기 위하여 슈만과 함께 법정투쟁을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초기에 즉흥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을 가진 기교파 피아니스트였으나 고전적인 양식을 가진 남편에게 큰 영향을 받아 스트나 바그너 같은 낭만주의자들을 혐오했다고 해진다. 그러한 이유들 때문에 클라라는 브람스의 고백을 거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도 한때 사랑의 열병을 앓았었고,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적인 기질이 농후한 여자이기도 했다.

클라라는 표면적으로 남편에 대한 명분과 브람스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자신보다 14살 어린 남자와의 연애에 대한 부담감도 강하게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가해질 주변의 시선도 두려웠을 것이고, 브람스의 젊음과 패기에 대비되는 자신의 나이 듦을 자책하며 위축되었는지도 모른다. 브람스는 그런 클라라를 의식하여 평생 턱수염을 깍지 않았다고 한다


클라라는 죽기 전까지 브람스와 서신을 주고받았고, 그의 곡을 연주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어쩌면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를 소녀처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편, 브람스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채로 독신으로 살고, 클라라가 74세의 나이로 죽은 후 1년이 안 되어 그 역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프랑소와즈 사강은 세 사람의 미묘한 계에서 영감을 얻어 '브람스를 아세요...'라는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며 파격적인 발언과 행동을 일삼았던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같은 여성으로서 클라라의 솔직한 마음을 대변해주지 않았을까?


번에 여행을 떠날 장소는 파주에서 음악카페로 유명한 '카메라타'이다. 이곳은 예술가 마을로 유명한 헤이리 마을과 인접 있었고, 사진에서 보이는 웅장한 크기의 스피커로 음악을 듣다 보면, 색다른 감각으로 책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이리 마을은 박물관과 공방, 갤러리와 카페 등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나는 갤러리와 카페 거리를 주로 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평일이라 문을 닫은 곳이 였고, 다행히 아트페어 기간이라 이랜드에서 운영하는 대형 갤러리가 오픈되어 있었다. 입구 쪽에 있는 호랑이 작품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직원에게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을 만든 정의지 작가 쓸모없는 것, 버려진 것의 이면을 들춰내고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Re-Genesis'라는 콘셉트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버려진 양은 냄비를 재로, 동물의 형상을 주조하여 생동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작품에 스며들어있는 불의 흔적은 생명에 대한 결정체라고 말한다.


버려진 것들이 재창조되어 생동감을 자아내고 있다.

작품들을 감상한 후 카메라타를 찾아 오르막길까지 올라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하필 오늘이 정기휴일이었다. 그래서 힘들게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발길 닿는 데로 당도한 카페는 외관도 좋고 커피맛도 나쁘지 않았으나, 음악소리는 심기를 편하게 만들었다. 팝송이 나올 때까지는 그럭저럭 참을만했지만, 서서히 가요가 들리기 시작했고, 느새 카페에는 힙합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헤드폰 탑재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서 브람스의 음악을 백색소음 삼아 듣게 들었고, 자연스레 클래식의 선율 위에 랩이 얹히는 모양새가 되었다.


'브람스를 아세요...'라는 책의 제목이 나에게는 산뜻하게 느껴졌는데, 낭만적인 성향이 강한 프랑스에서는 꼰대 같은 음악을 좋아하냐는 반어적 표현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브람스의 음악은 형식을 중요시하는 고전주의를 강하게 표방하고 실제 성격도 그러한 면에 부합하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동명의 드라마에서도 목이 주는 뉘앙스에서 모티브를 얻지만, 특이하게도 육각 관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쯤 되면 거의 '동물의 왕국' 수준이다


소설에서 브람스를 대변하는 '시몽'이란 인물에게서는 흥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반면 슈만으로 보이는 '로제'는 저돌적이고 날 것의 느낌이 강한 남자이다. 한편 클라라가 모델인 '폴'은 침착하고 감성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여자이지만 본능적인 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폴은 로제를 깊이 사랑하고 있지만 그의 잦은 외박과 무관심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의뢰인의 아들인 시몽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는 폴에게 한눈에 반해버린다.


폴은 그런 시몽을 피하려 하지만, 로제의 잦은 외도와 거짓말에 상처 입게 되고, 힘들어할 때마다 곁을 지켜주는 시몽의 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 듦과 시몽의 젊은 매력에 부담감을 느끼게 되면서, 은 로제와 함께할 때 가장 안정적이었고 편안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폴은 로제를 만나게 되면서터 그에게 길들여져 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로제는 폴이 시몽에게 가버리고 나서야 그녀가 자신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간 즐겼던 외도를 역겨움으로 느끼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새로운 사랑보다 익숙했던 생활을 선택하게 되는데, 로제는 다시 그녀를 소유하고,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사강은 사랑의 지속성을 믿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녀는 폴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로제에게서도 작가의 흔적 강하게 고, 남성의 위선과 변덕 그리고 수동적인 여성 모습까지도 살짝 비꼬는 듯한 태도도 느껴지는 것 같다.


클라라는 브람스에 대한 마음이 세간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죽기 전에 그와 교환했던 서신들을 태우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미묘한 감정들을 잘 알고 있던 큰딸의 만류로 살아남게 된 사랑의 흔적들은 'Re-Genesis '되어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작품을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애잔한 감정들을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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